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겨레가 숨쉬는 곳, 볼고그라드

지난 봄, 학교에서 VJ로 활동할 당시 우연찮게 해외봉사활동을 다녀온 분들을 대상으로 체험기를 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됐다.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경험한 사람들만이 가지고, 누리고, 느낄 수 있는 ‘가슴 속 무언가’가 있음을 알게 됐고, 그 활동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생겼다. 나와 러시아와의 인연은 운명이었을까. 그때 마침, ‘하계 해외봉사활동 모집’이라는 공지사항이 눈에 띄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러시아로 떠나는 날까지 내 머릿속은 ‘봉사활동을 하고 온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듣던 이야기를 이제 나도 체험하며 느낄 수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설렘만이 가득했다.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가 주최한 이번 해외봉사활동은 8개국 총 9개 지역에 학생들이 파견됐다. 내가 가게 될 곳은 러시아의 ‘볼고그라드의 솔로두쉬노’라는 마을이었다. 지명부터 낯선 곳이었지만, 과거 이국땅에서 다른 모습으로 다른 언어를 쓰며 살아야 했던 ‘까레이스끼’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는 곳이었기에 그 곳을 선택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부터, 각 지역이 독립 국가들로 분리되면서 타민족에 대한 배척을 피해 이주해 온 고려인들이 정착해 마을을 꾸려왔다는 이곳의 주민들은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내가 속한 봉사단은 우리말을 잊어버린 러시아 현지의 고려인들을 대상으로, 가르칠 교재와 교육을 담당한 한글 교육팀, 고려인 가정에 모기장 설치와 마사지를 맡은 노력 봉사팀, 태권도, 택견, 부채춤, 공예, 사물놀이 등 우리문화를 현지인에게 선보여줄 문화 교류팀, 현지 고려인들의 의식주와 생활상을 담고 노인 분들의 영정사진 촬영을 책임질 영상 촬영팀 이렇게 네 팀으로 나뉘어 활동을 시작했다.

 

촬영을 담당하게 된 나는 고려인들의 삶의 모습과 생각, 가치관들을 영상으로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이국땅에서 다른 얼굴로, 다른 말을 쓰며 살아간다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벅찬 일이었을까. ‘고려인’하면 그저 러시아에 강제 이주 당하여 살아가고 있는 우리 민족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던 내가 직접 그들을 눈으로 보고, 대화해 보면서 (물론 한국말을 다 잊어버려 러시아어 중 드문드문 한국말을 하는 것이긴 했지만)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요, 이국땅에서 한국인의 긍지와 명예를 드높이고 있는 한겨레라는 생각이 밀물처럼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웠다. 특히 현지에서 큰 농장을 하고 거부가 돼 살고 있는 고려인, 또 정계 재계의 유명 인사가 돼 있는 고려인들을 통해 본 그들의 끈질긴 생존력과 인내심은 감동 그 자체였다.

 

   
 

마을에서의 마지막 날. 그 동안 고려인 학생들과 봉사 활동단이 함께 익히며 열심히 연습한 공연이 열렸다. 러시아 학생들의 한국어 자기소개, 부채춤, 택견, 태권도 시범, 꼭두각시, 사물놀이에 이어 마지막으로 다함께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부르며 하나로 어우러졌다. 공연이 끝나자, 헤어진다는 아쉬움에 서로 끌어안고 모두들 눈시울을 붉혔다. 나라와 민족 초월해 그 곳에 계신 어르신들이 모두 내 부모와 같고, 그 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벌써 정든 내 친구가 돼 있었다.

 

앞서 그곳에서의 활동을 짧게나마 전했지만 볼고그라드에서 내가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말로써 모두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그곳에서 보낸 16박 17일은 나에게 더 없이 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주고, 나의 숨은 내면을 발견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는 것은 이 자리를 빌어 꼭 말하고 싶다. 귀국한 후에도 같이 간 팀원들에 대한 그리움, 또 그곳의 고려인 분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을 새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이번 활동이 우리의 젊은 날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는지 누구나 가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 겨레가 숨 쉬고 있는 볼고그라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곳’의 풍경과 ‘그 사람들’의 향기가 더욱 그리워 질 것만 같다.


글 : 김현희(사회대·신문방송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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