1월 이달의 연구자상 이종민 교수(공과대·전기생체공학부)

검사 비용은 낮추고 검사 과정은 더 간편하게

한 여자가 편의점에 들어가 콜라를 산다. 카운터에서 계산한 후 밖으로 나오지만 정작 자기 손에는 콜라가 없다. 그제서야 콜라를 카운터에 두고 온 것이 기억난다. 다시 편의점으로 되돌아가다 자기가 산 콜라를 들고 있는 한 남자와 마주친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콜라를 훔친 것이라고 생각하고 캔을 빼앗아 벌컥벌컥 마신다. 남자는 어이 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의 손에 다 마신 빈 콜라 캔을 쥐어주고 돌아간다. 버스 안, 지갑을 찾지만 지갑도 편의점에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돌아간다. 편의점 직원은 지갑과 콜라를 건네준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그녀의 건망증으로 두 주인공의 운명적 첫만남이 시작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치매는 환자의 일상생활을 파괴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치매를 조기에 진단해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면? 영화에서처럼 병이 급속도로 악화돼 이별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양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조기에 치매가능성을 진단할 순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최근 치매를 자기공명영상(이하 MRI)을 이용해 기존의 검사방법보다 좀 더 저렴하고 간편하게 조기에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MRI를 통해 환자들의 진료 문턱 낮춰


치매 중 5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베타-아밀로이드라는 이상단백질이 대뇌피질에 분포하 있는 뇌신경세포에 과도하게 축적돼 신경세포가 손상될 때 발생한다. 신경세포가 손상되면 대뇌피질의 두께는 얇아진다. 즉 대뇌피질이 응축되는 것이다. 현재는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구조적 뇌 영상장비나 양자방출단층촬영(PET), 단일광자방출촬영(SPECT)등 기능적 뇌 영상장비를 이용해 치매의 진행 상태를 좀 더 명확하게 판별하고 진단 할 수 있게 됐다. PET나 SPECT는 뇌의 혈류량, 뇌의 포도당 대사능력 등 뇌 각 부위의 기능이상을 통해 병세의 진행 정도를 파악한다. 대부분의 질병은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기 전에 기능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PET의 경우 조기에 치매의 진행상태나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 검사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통 PET 1회 촬영 시 드는 비용은 약 130만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치매가 의심된다고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검사방법이 아니다. 하지만 MRI를 통한 치매 조기검진 비용은 평균 80만원 선이다. 이종민 교수((공과대·전기생체공학부)가 PET와 동일한 수준의 기능을 좀 더 저렴한 MRI로 판단 가능할 수 있게 해 환자들의 진료 문턱을 낮춘 것이다. MRI나 CT는 알츠하이머 치매로 인해 생기는 뇌의 위축, 뇌실 확대 등 뇌의 구조적 모양을 통해 병세의 진행 수준을 파악한다.

대뇌피질 응축 패턴과 위치를 통계적으로 분석


치매의 경우 조기진단이 사실상 어렵다. 특정 시점에 와야 환자의 기능적 장애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잠복기 단계로, 따로 조기 정밀 검사를 하지 않는 이상 파악하기 힘들다. 따라서 치매의 조기진단이란, 잠복기 때 이상단백질이 쌓인 상태를 보고 치매에 걸릴 확률을 미리 알아내는 것을 뜻한다. 뇌는 보통 특정한 영역이 특정 기능역할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뇌의 부위별로 역할기능이 다르다면 어디에 대뇌피질 응축이 나타났느냐에 따라 치매질환의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두엽에 대뇌피질 응축이 관찰된다면 그 치매환자는 고위인지기능에 문제가 있고, 측두엽에 대뇌피질 응축이 발견되면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 교수는 “MRI 장치로 정상환자와 치매환자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서 대뇌피질 응축 위치와 진행 상태를 보고 3가지 치매질환 종류를 구분했다는 것이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점이다”라고 전했다. 고해상도의 MRI 장치로 총152명의 조기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를 촬영했다. 환자들의 대뇌피질 두께를 분석해 다양한 대뇌피질 수축 패턴이 나타났다. 대뇌피질 수축형태를 패턴과 위치에 따라 분류해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양측 안쪽 측두엽 주도 위축 하위 유형 (52명), 마루엽 주도 하위 유형 (28명), 거의 모든 대뇌피질이 위축을 드러내는 분산된 하위영역(72명)으로 총 3가지 종류로 분류 됐다.

연구의 실현을 위해서는 융합적 성찰이 필요


이번 연구는 삼성의료원과 10년 동안 공동으로 진행됐다. 치매환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의료원과의 소통이 필수였다. 의료진은 환자의 데이터를 제공하고, 연구진들은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MRI 영상처리 기술을 이용해 연구한다. 이 교수는 “연구의 당위성은 의학에서 온다. 의학자들이 환자의 질환에 대해 연구하고 싶을 때 첨단공학지식이 필요하다. 이때 바로 공동연구가 시도되는 것이다. 공동연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영상처리 지식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생체공학에 대한 배경지식과 의학적 지식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잘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융합적 배경지식을 강조했다.

진료 목적과 탐구적 목적을 가지는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연구의 보람과 의의를 찾기 위해 그 연구가 앞으로 어떤 영향을 줄 것이고 인류에 어떤 이바지를 할 것인지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유 교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의 방향성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보람에서 끝나는 것일 수 없죠. 우리의 연구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한 고찰 또한 융합적 성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라며 연구자의 진지한 마음자세를 당부했다.

  

이수정 기자 sj930212@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

키워드

'한양위키' 키워드 보기 #MRI #이달의연구자 #이종민 #치매
저작권자 © 뉴스H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