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터넷진흥원 부원장 정경호 동문 인터뷰

커피 한잔할까요? 정경호 한국인터넷진흥원 부원장(산업공학·79)은 커피 마니아로 잘 알려져 있다. 그에게 요즘 젊은 후배들과 커피 한잔하지 않겠냐고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는 흔쾌히 러브콜을 받아들였다. 문제는 요즘 젊은이들. 강의 시간표가 한국인터넷진흥원 부원장 스케줄보다 더 빡빡했다. 게다가 수면에 방해되는 커피는 학업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멀리한다니. 그래도 우리는 모였다. 얼굴도 모르고 취향도 세대도 다른 선후배들이 커피 한잔 마시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궁금했다.

에디터 이명연 | 사진 김지훈

 

   
▲ 이재효(산업공학·10)(왼쪽), 정희재(산업공학·13)(가운데), 한국인터넷진흥원 정경호 부원장(산업공학·79)(오른쪽)

 

정경호 부원장은 매일 하루를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한다. 혼자 마시기보다 일찍 출근한 동료, 직원들과 직접 만든 핸드드립 커피를 함께 즐긴다. 이 순간은 하루 중 유일하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간이자 정경호 부원장에게 모닝커피는 하루의 시작을 푸는 첫 단추다. 2015년 3월 19일 아침, 그의 평화로운 아침에 손님이 찾아왔다. 모교인 한양대학교에서 정경호 부원장이 내린 커피 냄새를 맡은 까마득한 산업공학과 후배들이다. 그들은 반갑게 눈을 맞추고 통성명을 나누었다. 그러곤 어색한 기운이 살짝 돌 무렵 누군가 말했다. “우리, 커피 주문할까요?”

 

 

커피잔 위로 떠오르는 얼굴

 

   
▲ 한국인터넷진흥원 정경호 부원장(산업공학·79)

 

정희재 선배님이 한양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주로 어느 커피숍을 많이 가셨어요?

 

정경호 우리 때는 커피숍이 아니라 다방이었지. 옛날에는 한양대학교 건너편에 파리다방이라고 있었거든. 1층은 중국집, 2층은 다방, 3층은 당구장이었어. 그때 공부 안 하고 당구 많이쳤지.(웃음) 1층에 내려가서 짜장면 먹고, 다방에 커피 마시고 시간 되면 수업 올라가고 시간 남으면 또 당구치고. (웃음) 친구들끼리 그런 말 많이 했어. 우리 나중에 중국집, 다방, 당구장 다 있는 건물 하나 짓자고.

 

정희재 저희도 비슷해요. 그런데 한 건물에 있지는 않고 왕십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요. 이 집에서 밥먹고 저 집에서 밥 먹고, 어디가 맛있다더라 또는 어디가 새로 생겼다더라 하면 또 우르르 몰려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왕십리 재개발 계획을 애들이랑 장난으로 세워요.

 

이재효 재개발하자는 이야기는 저희도 해요. 1층은 당구, 2층은 술집, 3층은 PC방, 4층은 노래방 이렇게 건물 하나 짓자고요.

 

정경호 그래, 요즘에는 당구보다는 PC방이겠구나. 내 친구 중 한 명은 파리다방에서 만나던 여자와 결혼했어. 1학년 때 간호학과와 한 생애 첫 미팅에서 인연을 만난 거야. 우리 때는 휴대폰이 없으니까 꼭 다방에 가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 다방에 있다 보면 친구의 친구도 사귀게 되고, 친구의 여자 친구의 여자 친구도 사귀다 보니 다방이 거의 학교처럼 느껴졌어.

 

이재효 이성을 만나는 장소인 건 요즘도 똑같은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을 좋아한 적이 있거든요. 그 때 우유 들어간 커피는 라테, 초콜릿이 들어간 커피는 모카라는 걸 알았어요.

 

정희재 저는 자주 가는 커피숍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르바이트생이 연락처를 물어보더라고요. 당시에 남자 친구가 있어서 알려주지 못했는데, 그다음부터 커피숍에 가면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수군거리는 게 신경 쓰여 그 후로는 안 갔어요.

 

정경호 나는 커피 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사람이 있어. 내가 가입한 서클 아지트가 학림빌딩에 있었거든. 학림 다방도 자주 갔지만 기억에 남는 다방은 혜화동 로터리에 있었던 어느 작은 다방이야. 거기 여학생들이 참 많이 가더라고. 어느 날 궁금해서 따라가봤더니 윤석중 씨가 나와 계셨어.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의 가사를 쓴 시인 윤석중 씨 알지? 내가 봤을 때에는 할아버지였는데 아무 이유 없이 학생들에게 커피를 사주시는 거야. 나는 주변머리가 없어 그렇게 친하게는 못 지냈지만 아무튼 그 다방에는 늘 학생들에게 커피를 사주던 윤석중 할아버지가 계셨어. 요즘은 커피숍엘 가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워. 그 동네 분위기라든지 문화라든지, 우리만이 가진 고유한 정서가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 배어나면 참 좋겠어. 요즘은 전부 서양 문화를 마치 우리 것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이니까.

 

 

커피 앞에서 작아지는 이유

 

   
▲ 이재효(산업공학·10)

 

이재효 커피를 마시러 커피숍에 간다기보다 빈자리를 찾아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아요. 스터디를 하거나 도서관에 자리가 없을 때요.

 

정경호 친구들은 안 만나고?

 

이재효 요즘에는 친구들도 저도 개인 일정이 너무 바빠 잘 만나지도 못해요.

 

   
▲ 정희재(산업공학·13)

 

정희재 솔직히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으로 이미 할 말은 다 주고받아서 막상 만나도 할 이야기가 없어요. 우리나라 커피 산업 발전 속도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높다고는 하는데 저나 제 주위에는 막상 커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거든요. 비싼 커피, 좋은 커피를 쉽게 소비할 수는 있어도 그게 어떤 커피인지, 왜 좋은 커피인지, 어디서 온 커피인지 아는 친구들은 몇 안 될걸요.

 

정경호 사실 커피는 알고, 모른다는 기준보다는 관심 정도의 차이인 것 같아. 관심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더 깊이 커피에 대해 알게 되겠지. 공부를 하기보다는 많이 마셔보면 돼. 또 많이 마시기보다 한 잔을 마셔도 깊이 느낄 줄 아는 습관이 중요하고. 커피처럼 일상적인 것도 없는데 막상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려워하지.

 

이재효 커피가 그만큼 보편화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지극히 저 개인적으로만 볼 때 커피가 보편화된 것에 비해 제 수준은 그리 높지 않거든요. 커피 문화는 5년 전보다 훨씬 발달되고 대중화되었는데 제가 커피를 즐기는 수준은 5년 전과 다를 게 없는 거죠. 그런 부분에 대한 일말의 부끄러움? 무의식중에 그런 감정이 있어서 자꾸 커피 앞에서는 작아지는 것 같아요.

 

정희재 재효 말에 공감해요. 저도 누가 커피 좋아하냐고 물으면 좋아한다고는 하는데 내 수준에 좋아한다고 해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아까도 선배님이 커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고민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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