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불공정, 자율적 규제가 최선"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이곳 캠퍼스"
온 나라가 외환위기로 휘청이고 경기침체와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매섭기만 했던 당시 우리 경제의 조타수 역할을 해준 이가 있다. IMF 당시 금융감독원의 부원장을 역임한 강병호(경상대·경영) 교수가 바로 그다. 강 교수는 3년간의 임기를 거치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주위의 호평을 받았고, 현재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며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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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교수는 한국은행에서 10여 년을 근무한 베테랑 실무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조용히 학문에 정진할 수 있는 대학이 자신이 있을 곳이라 생각해 지난 82년 처음 본교의 교단에 섰다. 그 후 98년 4월부터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제의로 학교를 떠나 국난의 위기 때, 금융감독원의 부원장 직을 맡기도 했다. IMF 금융개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학자로 꼽혀 추대된 강 교수는 당시 ‘하이일드 펀드’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우리나라 금융위기의 수습에 크게 일조했다. 당시 투기등급이 떨어져 유통조차 되지 않던 회사채 기업어음을 보유하고 있던 투신권을 상대로 고객들이 대규모 ‘돈 찾아가기’ 경쟁을 벌일 때, 강 교수는 이를 막을 혁신적인 장치를 고안해 냈던 것이다.
강 교수는 “구조조정이 난무하는 비상시국에 중요한 금융 감독 정책을 관장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구조조정을 총괄하고 갖가지 인허가를 담당하는 막중한 책임을 띤 자리라 그만큼 부담이 크고 유혹도 많았다”는 강 교수는 “결국 주어진 3년의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며 웃어 보인다. “그 후에도 여러 곳에서 공직제의를 받기도 했으나 젊은이들의 열정과 활기로 가득 찬 캠퍼스가 그리워 돌아왔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언제나 교정”이라 말한다.
교단에 서던 중에도 그는 실무적 능력을 인정받아 한국금융업협회의 자율규제위원장으로 취임해 또 다른 중책을 맡기도 했다. ‘시장은 시장 속의 주체들이 더 잘 파악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규제 역시 시장에 의해 이뤄져야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지론이다. “자율규제로도 안 되는 일은 정부에서 관여해야 할 것이나, 각종 불공정경쟁 및 과열경쟁을 방지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규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이러한 대외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본적으로는 학자로서의 삶을 선호 한다”고 말한다. “조용히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 좋다. 고요하고 편안하다”며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겸손’이란 이야기를 꺼낸다. “겸손은 학자 생활을 시작하던 수십 년 전부터 실천하고 지키려고 노력해 온 인생의 지표”라 힘주어 말하는 강 교수는 특히 가진 자에 대한 겸손이 아첨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한다.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겸손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해 언제나 겸손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는 그다.
수년간의 공직생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강 교수. 그의 말대로 자신이 있어야할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그는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겸손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자신의 제자들의 조타수 역할을 해주고 있다.
황정현 학생기자 4reallove@hanyang.ac.kr
| 학력 및 약력
강병호 교수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원을 거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재무관리 및 금융제도를 전공했다. 1969년부터 13년 간 한국은행에 몸담았으며, 1982년부터 본교에 재직 중이다. 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위원 및 금융산업발전심의의원회 위원 등을 지낸 바 있으며,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을 거쳐, 1999년부터 3년 간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주요저서로는 ‘차등대출금리론’, ‘금융기관경영론’, ‘재무관리론’, ‘증권투자론’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에는 ‘채권수익률의 기간구조에 관한 연구’,‘부실채권과 부실금융기관의 정리방안’등이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