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다양한 이념을 담는 그릇"
광복 60주년을 맞아 역사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냉전이라는 외부의 제약조건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됐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일제 강점기 하의 독립 운동은 자유민주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이념적 구분보다는 민족의 색깔이 더욱 진하게 묻어나는 것들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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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냉전의 시대도 지났고 남북도 화해의 단계, 포용의 단계를 맞이하면서 이러한 독립운동들을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다양한 민족운동의 모습 중 하나 받아들이려는 학계에서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흘러 나왔고 광복 60주년이자 분단 6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에서야 이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찬승(인문대·사학) 교수의 연구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박 교수의 전공은 한국 근대사 부분에서도 일제 강점기의 민족운동이며 지난 11일과 12일에 광복 6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식민지 조선 사회운동의 발전과 국제적 성격’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하기도 했다.
민족주의는 다양한 이념을 담는 그릇
고려, 조선시대에도 아족(我族)이라는 말로 다른 민족들과 우리 민족을 구분하고 있으며 구한말에는 동포라는 말이 과도기적으로 사용되는 등 민족이라는 개념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다가 민족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6~7년경부터이다. 일제 강점기 하에서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는 불가피하게 민족운동,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나름대로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됐다. 박 교수는 이러한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과 형성, 분화까지를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책으로 정리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다양한 이념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자유민주주의, 사회주의 같은 것들을 담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의 1차적인 목표가 민족의 해방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의 수단으로서 사회주의 운동을 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독립 이후에 사회주의 운동을 그만 둔 사람도 있습니다. 시대적인 제약이었죠. 단순히 이념적인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민족운동의 범위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교과서에도 객관적으로 서술을 해서 민족사 안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고.”
새로운 시도, 군(郡) 단위나 마을 단위의 역사연구
박 교수는 지방사에도 관심을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역사 연구가 국가라는 큰 틀에서 이뤄져왔던 것과 달리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는 군 단위나 마을 단위의 연구를 하고 있다. 즉, 각 지방에서의 식민지 시대에 있었던 민족운동,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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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학에 있으면서 지방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가 흔히 역사라 하면 ‘국가사’를 생각하게 되지만 ‘마을사’라고 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연구 단위가 됩니다. 작은 마을도 하나의 우주와 비슷해서 작은 세포를 통해서 몸 전체를 파악하는 것처럼 마을을 연구함으로써 국가나 인류의 역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아주 재미있게 생각하고 있고 당분간은 계속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마을 연구를 시작할 때는 마을 사람들이 외부인이기 때문에 경계하고 연구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는 과정을 거치며 연구를 진행하고 요즘은 ‘마을사’도 많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박 교수는 연구보다도 우리 농촌사회의 해체를 걱정한다.
“안타까운 것은 농촌사회가 해체돼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국에 6천개 정도의 마을이 있다고 하는데 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노년층이기 때문에 10년이나 20년 뒤에는 몇 개나 남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역사나 문화의 뿌리였던 마을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마을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를 해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미리 사라지기 전에 기록으로라도 보존을 해 놓자는 것이 제 마음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역사의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
지방에서 민족 운동사를 연구했던 박 교수는 민족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많이 했고 10년 전만 하더라도 생존해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박 교수는 역사공부 뿐만 아니라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외에 민족운동을 한 사람들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혼란을 겪으면서 희생된 많은 사람들, 또 그들의 후손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안타까움 역시 컸다고 한다.
“민족운동을 한 분들이 해방 이후에 많이 살아계셨는데 남북이 분단되고 좌우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전쟁까지 겪게 되니까 희생된 분들이 많습니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제약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도 선택 안 할 자유는 없습니다. 우익은 우익대로, 좌익은 좌익대로 역사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이 많지요. 특히 좌익으로 간 사람들은 해방 이후나 6?25 때 많이 희생됐고 국가유공자 포상도 받을 수 없어서 가족들의 경우에는 더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난 일이니 이제 와서는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고 다만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죠.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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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시각을 위한 객관성의 문제 - 일본교과서
박 교수는 역사연구단체협의회에서 주최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역사서술과 역사인식’ 심포지엄에 발표를 맡아 일본의 후소샤판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왜곡에 대해 2차 대전 이후의 전쟁을 총력전으로 합리화, 관동군이 일으킨 만주사변 미화, 교전권 부인한 일본의 평화헌법 비판 등을 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역사연구단체협의회는 지난달 말 한국사연구회, 동양사학회, 서양사학회, 역사교육연구회 등 연구단체 48곳이 결성한 학술단체이다.
“일본 역사교과서는 8월말까지 채택이 되는데 채택률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일본시민사회의 양식이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일본의 정계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파적인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강력하게 후원하고 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검토를 해보니 교과서는 우려할만하고 교과서라기보다는 선전물에 가까운 것이라 어린 학생들이 읽거나 더군다나 교과서로 배우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박 교수는 일본의 양식 있는 지식인이나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이러한 움직임을 견제해야하며 궁극적으로는 공동의 의식을 갖는, 공동번역을 할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고 박 교수는 이야기한다.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생기는 국가주의의 파고를 낮추는 노력을 해야지 우리 스스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우리 역사를 올바로 볼 수 있게, 근현대사를 보는 올바른 시각을 갖게 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근현대사는 오늘날 연구해야 하고, 누군가 써야하고, 누구나 다르게 쓸 수 있습니다. 읽는 사람도 얼마든지 마음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고. 다만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글을 보면서 이것을 이렇게 볼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올바른 시각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객관성입니다. 민족, 민족주의를 앞세우기보다는 정확히 어떤 것인지를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무엇을 고취시키거나 이런 것보다는 다만 학자로서 연구하는 것이지요.”
사진 : 이수정 사진기자 feeler2020@ihanyang.ac.kr
| 학력 및 약력
박찬승 교수는 1979년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83년에 석사학위를, 90년에 “일제하 실력양성운동론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1년까지 목포대학교 인문대 사학과 교수,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충남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자리를 거쳐 지난 3월 본교 사학과에 부임했다. 미국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Visiting Scholar at Harvard University, Korea Institute), 5.18 광주민중항쟁 사료편찬위원, 교육인적자원부 기초학문육성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 역사문화학회장이며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 등이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