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차 방송작가 정소진 동문(국어국문학과·96)
|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게는 하루 중 절반 가까이를 직장에서 보내거나 일을 하며 지낸다. 이 시간이 보다 즐겁고 의미 있으려면 일을 하며 느끼는 보람과 재미가 비례해야 할 터. 그런 면에서 정소진 작가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방송작가 17년차에도 여전히 즐겁게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
조금 색다른 아침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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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소진 방송작가는 2001년 MBC <생방송 화제 집중>을 시작으로 KBS | ||
정소진 작가는 현재 KBS 2TV <생방송 아침이 좋다>의 메인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은 월~목요일 방송은 외주제작사에서 만들고, 금요일 방송만 방송국에서 직접 제작한다. 금요일 방송은 오전 6시 10분부터 8시까지 1, 2부로 나뉘어 진행하는데, 그녀는 금요일 방송을 총괄하는 메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1부와 2부의 메인작가를 통합해 맡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침 방송이란 게 2시간 동안 죽 이어보지는 않잖아요? 출근 준비하면서 짬짬이 보기 때문에 긴 호흡보다는 짧게 완결되는 코너가 많은 게 특징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지난 4월에 방송사에서 기존의 아침 방송과는 다르게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개편해 젊은 피디들이 많이 투입됐어요. 그러다 보니 아침 방송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연예인이 등장하거나 쇼를 하는 등 버라이어티한 구성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죠. 저도 많이 배우고 있어요.”
과거에는 예능과 교양, 드라마, 라디오 등 방송작가의 영역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예능작가가 드라마를 쓰기도 하는 등 분야 간 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그녀 역시 아리랑방송에서 라디오작가를 한 경험이 있다. 이에 대해 정소진 작가는 “아직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지만 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프로그램 간 영역이 점점 깨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희 프로그램도 아이돌을 출연시키고 반응이 괜찮으면 공연도 하고, 외국인 여행 코너를 만드는 등 예능을 접목하고 있어요. 그렇게 여러 프로그램에서 점점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결국 고유의 영역이 깨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방송작가의 활동 범위도 보다 넓어질 테고요.”
방송작가는 프로그램의 살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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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소진 방송작가는 2014년 KBS <굿모닝 대한민국>, <아침>을 거쳐 현재 <생방송 아침이 좋다> 금요일 제작을 맡고 있다. | ||
그녀는 우스갯소리로 방송작가를 ‘방송잡가’라고 말한다. 대본 집필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잡다하게 많은 것을 한다는 의미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면 처음에 회의하고 기획하고 코너 만들고 이를 구체화하고 출연자 섭외하고 대본 쓰고 관리하는 것까지… 정말 모든 걸 다 해요. 일례로 피디가 촬영 나갈 때 몇 시에 어느 차를 타고 가야 하는지도 체크하고, 필요한 소품까지 다 챙겨야 하죠.”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기획과 진행을 도맡아 하기 때문에 제작 과정의 하나부터 열까지 관여하지 않는 게 없을 정도다. 그러니 프로그램의 살림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녀도 마찬가지지만 방송작가 대부분이 프리랜서로 활동한다. 그래서일까.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많고, 메인작가로 자리 잡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긴 안목으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인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실력과 함께 주변 사람들의 인정은 물론 운도 따라야 한다. 메인작가는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오래 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2000년에 방송작가로 입문한 그녀는 운 좋게도 2005년에 처음으로 KBS 보도국 시사 보도팀 <미디어 포커스>의 메인작가로 활동했다. 2006년에는 <도전! 골든벨>의 메인작가가 되어 이후 8년간 함께했다.
“대한민국에서 퀴즈 프로그램을 저처럼 오래 진행한 경우는 없을 거예요. 방송 한 달 전에 학교를 방문해서 학교에서 추천한 150명의 아이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누고 인터뷰를 따고, 그중 100명을 추려서 판을 벌이고 문제를 만드는 과정이 참 재미있었어요. 워낙 오래 하다 보니 퀴즈를 만드는 노하우도 생겼죠. 그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했어요. 요즘 아이들 버릇없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부모님 생각하고 나라 걱정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웃음)”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부딪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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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정소진 방송작가가 맡고 있는 KBS <생방송 아침이 좋다> 프로그램은 상쾌한 아침 공기와 함께 시작하는 신개념 아침 방송이다. 밤사이 일어난 따끈따끈한 소식으로 활기찬 아침 풍경을 전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 ||
방송과의 인연은 한양대 재학 시 수료한 ‘KBS 방송아카데미’가 시작이었다. 특별히 방송작가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 이것저것 많이 배우러 다녔고, 아카데미도 그중 하나였다.
“다니면서 특별히 뭔가를 배운 건 아니에요. 그곳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그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방송 자리가 있다며 하나둘 소개해주면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앞서 길을 걸은 선배로서 그녀는 말한다. 방송작가를 꿈꾼다면 아카데미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쳐 보라고. 방송국에서는 자료 조사 등을 위해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실하게 일하며 어깨 너머로 배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
“무조건 부딪쳐 보세요. 오히려 그런 모습을 높이 평가하는 분도 많아요. 요즘은 종합편성채널이나 케이블방송도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일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죠. 막상 부딪쳐 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으니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녀 역시 그랬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이 많았던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대에 진학했다가 뒤늦게 진로를 바꿨다. 도예 공부를 접고 다시 공부해 국어국문학과로 과감하게 방향을 튼 것. 돌이켜보니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이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은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만약 끝내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방송작가 정소진’은 없었을 것이다.
일하는 재미, 함께하는 즐거움
학창 시절 그녀는 수줍고 얌전한 학생이었다. 수업 시간에 늦기라도 하면 쑥스러워 선뜻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했고, 타인의 시선이 부끄러워 앞에 나가 발표하는 것도 꺼렸다. 그런 그녀의 성격이 일을 하면서 변했다.
“지금도 출연자에게 전화 거는 걸 싫어해요. 하지만 필요하니까 성격도 변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것을 방송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해야 하잖아요. 그게 훈련이 된 것 같아요.”
그녀는 방송작가를 ‘글’이 아닌 ‘말’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출연자가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지 어떤 말로 좀 더 쉽고 재미있게 풀어 쓰면 좋을지, 자신이 아는 가장 쉬운 말로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 그것이 방송작가의 역할이다. 그래서 “책 쓰는 것처럼 방송을 하면 큰일 난다”며 웃는다.
지난 17년간 시사, 교양, 다큐멘터리, 퀴즈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정소진 작가. 그녀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마다 두려워하기보다는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재미로 공부하고 글을 썼다. 이렇게 늘 긍정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자세야말로 17년차 방송작가의 힘이 아닐까.
“이제껏 살면서 배운 것들, 인연을 맺은 사람들, 경험했던 것들을 조금씩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 프로그램에 녹아 있죠.”
그녀가 지금 맡고 있는 <생방송 아침이 좋다>는 규모가 꽤 큰 팀이다. 제작진이 20여 명에 이르고 작가만도 7~8명이 투입된다. 그녀 역시 이렇게 큰 팀의 메인작가는 처음이다. 나름 실험적인 팀이어서 다양한 고민과 시도를 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처럼 재미있게 일하고 싶고, 다 같이 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파이팅하게 만드는 것도 메인작가의 역할이니까요.”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방송 전날은 밤을 새기 일쑤다. 아침 생방송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그간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도전해 보는 재미가 있으니 그마저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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