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듯함으로 일해요"
새벽 5시 50분, 백남학술정보관 지하 1층 자율위원실, 자율위원 세 명이 빨간 볼을 부비며 쇼파에 앉아있다. 동이 트기 전이라 아직은 새까만 밤이기에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도 않은 채 중도를 오르는 자율위원들의 발길은 천근만근이다. 겨울철 새벽 찬 공기보다 더 매섭게 느껴지는 칼바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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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 정리합니다. 사석 정리합니다!”
이윽고 자율위원 신현식(공과대·지구환경3), 김상익(토목4), 박종웅(토목3)군은 중도 지하 1층 휴게실 화장실 곳곳에 “사석 정리합니다! 사석 정리합니다.”를 우렁차게 외친다. 저기 휴게실 한 구석에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며 사석정리를 알려주니 부스스 일어나며 재빨리 제 1열람실로 들어간다.
6시, 드디어 사석정리가 시작되고 김상익 군이 제 1열람실 문을 잠근다. 뒤늦게 들어오는 학생들은 가차 없이 정리되는 것이다. 각 자율위원이 양 구석을 기점으로 좌석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3백 여 좌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학생들은 50~60여명. 마치 중 고등학교 시절 독서실 총무가 자리를 체크하는 듯, 엄숙하기 그지없다. 178번 좌석, 책은 놓여져 있지만 주인은 온데간데없다. 열람실의 명당자리라 여겨지는 한 좌석을 사석으로 만들어버린 주인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책상에서 책 한권을 든다. 이윽고 ‘사석정리가 돼 책을 보관하겠으니 자율위원실로 와 찾아 가십시오’라는 통보 용지와 다른 학생이 앉아도 된다는 알림용 노란 메모가 놓인다. 책을 들고 다시 다른 사석이 있는지 체크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통보용지가 놓여지고, 20여분 뒤 자율위원들이 책 20권을 들고 열람실 문 앞에 섰다. 1열람실 문이 유쾌하게 찰카닥 풀리며, 비로소 제 1열람실의 진정한 아침이 시작됐다.
자율위원실로 수거된 책을 들고 들어간다. 오늘은 평상시 수준이라며 책을 보관용 책장에 가지런히 놓고 사석 정리된 학생들을 기다린다. 똑똑똑. 한 명, 두 명 통보용지를 들고 당황한 표정으로 문을 열며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몰랐다는 학생, 이번만 봐주면 안 되겠냐는 학생, 순순히 신원을 밝히는 학생, 편의점에 갔다 왔다는 학생. 몰랐다는 학생도 있기 때문에 처음 한번은 아무 제재 없이 엑셀에 기록만 남긴다. 사석정리 된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저장되는 이 기록들은 학번, 이름 사석 정리된 날짜를 남기며 사석정리가 두 번이 될 땐 6개월간 백남학술정보관 출입 바코드가 정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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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무렵, 편의점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자율위원들이 돌아오는 곳은 다시 백남학술정보관. 방학이라 조금 늦게 차는 도서열람실이지만, 9시를 넘어서자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자율위원들을 찾기 시작한다. 책상형광등을 갈아달라는 학생, 분실물을 찾는 학생, 파손된 책상기물을 바꿔 달라는 학생 등 학생 수 만큼이나 그 요구사항도 각양각색이기에 자율위원들의 하루는 쉴 틈이 없다. 열람실 온도나 천장 형광등에 대한 불만사항이 접수될 때면 자율위원들은 학생과 직원들 사이의 매개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자율위원 업무 중 학생들의 불편사항 해결 외에 가장 중요 업무는 수시 열람실 순회다. 열람실의 면학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사람들을 제재하기 위한 열람실 순회에서 제일 많이 적발되는 사례는 역시 열람실 내 음료수 반입이다. 음료수 반입을 허락하면 기타 음식물 반입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하는 자율위원장 신현식 군은 음식물 반입이 면학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제 1순위라고 지목했다. 이외에도 자율위원회가 추진 중인 굵직굵직한 사업으로는 2월에 설치될 도난 사고 방지용 CCTV와 우산대여 서비스. CCTV 사업은 지난 해 학생 찬반투표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며, 우산대여사업은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받아 2월중 실시를 목표로 준비 중에 있다.
자율위원에게 주는 혜택이라고는 고정석과 사물함이 고작이지만, ‘자율’이라는 이름 하에 솔선수범하는 봉사이기에 자율위원들은 일의 강도와 관계없이 대가를 요구할 수도 없고 바랄 수도 없다. 일의 어려움을 미처 모르고 자율위원을 신청하는 학생들은 잡무에 시달리다 채 세 달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라는 것이 자율위원회의 설명이다. 자율위원장 신 군을 포함해 자율위원들이 그런 손해를 보면서 까지 남아있는 건 가끔 느끼는 뿌듯함 때문. “그저 뿌듯함 때문에 자신보다 남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우리를 보고 바보 같다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 자율위원들은 그런 평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다”는 신 군의 말 속에서는 자율위원으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렇기에 모두가 잠 든 엄동설한의 신새벽이지만, 진사로를 오르는 그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힘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