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팀 OK저축은행 감독 김세진 동문(체육.92)

무모한 도전이 만든 기적

 

국내의 프로배구리그인 ‘V리그’에는 ‘기승전삼’이라는 얘기가 있다. 7개의 구단이 아무리 서로 물고 뜯고 다퉈봤자, 결국엔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리그의 통합우승을 거둔다는 말이다. V리그가 2005년에 출범해 열 번의 시즌을 거치는 동안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8번의 통합우승을 거뒀다. 2009년 이후 줄곧 우승을 거머쥐었기에, V리그는 이미 결말을 아는 영화와 같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배구 팬들은 V리그의 새로운 결말을 볼 수 있었다. ‘OK저축은행 배구단’이 창단 2년만에 삼성화재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 새로운 결말을 써 내려간 신생 배구단에는 프로데뷔 2년 차인 초보 감독 김세진 동문(체육.92)이 있었다.

 

에이스, 김세진

 

   

90년대 중반, 우리대학은 대학배구연맹전에서 64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활동했던 선수들은 지금도 선수로, 또 코치와 감독으로 V리그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우리대학의 배구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바로 김세진 동문(체육.92)이다. 김 동문은 “64연승이라는 성과도 내가 졸업한 이후 많은 선후배들이 이뤄낸 성과”라며 겸손해했지만, 성균관대와 한양대의 라이벌 전에서 늘 에이스로 출전한 김 동문은 우리대학 배구부와 대학배구 전성기의 시발점이 됐다. 만 18세라는 나이로 최연소 배구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했던 김 동문은 94년 열린 배구 월드리그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김 동문은 이탈리아, 쿠바, 러시아 등 배구 강국들이 참여한 대회에서 최우수 공격상을 받으며 ‘월드스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우승만큼이나 패배를 잊지 않는 성격이었다. “월드리그에서 상을 받기도 했지만 그 해 가을에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에게 패배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 한 해였죠. 그 패배 때문에 당해 전국체전에 나갈 때 완전히 삭발을 하고 경기에 임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듬해 삼성화재의 창단 1기, 1호선수로 뽑힌 그는 당시 프로리그인 ‘슈퍼리그’에서도 대활약을 하며 팀의 우승을 견인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여러 차례 MVP에 뽑히기도 했던 그는 팀 내 주요 공격수로 활약, 단일리그 77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는 데 일조한다.


신생 팀과 초보 감독의 맨땅에 헤딩하기

 

   

은퇴 후 해설자로 활동하던 김 동문은 2013년, 프로배구팀인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베스피드’(이하 OK저축은행) 감독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코치직도 한 번 맡아본 적 없는 그가 감독이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김 동문은 “OK저축은행이 감독 제의를 하기 전에도 많은 팀들에서 러브콜을 해왔다”고 말했다. “많은 팀들이 감독직을 제안했지만 OK저축은행의 모기업인 러시앤캐시가 ‘당신이 그림을 그리면 우리가 후방지원을 해주겠다’며 저에게 보여준 신뢰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선수시절 삼성화재라는 신생팀의 창단멤버를 해봤던 것처럼, 신생팀의 감독이 된다는 것도 설렜습니?? 큰 도전을 해볼만하다는 생각도 했고요. 물론 걱정도 됐지만 감독으로서 저의 가치를 알아주는 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OK저축은행의 배구단 창단은 사실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러시앤캐시가 V리그에 있던 기존 팀의 인수에 참여했다 실패하자 갑작스럽게 창단 계획이 세워진 것.

 

“아무 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팀이 창단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체육관을 빌려서 연습을 하고, 선수들이 물품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안고 이동하기도 했습니다. 선수 한 명은 군대에 가고, 스텝도 전혀 준비 되지 않은 상태라 일일이 뽑아야 했어요.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을 한 격이었죠.” 김 동문은 V리그의 나머지 구단에서 경기에 잘 나서지 못했던 후보 선수, 이제 막 프로리그에 발을 디딘 대학 졸업반 선수들과 함께 팀을 꾸렸다. 선수들은 젊은 만큼 탄력을 받으면 기세를 몰아 공격을 하다가도, 위기 앞에서 무너지기도 쉬웠다. 김 동문은 “선수들을 뭉치게 하는 것은 믿음 뿐”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의견이나 행동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칭찬도 세 번 이상 들으면 지겨운 법인데 잘못된 점을 계속 지적하면 자괴감이 들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믿어주고, 대신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잡아주기로 했어요.” 김 동문은 선수들이 자신을 ‘감독선생님’이라고 불렀을 때의 얘기를 들려줬다. “첫째로, 나는 그런 호칭을 들을 나이도 아니고(웃음) 둘째로, 우리는 우승이라는 공통의 목적으로 위해 한 배를 탄 사람들이라고 말해줬습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관리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수들이 제 지시에 끌려가길 바라진 않아요. 김 동문의 믿음에 보답하듯 OK저축은행의 선수들은 프로데뷔 첫 해 꼴찌를 면했다. 그리고 두 번째 해, 통합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플레이오프 경기의 출전 티켓을 얻어냈다.

 

   

 

학생들의 무모한 도전을 응원하며


지난 4월 1일, V리그의 통합 우승자를 결정하는 경기에서 OK저축은행은 마침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만우절에 일어난 거짓말 같은 기적이었다. 지난 7시즌 내내 왕좌에 올라있던 삼성화재를 밀어냈지만 김 동문은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했다. “열심히 준비는 했지만 구단주, 팬, 선수들의 믿음이 모두 한 데 맞아떨어져서 이룰 수 있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겸손함을 보일 정도로 뭔가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삼성화재의 아성을 무너뜨리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배우고 시행 착오를 거쳐서 쫓아가야 될 부분이 많습니다.”

 

현재 V리그에는 우리대학 최태웅 동문(체육.95), 강성형 동문(체육.89)이 프로배구팀의 감독으로 있다. 김 동문에게 우리대학 출신들의 배구색깔에 대해 묻자 김 동문은 “당시 송만덕 한양대 감독님의 지론이 현재 다른 동문들에게 바탕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 감독님께서는 선수들 간 구타 행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셨고, 선배들에게 선배 행세를 하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빨래도 각자했고, 감독님하고 스킨십도 편하게 했어요. 우리대학에서 훈련을 할 때 남은 기억들이 앞서 말한 동문들에게도 남아있는 바탕이고, 또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각자의 색깔을 찾아내겠죠.”

 

마지막으로 김 동문은 학생들에게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해보는 것, 도전하는 방법입니다. ‘무한도전’의 원래 제목은 ‘무모한 도전’이었죠. 학생들은 무모한 도전을 해볼 수 있어요. 더 나이가 들고 나서는 실수가 아니라 실패가 되기 쉽지만, 학생일 때에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멈추는 게 아니라 잘못된 길임을 배울 수 있고, 다시 선택할 여유가 있습니다. 많이 도전하세요.”

 

   

 

 

 


최정아 기자 shaoran00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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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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