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과 함께 한 36년, 아름다운 추억으로"

40여만 평의 황량한 고잔 벌 대지에 첫 삽을 뜬지도 벌써 26년이 흘렀다. 억새풀만 무성했던 벌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웅장한 종합대학교로 변모했고 1만 명이 숨쉬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 했다. 안산캠퍼스는 26년의 세월이 언제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 왔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외길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있다. 바로 안산캠퍼스의 터줏대감 송일용 총무관리실장이다. 지난 69년 교직원으로 학교에 들어와 지금까지 휴가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다는 송일용 실장. 그는 87년 총무계장으로 안산캠퍼스에 둥지를 튼 후 현재까지 학내외의 각종 대소사를 하나하나 챙기며 학교의 변화·발전을 주도해 왔다. 위클리한양에서는 오는 2월 정년퇴임을 맞는 그를 만나 36년간의 ‘그’만의 한양사랑 이야기를 들어 봤다.

 

36년간의 교직원 생활을 마치고, 올해로 정년을 맞는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학교에 입사한지 36년, 안산캠퍼스에서 근무한지도 어느 덧 18년이 지났다. 안산시가 시로 승격되기도 전인 ‘반월면’일 당시, 김연준 전 총장님과 벌판이었던 이 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가 생각난다. 지금의 캠퍼스는 당시와 비교할 수도 없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 99학번 가운데 군대를 다녀온 학생들이 가장 크게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안산캠퍼스가 잘 돼야 한양대학교가 발전한다는 생각은 교수 및 우리 교직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총무관리실장이라는 위치에서 자신을 평가해 본다면.

 

지난 세월, ‘살림꾼’으로서 ‘보조자’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99년 3월 이후부터 작년까지는 가장 열성적으로 일했던 것 같다. 총무처는 용역 운전기사 고용에서부터 대내외적 행사유치까지 학내의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는 곳이다. 학연산클러스터사업을 중심축으로 기반 시설을 구축하면서 교무, 학사 등의 업무를 총무처로 집중시켰다. 워낙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이곳저곳에 관여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있었으나 끝까지 이런 식으로 하면 후임자가 어려울 것 같아 요즘에는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를 평가해 본다면 100점 만점에 80점을 주겠다. 개인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많고, 단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조그만 부분에서 대장 역할을 했을 뿐인데. 뭐, 별거라고(웃음). 그러나 마지막 직원회의 날까지 주인의식을 갖고 살림해 나갈 것이다.

 

보람된 일과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말해 달라.

 

학교는 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학교는 양질의 교육을 위해 학교 시설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생각으로 지난 6년 간 캠퍼스를 바꾸는 일에 열성을 갖고 일했다고 자부한다. 이론적으로 계획된 것만으로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가 없다. 지난 해 안산캠퍼스가 수도권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산학협력중심대학으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3백 억 원을 지원 받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기반 시설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것도, 학교 예산을 끌어오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개인적으로 안산캠퍼스를 현대화시키는데 기여한 듯해 보람을 느낀다. 또 총무과장으로 있을 때 인사제도를 현재와 같은 100퍼센트 공채채용으로 도입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다만 아쉬운 점은 환경 개선사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관상수들을 더 많이 심고 싶었고 자연사박물관도 의미 있는 공간으로 꾸며 보고 싶었다. 숙원사업인 노천극장 리모델링, 교문 신축 등도 마무리 하지 못해 아쉽다. 남은 숙제는 후임자에게 맡겨야 하지 않겠는가.

 

후임은 어떤 분이 왔으면 하는지.

 

계약업무에 능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거기에 공사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이런 업무능력을 두루 갖추기란 어렵겠지만 무엇보다도 대외친화력이 있어야겠다. 후임자에게 적을 만들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은데 말은 쉬우나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아무쪼록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폭 넓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 후임이 됐으면 한다.

 

   
 

퇴임이후에 시작되는 제2의 삶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재직기간 동안 한 번도 휴가를 가져보지 못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워낙 개미같이 일했으니 막상 학교를 떠나있으면 한동안은 해이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무엇이든 손을 놓고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큰 사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일거리를 찾을 생각이다. 아직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언급 할 수는 없지만 늘 스스로를 ‘움직이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갈 것이다. 그 동안 부족했던 가족과의 대화도 늘려보았으면 하는데, 그나저나 자식들이 아직까지 결혼들을 안 해서 걱정이다(웃음).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이 자식같이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사윗감, 며느릿감으로 보이더라(웃음). 지금은 물론 손주, 손녀로 보이는 때가 됐다.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재학 시절동안 꿈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대학시절의 낭만도 좋지만 그 다음에 오는 더 큰 행복을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많이 행동하는 사람이 많이 얻는다고 생각한다. 우리학교의 교육이념인 ‘근면, 정직, 겸손, 봉사’의 덕목을 실질적으로 행동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그래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한다. 자만심, 자존심을 버리고 열심히 노력해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한양과 함께 한 지난 세월을 회상해 본다면.

 

총무실장으로 현재까지 총 4번의 총무관리실장 임명장을 받았다.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내 사전에 ‘적당히’라는 단어는 없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신념으로, 모든 일을 ‘모’가 되게끔 밀어붙였다. 그렇게 지난 36년 간 한양과 함께 했다. 일에만 매달려 와서 그런지 스물세 살 때부터 피워온 담배가 유일한 취미생활로 남았다. 딸과 아내가 잔소리하는 통에 집에서는 마음껏 피우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끊을 생각은 없다. 과거 80년대에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할 때 암암리에 숨겨주며 간이 콩알만 해 졌던 기억, 안산캠퍼스에서 생활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8시에 출근해 저녁 7시까지 근무하며 열정을 쏟았던 기억들 모두 교직원이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이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떠나면 몹시도 아쉬울 것 같다.


사진 : 김현곤 학생기자 ioi00ioi@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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