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은 천재의 학문이 아니다
본교 법대가 1959년 정경대학 법률학과에서 출발한지 반세기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법대는 최근 들어 발표되고 있는 각종 통계수치에서 드러나고 있듯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왔다. 소위 ‘한양법대’라는 단어가 고유명사로 사람들의 귀에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본교 법대가 짧은 기간 동안 압축적인 성장을 이룩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의 ‘한양법대’의 명성을 얻어낸 데에는 교수진의 노력과 학생들 또한, 본교를 졸업한 동문들의 활약 등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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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제22회 백남학술상을 수상한 이덕환(법대·법) 교수는 학생, 동문, 교수라는 이름으로 그 역할을 모두 담당해 오고 있다. 지난 1972년 법학사로 본교와 인연을 맺은 이 교수는 이후 석·박사학위를 본교에서 받은 후 유학생활을 마치고 93년 본교 법대에 교수로 부임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법분야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으며, 또한 지난 2003년부터는 본교 사법시험반 지도교수로 재직해 오고 있기도 하다.
의료법학 - 환자와 의사는 동등한 입장에 서야
사법고시반 지도교수로 더 유명한 이 교수의 연구 분야는 민법, 그 중에서도 의료법학 분야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좋아진 오늘날 의료 분야에 대한 법 제도 또한 개선된 것이 사실이지만 이 교수가 법학자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으려 하던 시절만 해도 국내 의료법학 분야는 연구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이 교수는 이를 보며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회상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의료사고의 분쟁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의사의 의료행위에 있어서의 과실로 인한 환자들의 손해배상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교수는 자신이 의료법학 분야의 연구를 시작할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엔 진료과실로 인해 일어난 소송에 있어 과실의 입증 책임은 대부분 의사가 아닌 환자에게 있었다는 것. 이 교수는 전문적 지식이 없는 환자들이 의료사고의 과실여부를 입증해야 하는 당시의 상황을 꼬집은 것이다.
이렇듯 당시 국내에 의료법학에 대한 법리연구가 미비했던 점에 대해 한계를 느낀 이 교수는 이 분야의 법리연구가 발달된 독일로 건너간다. 이후 이 교수는 자신의 의지를 담은 ‘민법상 의사의 설명의무법리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의료법학 분야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킨다. 그간 의료법리에 있어서 의사에게 유리했던 법리를 지적하고, 환자 지향적 법해석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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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의사에게 진단과 치료의 과정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는 절차가 의무가 일반화 됐습니다. 의사와 환자, 양쪽 모두에게 의사소통의 통로가 된 셈이죠.”
이 교수는 최근의 이러한 ‘설명의무’라는 의료법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보며 반가워했다. 이 교수는 본교 한양의료원, 구리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을 상대로 이에 대해 강의를 함으로써 이런 반가움을 몸소 표현하고 있다.
민법은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해야
이 교수는 미국유학 시절 UC Berkeley Law School 객원교수 재직할 당시 관심을 가졌던 ‘Wrongful Series’로 잘 알려진 미국의 의료과실에 관한 법 이론을 국내에 돌아와 소개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원치 않은 임신’(Wrongful Conception), ‘원치 않은 출산’(Wrongful Birth), ‘원치 않은 삶’(Wrongful Life)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이 이론은 의료사고 중 특히 의도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원치 않은 임신’은 의사의 잘못 시술된 불임수술로 인해 잉태된 태아의 출산에 대한 양육비 등의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 ‘원치 않은 출산’과 ‘원치 않은 삶’ 역시, 산모의 태아에 대한 정상성 여부를 판명함에 있어, 의사의 과실로 인해 기형아를 출산하였을시, 장애를 안고 태어난 기형아에 대한 특수양육비 등,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이 교수는 국내에 있어서 이러한 법리의 기준을 확립시키는데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민법영역은 그 대상이 현시대에 일어날 수 있는 분쟁에 대한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해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선진화된 법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선 시대와 상황에 맞는 법해석이 필요합니다. 특히 변화가 빠른 민법영역에 있어서 이러한 의료사고 발생시 필요한 법해석의 기준이 하루라도 빨리 확립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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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만 아니라 이 교수는 최근 들어 국내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의식불명의 말기환자의 연명치료의 중지’ 문제(일명 존엄사 문제), 성전환·동성애와 관련된 호적정정 및 혼인·친자관계 및 재산상속 등 새롭게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영역에도 연구를 하고 있다.
법학은 천재의 학문이 아니다
사실 법대 내에서 이 교수는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사법시험반 4회 출신이자 86년부터 3년 간 사법시험반 수석조교로, 이후 본교에 교수직으로 부임한 후, 200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법시험반 지도교수직을 맡아 학생들을 지도해온 이력만 봐도 이 교수의 법대 사랑은 구지 설명할 필요가 없을듯 하다. 그 때문 인지 후배이자 제자인 미래 법조인들에게 애정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의 충고는 법이라는 학문은 누구라도 도전해 볼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
“법학은 천재적 역량을 요하지 않습니다. 꾸준한 노력 만이 훌륭한 법조인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책 높이가 허리춤에 올라올 때쯤 되면 자연스레 법조인의 길로 올라설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법학도에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과 성실함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를 반증이라도 하듯 이 교수는 그만의 집중력과 성실함을 30여 년 간 법대사랑으로 승화시켜 오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강의실에서, 연구실에서 때로는 사법고시반에서 ‘법대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학력 및 약력
이덕환 교수는 1972년 본교 법학사, 88년 본교 법학석사, 91년 본교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그리고 독일의 Wurzburg Universitat에서 객원 연구원을 역임했다. 이후 미국 UC Berkeley Law School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하기도 한 이 교수는 1993년 본교에 부임했다. 2003년부터 본교 사법시험반 지도교수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으며, 42편의 논문과 5권의 저서를 갖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 민사법학회’, ‘한국부동산학회’, ‘대한의료법학회 감사’, ‘한국비교사법학회’ 등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