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에의 열정 일깨워 준 추억이 최고의 보물"

“취재는 무슨 잠깐 음료수나 마시고 가”라는 말에 머쓱해하며 찾아갔던 남윤봉(법대·법) 교수와의 인터뷰는 어느새 2시간을 훌쩍 넘어 진행됐다. 그리고 한양의 미래를 이끄는 교수들에게 듣는 학문적 얘기보다 본교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추억과 인생의 깨달음에 대한 얘기는 2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교수 이전에 ‘한양에 빚진 자’로서 그 빚을 후배들에게 되갚고 있는 남 교수는 최근 사법시험 준비생뿐만이 아닌 다양한 목표를 가진 모든 법대생들을 위한 공부모임 ‘진수림(眞修林)’을 준비하며 다시 한 번 몸소 ‘사랑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한법인을 위한 공부모임 ‘담헌재’와 ‘진수림’을 연다


남 교수는 지난 겨울부터 ‘남윤봉 교수와 함께하는 겨울방학 민법교실’을 시작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공부모임 담헌재를 여는 한편, 이제 또 다시 ‘진수림’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남 교수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바쁘게 학생들을 위해 뛰는 이유는 바로 단지 ‘교수님’이 아닌 한양의 동문, 학생들의 선배, 학부형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다.

“나는 단지 강단에 교수 중의 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선 30년전에 한양대를 졸업한 여러분의 선배이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인 동시에, 자식을 한양대에 보낸 학부모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나는 해야 할 일도 많아요. 법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전해야 할 지식들뿐만 아니라 선배로서, 그리고 학부모로서 책임을 느끼는 것이 더 많죠. 그래서 나는 잔소리도 더 많이 하고 싶고, 기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더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해 11월 역시 본교 동문이기도 한 박찬운(법대·법) 교수의 제안으로 시작된 ‘담헌재’는 현재 약 6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알찬 공부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박 교수의 제안으로 ‘담헌재’를 여는 데 함께 일했던 남 교수는 60여명의 제한 인원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들이 또 다시 눈에 밟혔다. 그래서 남 교수는 3법학관 신축으로 1법학관에 여유 공간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다시 한 번 ‘진수림’의 준비에 나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사법고시 준비생만이 아닌 다양한 생각과 꿈을 가진 법대생들 모두에게 그 문을 열고 있다.

“많은 법대 학생들에게는 사법고시가 가장 중요한 목표죠. 그래서 우리 고시반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참 대견해요. 하지만 모두가 고시반에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합격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다 같은 제자들인데 선배로서, 학부모로서, 그리고 선생으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열심히 찾아봐야죠. 그래서 ‘진수림’의 지원자격은 학점이 아니라 ‘계획을 가지고 지적능력을 배양하는데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려는자’,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협동해 자기목표 달성을 준비하려는 자’입니다. 학생들에게 지정좌석 하나 정해주고 공부하는 모습 지켜봐주는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뿌듯합니다.”

‘공부하고 싶다’는 자부심을 일깨워 준 한양의 추억


남 교수는 “‘왜 저렇게 나서서 고생을 하나’라는 눈총을 받아도 오히려 좋은 반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많은 동료교수들이 앞으로 학생들을 위해 더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배들의 발전은 곧 모든 동문의 자부심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보다 더 힘들게 공부해야 했던 수많은 한양 동문 중의 한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는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바람도 남 교수의 노력을 빚어내는 이유 중의 한 가지다.

“내가 입학했을 때의 법대는 지금과 많이 달랐어요. 당시에는 우리 법대가 다른 학교에 비해 역사도 짧고 수준도 높지 않아서, 함께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복학한 후에 많이 달라졌더군요. 법대 육성 방안의 하나로 정말 우수한 후배들이 스카웃됐던겁니다. 대검찰청 차장인 정동기(법학 76년 졸) 동문도 그 후배들 중의 한 사람이죠. 그래서 후배들처럼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되고 싶다고 굳게 맘을 먹었어요. 물론 어학같은 과목은 기본이 워낙 없어서 따라잡기가 힘들었죠. 하지만 복학 후 매일 새벽 6시에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밤늦게까지 공부했더니 법학 관련 과목은 꽤 잘하는 축에 들 수 있었죠. 그래서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리고 남보다 좀 더 노력했던 남 교수에게 학창시절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찾아왔다. 장학금 혜택이 지금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당시에 힘들게 공부하던 남 교수에게 전해진 장학금은 단지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을 잊게 해 준 것 이상의,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자부심인 동시에 그 노력을 인정해 준 은사들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소중한 추억이었다고.

“어느 날 집에 왔더니 학장님께서 학장실로 호출하는 전보를 보내셨어요. 지금과는 달리 그 때는 교수님들의 말씀 한 마디면 곧 법이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잔뜩 긴장해 있었죠. 다음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침에 도서관에 앉아서 안절부절하다가 학장님께서 출근하실 시간을 맞춰서 찾아가 먼저 기다리고 있었죠. 내가 꾸벅 인사를 드렸더니 학장님께서는 ‘무슨 일이냐’라고 하시며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부르셨는지도 모르시더군요. 그래서 내심 ‘나쁜 일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죠. 전보를 받고 왔노라 말씀 드렸더니 그때가 되서야 학장님께서 봉투를 하나 주시며 ‘한 학기 학비를 내고 조금 남을 거다. 남는 것은 책을 사서 봐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까지 나는 수표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한데 묻지도 못하고 ‘왜 이렇게 얇을까’라고 혼자 궁금해하며 고개만 숙였죠. 그리고 쭈뼛쭈뼛 학장실을 나와 도서관에서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보니 16에 0이 4개예요. 그 때 학비가 한 학기에 7만원이 조금 넘었으니까 엄청나게 큰돈이었죠. 부모님께 ‘이번 학기 학비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말씀드리는데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 때 등록금을 샀던 법학관련 책자가 아직도 내 최고의 보물 중 하나입니다.”

“한양이 내게 준 것보다 더 많이 후배에게 전했으면”


후배인 동시에, 제자, 그리고 아들딸인 학생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남 교수. 때문에 강의실에서는 교수로서의 직분에 충실하지만, 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교수 이전에 선배로서, 아버지로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그것은 남 교수가 한양에서 얻은 기쁨을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남 교수만의 교육철학이다.

“대학 졸업 후 자리잡았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뒤늦게 석사, 박사학위를 한 건 단지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목표였죠. 하지만 한양대의 강단에 서기까지 참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95년에 3월 1일자로 조교수로 임용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빈 교수연구실이 없어서 창고로 쓰던 공간을 줬지만 후배들을 불러서 직접 청소도 하고, 도배도 했죠.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웃어넘기겠지만 몰라도 내게는 한양인들을 만나고 내 지식을 전할 수 있는 이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요. 내게 공부하는 것의 즐거움을 가르쳐 준 곳, 그리고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곳도 바로 한양의 캠퍼스이기 때문이죠.”

남 교수가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단 한 마디로 정리되지 않는다. 우선 더 많은 얘기를 듣고 보며 품 넓고 여유로운 젊은이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전공지식 이전에 교양인으로서의 기본을 쌓을 것을 주문한다. 더불어 성공만을 좇지 말고 도전과 실패로서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한양의 얼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어디에서나 예의를 지킬 것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한양인로서의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한양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남 교수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한양인에게 당부하는 이유는 그만큼 한양의 후배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기자가 만난 남 교수의 모습은 학자의 진중한 조언보다 늘 우리 곁에서 불편함을 챙겨주고 어루만져주는 꼭 필요한 잔소리가 더 어울렸다. 그리고 한양의 맥박이 냉철한 이성, 그리고 동시에 뜨거운 가슴을 함께 지닐 수 있는 이유를 바로 남 교수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글 : 변 휘 취재팀장 hynews69@hanyang.ac.kr
사진 : 한소라 학생기자 kubjil@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남 교수는 지난 76년 본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80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90년 경남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95년부터 본교 강단에 섰으며 2002년 서울캠퍼스 학생처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전국대학교 학생처장협의회장으로 활동했다. 한양법학회 회장 및 한국재산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비교사법학회, 한국민사법학회, 한국법정책학회에서 활동했다. 법학일반론, 지적재산법강의, 파산법입문, 생활법률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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