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설렘을 지나,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건너"
3월을 맞는 캠퍼스는 어느 때보다 들떠 있다. 겨우내 추레하게 머리채를 드리웠던 버들가지에 황금빛 눈이 박히면서 파르스름 물이 오르는 광경은 차라리 경이롭다. 잘다던 숲들이 수런수런 깨어난다. 매운 추위 한 켠으로 햇살은 벌써 느낌부터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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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캠퍼스가 이렇듯 설레는 것은 바로 여러분들 때문이다. 전국에서 올라온 빛나는 눈동자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만으로도 대학은 도무지 정신을 치릴 수가 없다. 듬직한 선배들이 빠져나간 빈 자리는 풋풋한 젊음들로 다시 충전된다. 우리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새 주인을 맞는다. 환영한다. 그대들 새내기여!
우리는 묻는다. 지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오는 동안 나는 어떤 나였던가? 이제 가까스로 어렵고 고된 관문을 거쳐 이 자리에 섰지만 그것으로 족한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수동은 능동으로 바뀌고, 판단과 결정은 이제 내 몫이다. 여기에는 늘 선택과 책임이 따른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비로소 내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임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묻는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대학은 어떤 곳인가? 무제한의 자유인가? 그렇다. 대학은 여러분에게 무제한의 자유를 허락한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무제한의 자유는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월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대들은 심각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누구나 그랬고, 언제나 그랬다. 이게 내가 그렇게도 꿈꾸던 대학인가? 이런 공부를 하려고 내가 그 고생을 했나? 혼란은 고민을 낳고 고민은 회의를 낳는다.
좀체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대학 강의실의 부산스러운 모습, 연일 이어지는 선배들과의 술자리, 생각 외로 많은 과제물의 중압감 속에 이리저리 우왕좌왕 왔다갔다하다 보면,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도 잘 알 수가 없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체감 문화의 격차에 가치관의 혼란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도처에서 울려 퍼지는 생소한 구호는 올바른 가치 판단의 소재를 종잡을 수 없게 한다.
이런 게 무슨 대학이냐고 말하지 마라. 대학은 원래 그런 곳이다. 대학의 공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알아나가느 과정이다. 누구도 입 벌려 먹을 것을 넣어주지 않는다. 시시하다고 속단하지도 말라. 힘들다고 주눅들 것도 없다. 겉으로 아닌 척 해도 속으로는 누구나 당황스러운 것이 대학의 새내기들이다.
나는 그대들이 그대들에게 허락했던 모든 것들을 힘껏 즐기기를 원한다. 대학이 그대들을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그대들 스스로 대학의 주인임을 깨달을 때까지. 나는 그대들이 주어진 모든 것들 앞에서 더 왜소해지고 참담해지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나를 둘러싸고 있던 소아(小我)의 굳은 각질을 깨고 ‘참나’로 우뚝 설 때지.
나는 그대들이 더 깊이 고민하고, 철저하게 좌절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 그대들은 자신들이 속한 집단에서 ‘난 사람’이었다. 늘 주목 받는 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까지 그대들은 촉망받는 소수였다. 자랑스런 자녀요 선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꿈이었던 대학은 현실로 내려오고, 그현실은 냉혹한 경쟁의 세계다. 참혹하지 않은가?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켜려 하는데 다시 무한경쟁의 쳇바퀴 속으로 밀려드는 것은.
하지만 나는 그대들이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취업 준비에 열 올리고, 토플 토익 성적에 목을 매는 영악한 젊은이가 아니길 바란다. 단지 좋은 학고로 전과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고시 공부에 인생을 거는 맹목적인 청춘이 아니길 빈다. 목적과 수간을 혼동하지 않는 판단력, 출세가 곧 성공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진중함, 경박함을 가라앉혀 나를 무겁게 하는 식견, 꾸준함 속에 나날이 새로워지는 변화. 나는 그대들이 이런 어휘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들이 대학생활의 희망과 설렘을 지나, 절망과 좌절의 시간을 건너, 눈 맑고 귀 밝은 듬직한 젊음으로 거듭날 것을 믿는다. 이제 여러분은 한양의 한 가족이 되었다. 국적은 바꿀 수가 있다. 호적도 바꿀 수가 있다. 하지만 학적은 바꿀 수가 없다. 대학의 구성원이 된다는 일은 하나의 운명공동체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일이다. 한번 맺은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영원한 시작이다. 훗날 그대들이 다시 선배의 자리를 지나 졸업생의 학사모를 쓰고 교정을 나설 때, 그대들이 한양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듯, 한양도 그대들의 이름을 자랑스러워하게 될 것을 믿는다. 하여 우리는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