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 정의, 정도의 길

42.195Km라는 기나긴 길을 꾸준히 뛰어야 골인 점에 도착할 수 있는 마라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오직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생을 예술에 비유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며, 성실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예술인이라고 말한다. 바로 서울종합예술학교 학장으로 선임된 행정자치대학원 조희완(행정)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35년간 공직자로만 살아온 그가 예술학교 학장이 된 이유 중 하나가 인생을 예술로 보는 그의 시각 때문이 아닐까? 공직자로 살아오면서 창조적이고 예술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그를 만났다. 이미 그는 초보 학장이 아니라 진정한 교육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군인의 길을 접고 공직자의 길로 발을 들여 놓다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서울종합예술학교의 학장 취임식이 열렸다. 조 교수는 이날 3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서울종합예술학교의 수장이 된 것이다. 공무원으로 30년 넘게 재직하고, 본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님’이 된 지 2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교수님이 되기 전에, 공무원이 되기 전에 조 교수는 군인이었다. 꽤나 특이한 이력이다. 군인에서 공무원의 길을 그것도 감사원에서 시작하게 된 것도 특이했다.

“육사를 졸업하고 직업군인의 길로 접어들었어요. 대위까지 진급을 했죠. 당시에는 군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채용고시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행정고시와 유사한 형태인데 과목 수만 적었을 거예요. 이거다 생각하고 공부를 시작했죠. 한창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감사원 총무과장님께서 시험 보기 한 달 전쯤에 육사에 오셨어요. 감사원 인원 2명을 미리 선발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바로 지원했죠.”

조 교수는 다른 부처보다 감사원에 매력을 느낀 것이 부패활동에 대한 감사원의 역할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매력을 느낀 것이 조 교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 2명을 선발하는 감사원에 20여 명이 지원을 했다고 한다. 1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감사원에 입성한 조 교수.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창의력으로 감사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반부패활동과 개혁에 온 힘 쏟은 감사원 24년

“공직자가 되고 처음 보람을 느낀 것이 수입농산물 유통실태 감사였습니다. 80년대 초에 참깨, 마늘 등을 수입해서 가공한 후 다시 재수출하는 업체들이 수입 농산물을 국내에 유통시켜 차익을 남겼던 일입니다. 참깨 100톤을 국내에 유통시키면 3억여 원이 남는다고 할 때예요. 25개 업체를 적발했는데, 국고 환수한 금액이 50억 원을 넘겼어요. 농업은 먹는 것과 관련된 일이라 더 철저하게 조사했지요.”

수입농산물 유통실태 감사로 조 교수는 감사원에서 수여하는 마패상을 받았다. 우수 감사활동에 대한 보상이었다. 하지만 조 교수는 마패상을 받은 이후 더 많은 일을 해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93년 율곡비리 특별 감사 건이다. 율곡비리 특별 감사란, 군 전력 현대화 사업이었던 율곡사업과 관련해 국방부장관과 고위 장성들이 뇌물을 받은 사건이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특별 감사에서 그는 감사 총괄 과장을 맡아 감사를 지휘하고 국방부와 군 관계자, 무기상을 고발했다.

“율곡비리 특별 감사 때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비리에 연루된 무기상들이 가족 신변을 가지고 협박을 하기도 했어요. 가족들을 도피시키고 감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군대에 최신 무기를 들여오는 일인데 작은 비리도 있으면 안 되잖아요. 감사팀 모두가 열심히 한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 교수는 감사원에서 24년간 일하면서 있었던 많은 일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수입농산물 유통실태 감사, 율곡비리 특별 감사 이외에도 연안 수산양식 국고보조금사업 감사 등 수 많은 감사 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가 감사원에서 한 일은 감사 활동만이 아니다. 행정 개혁에도 앞장섰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되는 국가 회계 시스템 전산화, 1인 1PC 운동도 90년대 개혁의 일환이었다.

“90년대 초에 1500억 원을 들여서 국산 기술로 만든 주 전산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개발은 했는데 사용을 못하는 거예요. 감사원에 들여와서 문제점을 개선하고 실용화에 성공했습니다. 1인 1PC도 감사원에서 처음으로 시작했어요. 직원들 컴퓨터 교육도 의무화하고, 방학 때는 직원뿐만 아니라 일반인 교육도 실시했어요. 의욕과 열정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보화 보급에 앞장섰던 조 교수는 이후 대한민국 정보문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공직생활 마지막 무대였던 국가청렴위원회에서는 내부고발자 보호보상제도, 공직자 행동강령을 만들어 보급했다. 또한 감사원 188 부정부패 신고전화도 그의 아이디어다. 30여 년간의 공직생활동안 반부패활동에 앞장서고, 정부 개혁에도 선두에 있었던 조 교수였기에 반부패 청렴상 대상을 수상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교수에서 교육자로 거듭나다.

조 교수는 지난 02년 부패방지위원회(현 국가청렴위원회)가 출범할 당시 신고심사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서 배움의 길을 다시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같은 해 9월, 본교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이후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행정자치대학원에서 후배들을 위해 강의를 하고 있다. 후진인재를 양성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강의다. 그가 학기 초 첫 강의 시간마다 하는 말이 있다.

“항상 삼정(三正)의 정신을 강조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정직(正直),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진실할 수 있는 정의(正義), 모든 일을 행하는 방법에 있어 진실할 수 있는 정도(正道)가 바로 그것입니다. 삼정의 정신을 가진다는 것은 소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에요. 후배들에게도 항상 그런 부분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공직자로서의 능력, 교수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서인지 조 교수는 서울예술종합학교의 3대 학장으로 선임됐다. 예술을 가르치는 학교에 비예술인 학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조 학장에게 거는 기대는 무척 크다. 그가 35년간 다양한 공직업무를 수행하면서 얻은 그의 경험에 기대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취임식 현장에서 서울종합예술학교가 나갈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했다.

“‘보기에 좋은 ART, 참 좋은 ART’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업무에서 신속하게 대응함과 동시에 학교와 관련된 모든 사회부문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협력해 가야 합니다. 또한, 현장 중심의 실기교육을 강화하면서, 고객 중심의 활동을 강화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본이 잘 훈련된 인재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양과 인성교육을 더욱 강화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습니다.”

취임식이 끝나고 조 교수를 만났다. 30년 넘게 공직자로 살아온 그가 본교 행정자치대학원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서울종합예술학교 학장으로 또 다른 인재를 키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서울종합예술학교를 세계 10대 예술학교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꿈을 만들어 가는데 본교에서 강의한 경험이 큰 힘이 되었음을 밝혔다.

“강의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호흡하면서 새로운 꿈, 새로운 계획,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것 같아요. 그런 힘이 있었기에 서울종합예술학교 학장이라는 자리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교수이자 학장으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차분히 진행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양대가 저한테 행운의 장소인 것 같아요.”(웃음)

“정직(正直), 정의(正義), 정도(正道)의 삼정의 길을 걸어라.”

조 교수는 본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강의를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 많은 일들에 고마움을 표했다. 육사를 거쳐, 감사원·국가청렴위원회와 같은 공직자 생활에 이어 교수에서 다시 교육자의 길로. 다양한 길을 차례차례 걷고 있는 그에게 학장이자 교수로서 그리고 선배로서 후배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젊은 나이에는 항상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좌절 없이 정진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하다 보면 좋은 일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일, 시련과 고통이 더 많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굴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는 날이 올 것입니다. 참, 정직(正直), 정의(正義), 정도(正道)의 삼정(三正)을 잊지 마시구요”(웃음)

글 : 장기진 취재팀장 jyklover@hanyang.ac.kr
사진 : 김기현 사진기자 azure82@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조 교수는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85년 국방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99년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객원 연구원을, 04년 본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위로 예편한 후 78년 5급 특채로 감사원에 들어갔다. 이후 감사원 전산과장, 5국 1·2과장, 5국 심의관, 감찰관, 제7국장, 제4국장을 거쳐 02년 부패방지위원회 창설과 함께 신고심사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지난 92년 녹조근정훈장, 03년 반부패 청렴상 대상, 06년 황조근정훈장을 받았으며, 훌륭한 공무원 지도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 ‘한일 관계론’이 있다. 현재 본교 행정자치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난 8일 서울종합예술학교 학장으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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