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고통 함께 느꼈다"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해일(쓰나미)의 여파로 전 세계의 구호물자가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가운데, 본교 의료원에서도 구호의 손길을 뻗었다. 본교 의료원에서는, 대한의사협회에서 주관한 ‘민·관 합동 인도네시아 의료지원단(이하 의료지원단)’의 2차 의료지원단에 황환식(의대·가정의학) 교수를 단장으로 하는 5명의 의료봉사단을 파견했다.

 

   
 

인도네시아에 밀려든 지진해일로 피해를 입은 환자들에 대한 진료활동을 목적으로 다녀온 의료지원단은 지난 12일부터 22일까지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 체류하면서 진료활동을 수행했다. 위클리한양에서는 본교 의료봉사단장을 맡아 인도네시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수행한 황 교수를 만나 현지 상황과 의료지원 활동에 대해서 들어봤다.

 

현지 상황은 어떤가.

 

현지인의 말을 빌리면, 지진해일 발생 당시 반다아체 지방의 해안선이 안쪽으로 2키로미터 정도 들어왔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 했을 거라고 생각되는 내륙지방의 경우도 평야지대이기 때문에 해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때문에 내륙지방의 의료시설에도 많은 피해가 있었고 열악한 상황이었다. 해일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현지 병원 수용능력을 초과해서, 난민촌과 개인주택에 분산 수용 돼 있는 상태였다. 이 밖에, 인도네시아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군과 인도네시아군과의 정치·군사적인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의료활동을 수행하는 기간에는 별다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군과 인도네시아군이 같이 구호활동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현지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가.

 

해일 피해가 일어난지 약 3주 후에 현지에 도착했기 때문에 해일로 인한 피해복구가 많이 진전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해일 때 다쳤던 외상환자들의 사후 조치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치료를 주로 맡았다. 24명으로 구성된 의료지원단을 두개의 진료팀으로 나눠, 한 팀은 현지 난민촌 안에서, 다른 팀은 마을 민가 중 한 곳을 빌려서 진료활동을 했다. 본교 의료봉사단의 경우, 정진환(의대·신경외과) 교수는 현지의 해일 피해로 인해 목뼈가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당한 환자들을 주로 돌봤고, 신경외과 쪽의 지병을 갖고 있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진료활동을 병행했다. 강준구(의대·내분비대사) 교수는 지진해일로 인한 환자들을 돌봄과 동시에 현지인들 중에 지병으로 고혈압, 당뇨병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진료를 병행하기도 했다. 이해원(의대·신경정신) 교수는 신경정신과가 전문분야인 만큼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과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에 대한 정신과 치료를 담당했었다. 나와 김형주(의대·외과)교수는 주로 지진해일로 인해 외상을 입은 환자들에 대한 사후조치를 주로 맡았다.


   
 

현지에서 개선 돼야할 사항이 있다면?

 

전염병에 대한 위험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의료봉사단이 파견됐을 당시만 해도 전염병이 창궐할 만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었지만, 봉사단이 출발하기 얼마 전부터 이질과 홍역, 옴 등이 의심되는 환자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즉시, 이에 대한 치료를 병행하면서, 한편으로는 국제보건기구(WHO)와 질병통제센터(CDC :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에 연락을 취하는 등 긴밀한 공조관계를 유지했다. 앞으로 국제기구와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속적인 방역작업과 위생상태 개선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의료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먼저 언어소통의문제에 대해서 우려되었지만, 이번 의료지원단의 통역요원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현지 관계자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큰 어려움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현지의 수도시설이라든가, 전력 공급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이번 활동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남자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그 환자가 밝히기를 이번 지진해일로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과 모든 가옥과 재산 등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고 했다. 그 당시 그 환자의 상태는 환청, 불면증, 식욕저하 등 정신적 공황상태를 보였던 걸로 기억된다. 인술을 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지만, 우리 의료봉사단의 일정상 체류기간에는 한계가 있었다. 응급의료봉사단이라는 성격으로 인해 그러한 한계에 부딪혔을 때 가슴 아팠다.


사진 : 김현곤 학생기자 ioi00ioi@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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