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협회 자율규제위원장 강병호(경상대·경영) 교수

외환위기 직후 금융계에 일대 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치던 IMF시기, ‘하이일드 펀드’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우리나라 금융위기의 수습에 크게 일조한 사람이 있다. 바로 금융감독원의 부원장을 지낸 강병호(경상대·경영)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투기등급이 떨어져 유통조차 되지 않던 회사채 기업어음을 보유하고 있던 투신권을 상대로 고객들이 대규모 ‘돈 찾아가기’ 경쟁을 벌일 때, 강 교수는 이를 막을 혁신적인 장치를 고안해 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학자

 

사실 지금까지 강 교수의 인생은 학자로서 만의 길은 아니었다. 강 교수는 대학 졸업 후 한국은행에서 10여 년을 근무한 베테랑 실무자이기도 하다. 그러한 그이기에 학자로서의 길도 항상 실무 가까이에 있었다. 89년부터 15년 간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발전을 위해 발족된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 후 98년 4월부터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다 증권관리위원회 때 인연을 맺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제의로 학교를 떠나 국난의 위기 때, 금융감독원의 부원장 직을 맡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참 많은 일들을 하면서 바쁘게 살았던 시기였습니다. 구조조정이 난무하는 비상시국에 중요한 금융 감독 정책을 관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으며, 결국 주어진 3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임기가 끝날 때쯤 여러 곳에서 공직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차분히 앉아 여유 있게 내 공부를 하고 싶었죠. 젊은이들의 열정과 활기로 가득 찬 캠퍼스가 그립기도 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의 4개 감독기구가 통합돼 탄생한 공룡 감독기구다. 강 교수는 IMF 금융개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학자로 꼽혀 부원장직을 맡게 됐다. 3년 간의 임기를 거치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주위의 호평을 받은 강 교수는 임기가 끝나던 2년 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강 교수는 현재 경상대학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 금융업협회의 자율규제위원장에 취임해 또 다른 중책을 맡았다.

 

“학계에 몸담다보면, 뜻하지 않게 공직에 불려나가 나라 일을 하거나,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기본적으로는 학자로서의 삶을 선호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회생활은 체질적으로 맞지가 않아요. 금융감독원 부원장 시절에도, 갖가지 잡음을 피하기 위해 3년 내내 구내식당에서만 밥을 먹었어요. 구조조정을 총괄하고 갖가지 인허가를 담당하는 막중한 책임을 띤 자리라 그만큼 부담이 크고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 때 제가 부정이나 비리를 저질렀다면 지금쯤 떼부자가 됐거나, 감옥에 있거나 둘 중 한가지였겠죠. 하지만 다행히도 이렇게 학교에 남아 있게 됐습니다(웃음). 조용히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 좋아요. 고요하고 편안하거든요”

 

‘공적규제보다는 자율규제로 풀어야’

 

   
 

강 교수가 이번에 새로이 맡게 된 한국금융업협회의 자율규제위원회는 증권회사의 영업행위와 관련된 규정의 제·개정권과 회원에 대한 조사 및 제재권 등을 보유하며, 협회 내에서 독립적 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다. 강 교수는 자율규제기능이 공적규제기능을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도록 공적규제기관과 자율규제기관 간에 감독범위, 감독권한 등에 대한 합리적 기능배분이 이뤄져야 하며 기능이 유사한 자율규제기관은 통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권업협회는 기본적으로 구성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익 단체입니다. 중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익단체의 특성상, 증권업계에서 스스로를 단속하기 위한 자율규제 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입니다. 정직하고 투명하며 공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분명히 규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증권사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시장 본연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며, 그 규제 역시 정부가 아닌 시장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고 봅니다.”

 

시장은 시장 속의 주체들이 더 잘 파악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규제 역시 시장에 의해 이뤄져야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지론. 자율규제로도 안 되는 일은 정부에서 관여해야 할 것이나, 각종 불공정경쟁 및 과열경쟁을 방지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규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살면서 가장 잘한 일-소중한 친구와의 아름다운 약속’

 

기자가 얼마 전 우연히 읽게 된 강 교수의 재무관리론 첫머리의 인상 깊었던 서문에 관해 질문하자, 강 교수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문을 열었다. 서문은 재무관리론의 공동저자인 고 이종연 교수와 그 가족들에 관한 글이었다.

 

   
 

“친한 친구였던 이종연 교수가 오래 전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저술중인 책의 마무리를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으므로, 할 수만 있다면 아이 넷을 뻥튀기 기계에 넣어 훌쩍 자라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자식들에 대한 애착이 강했어요. 저는 약속대로 이교수가 쓰다 남긴 책을 끝까지 집필해 그 인지세를 지금까지 유족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했으며, 얼마 전 큰 아이가 결혼을 했어요.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아 주례사를 하는데 만감이 교차해 그만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지요.”

 

세상을 떠난 친구 생각에 잠시 눈시울을 붉히던 강 교수는 친구의 뜻을 이어받아 책을 완성했던 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내 인생의 키워드, 겸손”

 

“겸손은 학자 생활을 시작하던 수십 년 전부터 제가 실천하고 지키려고 노력해 온 제 인생의 지표입니다. 특히 가진 자보다는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겸손이 중요합니다. 가진 자에 대한 겸손은 자칫 잘못하면 아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죠.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겸손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겸손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겸손을 말하는 강 교수의 얼굴은 매우 맑고 해사해 보였다. 수년간의 공직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강 교수. 한국금융업협회의 자율규제위원장이라는 또 다른 중책이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그러나 공적규제와 자율규제의 효과적 상호 보완을 통해 투명하고 공정한 금융계를 만들겠다는 강 교수의 얼굴에서는 앞날에 대한 굳은 각오도 함께 발견할 수 있었다. 청빈과 강직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채 새로운 활동을 펼칠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사진 : 김현곤 사진기자 ioi00ioi@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강병호 교수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원을 거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재무관리 및 금융제도를 전공했다. 1969년부터 13년 간 한국은행에 몸담았으며, 1982년부터 본교에 재직 중이다. 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 및 금융산업발전심의의원회 위원 등을 지낸 바 있으며,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을 거쳐, 1999년부터 3년 간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주요저서로는 ‘차등대출금리론’, ‘금융기관경영론’, ‘재무관리론’, ‘증권투자론’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에는 ‘채권수익률의 기간구조에 관한 연구’,‘부실채권과 부실금융기관의 정리방안’등이 있다.

 

저작권자 © 뉴스H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