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홍 생명과학과 교수, 김현진·지중호·이수현 학생과의 만남
| 한양대학교는 노벨상에 대한 오랜 염원과 바람을 담아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노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양대 ‘노벨 프로젝트’ 생명과학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안주홍 생명과학과 교수와 김현진(대학원 생명과학과 16), 지중호(생명과학과 08), 이수현(에너지공학과 14) 학생이 모여 한국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어떤 노력과 자세가 필요한지 이야기를 나눴다. 글. 오인숙 사진. 안홍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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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주홍 생명과학과 교수, 김현진(대학원 생명과학과 16), 지중호(생명과학과 08), 이수현(에너지공학과 14) 학생 | ||
노벨 과학상에 대한 우리의 오해
지중호(이하 지) 교수님의 미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님께서 노벨상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 연구실의 분위기나 학생들의 모습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주홍 교수(이하 안)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앤드류 파이어 교수님 밑에서 박사 학위와 박사 후 연구원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교수님께서 노벨상을 탈지 몰랐어요. 내가 연구실을 떠나고 한국에 돌아온 지 10년 뒤인 2006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셨으니까요. 당시에는 실험실 규모도 작았고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며 매일 토론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게 전부였죠.
이수현(이하 이) 그렇게 작은 규모의 연구실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워요.
안 우리가 노벨상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있어요. 노벨상은 일생 동안 업적을 쌓은 과학자에게 주는 게 아니에요. 어떤 분야에서 아주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발견을 했을 때 주죠. 그래서 예상할 수가 없어요. 앤드류 파이어 교수는 1998년에 논문을 발표해 노벨상을 타기까지 8년이 걸렸는데 이 정도면 무척 빠른 거예요. 2003년 노벨상 수상자인 시드니 브레너는 1970년에 쓴 논문으로 수상했으니 33년을 기다린 셈이지요. 아무리 대단한 발견을 해도 노벨상 수상 여부는 당장 알 수 없어요. 그 발견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지는 기다려 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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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교수는 학생들에게 “넓게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면서 자기한테 맞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세계 무대에 접근하려면 해당 분야에서 좀 더 내공을 쌓고,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연구에 정진하다 보면 그런 노력들이 축적되어 큰 발견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 절실
김현진(이하 김) 연구 환경은 어떤가요? 노벨상 수상자 배출 국가들과 한국의 연구 환경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 큰 차이가 있어요. 교수가 연구 주제를 정해서 계획서를 제출하면 이를 평가해서 나라에서 연구비를 줍니다. 우리나라 시스템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관심은 응용 쪽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연구를 통해 어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등을 적어야 연구비가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결과 지향적인 연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반면 미국은 연구 자체가 가치 있다고 생각되면 연구비가 나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고, 그것이 축적되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발견을 할 수 있게 되죠. 우리나라처럼 목표 지향적이 되면 보다 깊은 원리적인 발견이 힘들어요. 순수 기초과학을 하는 연구자에게 활용도를 물으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죠. 그렇지만 그런 연구도 꼭 필요한 거예요.
이 미국이나 유럽이 기다려주는 분위기라면,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공학 쪽으로는 관심이 많지만 자연과학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관심이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자연과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 쉽지 않죠.(모두 웃음) 뭔가를 발견하고 논문을 냈다는 기사가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는 내용, 즉 과학보다는 그 결과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마치 메달을 딴 것처럼요. 그런데 한 나라의 과학 수준은 모든 사람들이 해당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의 정도로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예쁜 꼬마선충’(흙속에서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선충류) 특집기사가 실리면 사람들이 이 기사를 읽고 일상 속에서 대화를 나눠요. 이것이 바로 그 나라의 기초과학의 수준을 말해주는 거예요. 기초과학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수준이 약한 것은 입시 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연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교육과 멀어진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죠.
실험과 과정에 집중하는 교육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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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교수는 바람직한 과학 교육에 대해 “책에 있는 내용을 외우기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사실들이 밝혀졌는지에 초점을 맞춰 가르친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 ||
이 우리나라의 과학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안 앤드류 파이어 교수는 어렸을 때 실험을 한다며 매일 욕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는데 부모님이 그냥 놔뒀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당장 치우라고 했겠죠? 어려서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보일 때 그것을 더 키워주는 방향으로 과학 교육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답을 알려주고 외우게 해요. 답을 찾아가는 게 과학인데 말이죠.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좀 더 많이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책에 있는 내용을 외우기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사실들이 밝혀졌는지에 초점을 맞춰 가르친다면 좋을 거예요.
지 교수님께서 공부하셨던 당시에는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이 어려워서 외국에서 공부를 많이 했는데요. 지금 저희 세대에도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안 내가 대학원 진학을 고민했을 1980년대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국내든 해외든 외부적인 환경은 비슷할 거예요. 그런데 한국의 대학원 과정을 보면 너무 일찍 좁은 분야로 집중하는 것 같아요. 넓게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면서 자기한테 맞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세계 무대에 접근하려면 해당 분야에서 좀 더 내공을 쌓고, 개방적이어야 할 것 같아요. 꾸준히 그리고 묵묵히 연구에 정진하다 보면 그런 노력들이 축적되어 큰 발견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노벨 프로젝트’로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앞장
지 이번에 우리 한양대학교에서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내용이 궁금합니다.
안 노벨상 수상자들을 모시고 와서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고 자극을 줄 수 있는 강연을 하자는 취지로 ‘노벨 렉처 시리즈’가 시작됐습니다. 학생 및 과학자들과 아이디어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 매 학기 좋은 강연을 진행하면 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겐 자극이 되고, 비전공 학생들은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교양이 높아지리라 기대합니다. 지난해에는 200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애런 치카노버가 방문했고, 최근에는 2008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마틴 챌피 콜롬비아대학교 교수님이 오셨어요.
김 제가 생명과학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베리 마셜 교수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과학적 지식이 없는 학생들도 매우 흥미롭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강연이 더 많아지면 분명 학생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분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요?
안 올해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더 초청할 예정입니다. 초청 강의는 시작일 뿐입니다. 앞으로 이분들과 우리 학교 교수님들이 공동연구를 진행하거나,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게 목표입니다. 저 역시 학생들이 과학을 더 좋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자극할 수 있는 강의를 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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