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는 자여, 희망찬 '+1'을 즐겨라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한다. 듣는 이의 가슴, 그 깊숙한 어둠과 빛을 건드리는 가사와 부드러운 음성이야말로 김광석 노래의 미덕이다. 요즘은 ‘서른 즈음에’가 기자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기자의 나이는 스물일곱, 학부생치고는 다소 노쇠한 편이다. 어릴 때에는 20대 후반이면 당연히 결혼을 고민할 줄 알았다. 서른에 다다른 선배 독자 여러분에게는 ‘가소로운’ 얘기겠지만, 덜렁대기만 하는 4학년에게 한 살 더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기만 하다.
오는 18일은 설이다. 누구나 2006년의 나이에 ‘1을 더한’ 새로운 숫자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한때는 하루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국민학교에 - 기자는 막바지 ‘국민’학교 세대다 - 다닐 무렵, 한 살이라도 더 빨리 나이를 먹고 싶어서 떡국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두 살 먹었다”며 웃기지도 않은 자신감을 발산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안 신드롬’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제 떡국은 혐오식품으로 자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는 외모를 가꾸기 위한 산업이 시장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워나가고, 누가 더 어려 보이는지를 겨루는 ‘동안선발대회’까지 생겨나는 걸 보면 동안은 이 시대 또 하나의 미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리고 ‘동안’의 시대에서 ‘나이듦’은 두려움이다.
‘1을 더하는’ 나이듦의 두려움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나이듦이 두려운 이유다. 사람은 성장기가 끝나는 20대 중반부터 생리적 퇴화과정이 시작되며, 기능적으로는 35~40살부터 노화 현상이 진행된다. 피하지방의 감소와 땀샘의 위축으로 주름이 점점 늘어나고, 동공이 작아져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에 차가 분주히 지나는 길목의 노인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후각과 미각이 떨어져 전에는 맛있던 음식이 요새는 맛없다고 느껴지며, 뇌의 크기와 무게도 줄어들어 움직임도 둔해지고, 내분비계통과 면역기능이 약화되며, 일단 병에 걸리면 회복이 느려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양의 품을 떠나 새로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는 4학년 학생들에게 ‘나이듦’은 ‘늘어나는 책임’과 동의어다. 오는 22일 졸업을 앞두고 있는 박미소(사회대·행정 4) 양은 취업에 성공했지만 스물다섯의 2007년이 두렵기만 하다. “학기 막바지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날이 갈수록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예요. 직장 생활에서 얻는 성취감도 좋지만, 늘어만가는 책임은 학교에 다닐 때 왜 마냥 자유로움을 만끽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후회로 흘러가죠”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있는 홍성도(공대·기계 4) 군에게도 스물일곱의 새해는 막연함, 그 자체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과연 내가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됐는지 의심스러워요.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내가, ‘무책임하게 나이만 먹는 것이 아닐까’하는 걱정합니다” 이렇듯 나이듦의 두려움은 죽음과 가까워지는 현실, 그리고 늘어만가는 책임에 대한 중압감 등에서 연유한다. 하지만 떡국 한 그릇과 함께,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또 한 살의 나이듦. 그렇다면 또 다른 나이의 ‘+1’을 앞두고 있는 한양인들은 과연 어떤 ‘나이듦'을 준비하고 있을까.
20·30·40·50, ‘1을 더한’ 한양인들의 2007
유광석(언정대·정보사회 1)군은 올해 스무살이 된다. 지난해 입학했지만 1월에 태어난 소위 ‘빠른자’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생 선배들이 부러워 할 청춘의 꽃, 스무살이지만 유 군에게도 나이듦이 마냥 기쁜 일은 아니다. 10대와는 다른 책임의 무게를 조금씩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청소년이라는 말은 어색할 나이잖아요” 하지만 유 군에게 2007년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우선 연말에 기다리고 있는 대선은 생애 첫 투표다. “거창한 의미는 부여하고 싶지 않지만, 성인만의 권리가 내게도 주어졌다는 설레임이 기분 좋은 일이죠.” 또한 이 군에게 가장 중요한 올해의 과제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한대신문사에서, “수습 딱지를 떼고, 모든 한양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멋진 기사를 쓰는 일”이다. 더불어 머지않아 거쳐야 할 병역의 의무를 위해, 차근차근 학군단을 준비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목표다. “내게 스무살은 ‘하고픈 일’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아진 나이입니다. 책임을 자유로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한 해를 만들고 싶어요.”
이상은(연영 88) 동문은 올해로 서른여덟이다. 스무살 새내기 시절, ‘담다디’로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온 국민에게 젊음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는 이 동문. 그러나 이 동문은 이미 12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한 노련한 뮤지션이다. “스무살의 나이에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청춘스타의 모습만을 바라는 당시 연예계는 견디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발랄해야만 하는’ 20대의 모습을 벗어 던진 이 동문은 이후 영국과 일본 등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뮤지션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이 동문은 다음 달 출간될 책, 그리고 연말에 발표할 새 음반을 잘 만드는 것이 올해 목표다. 늘 새로움을 만드는 이 동문에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강해지는 일”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느끼는 것은 좋아요. 이전에 혼자서는 인터뷰조차 할 수 없었던 내가, 이제는 자유롭게 하고픈 얘기들을 하고 있으니 더 좋아졌잖아요” 서른여덟의 나이만큼 점점 강해지고 있는 이 동문은 일에서의 즐거움과 압박감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진정한 ‘프로’다
사회봉사단 국중대 과장은 올해로 마흔둘이다. 직장과 가족에서의 안정을 이뤘지만,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책임감과 “지금까지 이룬 성과들이 어느 날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크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때 역시 40대라고 말한다. 정신적 성숙과 사회적 노하우,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는 40대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라는 것. 국 과장은 1월 1일부터 40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 직소퍼즐을 한 조각씩 맞춰가며 오는 16일 목표달성을 앞두고 있다. “작심삼일은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올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도 큰 성과죠” 국 과장은 올해 사회봉사단이 지역사회의 힘이 되는 동시에, 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리더쉽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길 바란다. 또 늘 사랑을 줄 수 있는 남편과 아버지가 되고 싶다. “40대는 인생의 하프타임입니다. 전반전에 앞만 보며 달려왔다면, 앞으로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인생의 비전을 밝힐 수 있는 후반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김용수(공과대·원자시스템) 교수는 올해로 쉰하나다. 50대에 들어선 김 교수에게 나이듦은 더 이상 좋고 나쁨으로 나눌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젊은 시절 원숙한 훗날의 모습을 바랐지만, 지금도 여전히 좀 더 성숙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원래 ‘대충’과 ‘적당히’는 용서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때문에 좀 더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지금, 아직도 미숙한 내 모습이 아쉽죠” 그래서 김 교수는 늦었지만 50대가 불혹(不惑 :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됨)의 나이가 되기를 바란다. 김 교수는 20년에 접어드는 학문의 길을 대표할 수 있는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솔직히 써야했기 때문에 썼던 논문도 있었어요. 하지만 올해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용될 수 있는 논문을 쓰고 싶습니다. 지난해부터 준비해왔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김 교수는 50대를 “징검다리의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40대까지 달려오며 얻은 성과와 노하우를, 이제 아무런 사심없이 후배들에게 전해 줄 때입니다”준비하는 자여, 희망찬 ‘+1’을 즐겨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거짓말이다. 물론 나이를 뛰어넘어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이에게 나이는 그리 중요한 가치가 아니지만, 언젠가 찾아 올 죽음의 그림자와 가까워진다는 것, 그리고 더 많은 책임을 알아간다는 것은, 젊은 날의 자유로움과는 영영 같아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을 준비하는 한양인들은 누구나 긍정과 희망을 얘기한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근거는 ‘+1’을 ‘사라지는 자유’가 아닌, 더 성숙한 희망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와 노력에 있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걸 볼 수 있다는 것”, “가장 좋은 곡은 가장 오래된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젊은 날의 기억은, 추억의 자리에 머무를 때 아름다운 것”, “세월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맞춰가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기자는 ‘나이듦’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며 만나는 이들마다 ‘나이듦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늙어보인다”라는 말에는 화를 내는 그 모든 이에게, “나이듦은 좋고 나쁨으로 나눌 수 없다”는 답변이 가장 많이 돌아왔다. 또한 이렇듯 나이듦을 긍정하는 한양인들의 답변도 들을 수 있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나이듦이기에, 새로운 한 해를 희망으로 채우는 방법을 한양인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일테다. 기자가 사랑하는 한 친구는 지난해를 마무리할 즈음 “2010년까지 내 나이를 계속 스물여섯으로 속일테다”라고 말했다. 친구여, ‘나이듦’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분명 희망찬 ‘+1’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준비하고 있을 친구에게 이 ‘뻔한’ 기사를 띄운다.
변 휘 취재팀장 hynews69@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