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속에서 빛난 열정의 얼굴들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만으로 농촌학생연대활동(이하 농활) 현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용산에서 평택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안중을 찾았다. 안중터미널에서 수원행 버스로 갈아타고 청북면에서 내려 농활단이 머무는 고잔 3리 까지는 도보로 이동했다.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닌다는 마을버스를 기다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하늘은 기자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보슬보슬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일하는 모습을 취재해야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마을주민이 트럭을 타고 마중을 나왔다. 트럭 뒤에는 이제 막 수확을 시작한 노각(늙은 오이)이 한 아름 담겨 있었다.
매 계절마다 학교 게시판과 대자보를 통해 농활을 모집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짧게는 2박 3일에서 길게는 9박 10일까지 농활은 계속된다. 학우들은 농촌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 안타깝게도 농활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기자 역시 무슨 일을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청북면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지 30분이 지나자 더 이상 전화 안내만으로 농활단을 찾기 어려워졌다. 고잔리의 상징인 ‘삼덕초등학교’에 마중 나온 주민의 트럭을 타고 10분을 더 들어가자 드디어 현장에 도착. 노각을 수확하는 밭에는 여러 그룹으로 나뉜 언론정보대 학우들이 부지런히 노각을 실어다 트럭으로 날랐다. 취재진 일행을 마중하느라 트럭을 사용하지 못해 논바닥에는 갓 수확한 노각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바퀴가 하나 달린 수레에 가득 실은 노각을 운반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금세 익숙해진 듯하다.
평택 특산품 노각, 우리 손에 있소이다
고잔 3리 농민들과 농활단은 노각을 수확하느라 분주했다. 6월 하순부터 8월 중순 무렵까지 수확되는 노각은 대표적인 평택의 특산물이다. 수확되면 곧장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출하된다. 노란 우비를 입은 학우들이 수레를 연신 움직이며 노각을 날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1톤 트럭에 노각이 가득 찼다. 고잔리 곳곳에서 활약하는 농활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손이 달린다. 따라서 자연히 주민들의 반응도 좋다. 농민 신평호(남·51) 씨는 “남의 귀한 자식들이 농촌까지 내려와서 참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 나도 대학생 딸이 있지만 자식 같은 학생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 말했다. 이어 “주민에게 피해 주지 않겠다고 마을회관에서 손수 밥해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가짐이 어른스럽다”며 대견스러워 했다.다른 가구를 찾았다. 노란셔츠와 밀짚모자, 예비군복이 잘 어울리는 다른 무리의 학우들이 트럭에서 노각을 내리며 씻고,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한편에서는 박소연 (언정대·신문방송정보사회 1) 양이 노각을 포장할 박스를 조립하고 있었다. 주변 학우들은 그녀가 “박스 조립에 도가 트인 것 같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박 양은 “자주하다보니 박스를 빨리 접을 수 있게 돼 분업 차원에서 박스만 접게 됐다”면서 “여름농활은 봄에 비해 일감이 적어 수월한 편이다. 일주일 남짓 다녀가는 거라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같은 학생들의 열정에 농민들은 고마움을 나타냈다. 노각 농사를 짓는 김 씨 할머니(여·61)는 “이젠 학생들이 단골손님이 된지 오래라 해마다 기다려진다. 일손이 달려 아들 녀석이 와서 도와줘도 바쁜데 학생들까지 와서 거들어 한결 편하다”며 뿌듯해했다. 이어 김 할머니는 A급 노각을 들고선 “잘생긴 이 노각처럼 학생들도 멋있게 늙어가지 않겠냐”며 활짝 웃었다.
다채로운 분반 활동 통해 농민들과 하나된다
농활에 참여한 학우들은 노각을 수확해 포장하는 일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 장마철을 맞아 배수로를 정비하거나 비닐하우스 안에 잡초를 제거하는 것도 농활단의 몫이다. 한 학우는 “잡초를 뽑을 때는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으나, 막상 노각 따기와 포장하는 일을 해보니 그나마 잡초 뽑는 게 가장 쉬운 거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해가 저물고 난 뒤에도 농활은 계속됐다. 언론정보대 학생회장 정윤조(광고홍보 4) 군은 은 “농활의 목적이 농촌을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라 식사를 마치고 나면 공부를 한다”면서 “농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한다든가 분반활동을 통해 마을 주민들 가정에 찾아가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전했다. 특히 분반활동이 이채로웠다. 여성 반, 아동 반, 청장년 반으로 나눠 이른바 각개전투를 벌인다. 여성 반의 경우 어르신, 특히 아주머니나 할머니를 찾아 얼굴에 마사지 팩을 해드리면서 함께 저녁시간을 보낸다. 김 씨 할머니는 “생전 해보지 못한 피부미용을 받아 학생들이 만날 왔으면 좋겠다”며 기뻐했다. 아동 반은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을 찾아 미술을 가르쳐주거나 공부를 돕는다. 청장년 반이 가장 편하다. 이른바 어느 정도 농활 경력이 되는 고학년 학우들이 어르신들을 찾아가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게 청장년반의 임무다.마을 주민들 역시 농활단의 활약에 물량공세로 화답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농민들이 마을회관을 찾아와 부침개, 오이, 감자, 막걸리, 김치를 한 아름 두고 갔다. 농활이 농촌주민에게 피해만 준다는 일부 지적을 개선코자 최근 농활단은 먹을거리를 직접 챙겨가 마을회관에서 해결한다. 마을대장을 맡고 있는 손중혁(언정대·광고홍보 3) 군은 “농민들에게 피해를 안주려고 식재료를 포함해 대부분의 생필품을 학교에서 가져오고 있다”면서 “그러나 저녁때가 되면 주민들이 어김없이 회관을 찾아와 음식을 가져다주고 막걸리를 함께 나누면서 정을 쌓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달 30일에는 주민들을 마을회관으로 초청해 잔치를 열었다. 이를 위해 농활문예선봉대에서 오랜 기간 노래와 춤 등 공연을 준비해 주민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농촌 현실과 대학생 농활
활기차고 정겨운 현장 분위기와는 달리 농활에 참여하는 학우들의 숫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특히 여름농활의 경우 계절학기와 일정이 겹친 데다 일주일 이란 짧지 않은 활동기간에 참여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취업난으로 자기계발에 시간을 쏟는 최근의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대학 입학 후, 4년 째 농활에 참가하고 있다는 정 군은 “4년 전과 비교해 참가자가 줄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농활 참여를 높이기 위해 학우들과의 접촉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참여를 유도할 구체적 방안으로 “농활에 4박 5일 혹은 30시간 이상 참여하면 사회봉사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사실을 홍보할 생각이다. 또한 농활기간을 약간 줄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농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서로 알아간다는 마음으로 참여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취재 후기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보였다. 모두 합쳐 대여섯 정도 돼보였다. 요즘 농촌에서 아이들을 구경하기 힘들다고 한다. 젊음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농촌이 텅 빈지 오래다. 한 때 젊은 층의 귀농이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신 씨는 “나 같은 50대는 여기서 완전 젊은이로 대접 받는다”며 “가뜩이나 일손도 모자란데 자유무역협정으로 농업이 개방되면서 이젠 농사짓는 게 도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정 군 역시 “지난 4년 간 농활을 하다가 마을이 없어진 경우도 봤다. 농촌이 사라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농촌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잠시 어두워졌던 농활단의 표정은 단체사진을 찍으며 다시 풀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자 일행을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농활단 사이에서 도시에선 듣기 힘든 개구리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글 : 정 현 학생기자 opentaiji@hanyang.ac.kr
사진 : 전상준 학생기자 ycallme@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