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 신임 사장 김용진(음대·작곡) 명예교수
"시민 속의 세종문화회관으로 거듭날 터"
대한민국 문화공연의 일 번지를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단연 세종문화회관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세종문화회관은 그 아성에 걸맞지 않게 세인들의 눈총을 받는 처지가 됐다. 급기야 최근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는 전현직 임원들의 비리혐의가 드러나면서 그 추락세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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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7일에는 그동안 공석이었던 세종문화회관 사장 취임식이 거행됐다. 본교 국악과 교수로 지난달 26일 정년퇴임한 김용진 명예교수가 그 자리를 이어 받은 것.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사장자리에 오른 게 아니라는 그의 말처럼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막중하다. 하지만 문화계는 그에게 내심 기대하고 있다. 본교 음악대학장, 교육대학장 재직 시의 탁월한 행정능력, 서울시립관현악단과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시절의 리더 십, 그리고 현재 한국음악협회 이사장까지 이어지는 탄탄한 이력은 이미 음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경영인으로서의 자격도 검증 받았다는 평이기 때문이다. 인터뷰 전날 두 시간 밖에 잠을 청하지 못했다는 김 명예교수는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아직 20대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력으로 빡빡한 스케줄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내고 있었다. 위클리한양은 어려운 상황에서 세종문화회관 신임 사장으로 부임한 김용진(음대·국악) 명예교수를 만나봤다.
세종문화회관 사장 취임 소감을 말해 달라.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를 대표하는 문화단체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단체이다. 하지만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로 침체상태에 빠져 있다. 무거운 마음으로 업무를 시작했고 단원들도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에게 부여된 과제는 빠른 시일 내에 세종문화회관을 정상궤도로 올려놓는 것이다.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라며 일을 만들기 보다는 문제점을 찾아서 고쳐나가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임기동안 세종문화회관이 명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공연장이란 명성을 되찾는데 최선을 다하겠다.
평소 생각해 온 세종문화회관 본연의 모습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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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인간의 정신적 유희를 담당하는 기능을 한다. 서울시민의 문화 중심부에 세종문화회관이 있다. 따라서 세종문화회관은 서울시민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이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중성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대중성 확보가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평소 행정가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에는 크게 법치(法治)와 예치(禮治) 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법대로 하라’란 시쳇말처럼 법대로 하면 경영자로서는 편하다. 하지만 인간 사회라는 것이 법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법으로 다루면 부작용이 크다. 특히 지금 내가 위치한 사장이라는 자리는 조직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챙겨야 한다. 삭막한 법으로는 형식적으로만 가능하다. 그러한 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조직의 이상향은 예(禮)를 기반으로 한 조직이다. 상대방을 예로서 대하면 예로써 대우 받기 마련이다. 사장이라는 자리는 최고 경영자라는 위치지만 때로는 아버지와 같은, 때로는 어머니와 같은 위치다. 단원들의 복리는 물론이고 고민도 들어주고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사장이라는 자리는 어려운 자리지만, 동시에 보람된 자리라고 생각한다.
혹자들은 현대를 문화의 실종기라고도 이야기 한다.
전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이른바 경제부흥기를 거치며 먹는 문제가 해결됐다. 80년대와 90년대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건강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문제를 정신없이 해결하고 돌아보니 향락문화가 넘쳐나고 있다. 현대인들의 놀이문화는 길을 잃은 듯 하고 정신적 황폐화는 그 가속도를 가늠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판단된다. 책임은 일정부분 예술인들에게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인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문학은 글로, 미술은 그림으로, 음악은 소리로 정신을 정화해 주는 역할을 한다. 세종문화회관도 시민들의 곁에서 맡은바 소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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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상황인 만큼 주변의 요구와 기대가 많을 것 같은데.
나를 버릴 때 가장 큰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소신껏 사고하고 행동하란 이야기이다. 명예, 평판에 집착한다면 그 당시에는 남에게 잘 보일지 몰라도 대의를 이루지는 못한다. 나의 지금까지의 삶이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생은 수 없는 굴곡의 연속이다.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가 있고 때로는 밋밋할 때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하지만 결국에 웃는 사람은 정도를 가는 사람이다. 사필귀정이란 말처럼 소신을 지키는 것, 그것은 힘들지만 결국 자신과 남을 위하는 길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소신껏 세종문화회관을 이끌어 가겠다. 이것은 독선과는 구별되는 이야기이다. 주변의 이야기도 충분히 듣고 수렴해 반영해 나가겠다.
정년퇴임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본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솔직히 동문회에 안 껴줘서 서운할 때도 많다. 누구 못지않게 학교를 위해 반평생을 살았는데 말이다.(웃음) ‘사랑의 실천’이라는 경구가 내 24년 교직생활의 신념이었다. 한양대학교에 내 인생의 절반을 투자했고 교직에서 제자들도 자식처럼 남부럽지 않게 키워냈다. 전국 대학 국악과 교수 64명 중 절반이 넘는 35명이 내 손을 거쳐 갔으니 말이다. 황량했던 음대 앞을 직접 화단으로 채우며 공사 인부들과 점심을 같이 한 일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교단에서 물러나는 것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후배 교수들과 한양의 더 낳은 국악과를 위해 물러난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앞으로 어디에 가서라도 한양대학교와 함께한 반평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사진 :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