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일상의 경계는 무엇인가"
난고 김병연 선생 탄생 200주년인 올해 김삿갓문학상을 수상했다. 어떤 의미의 상인가?
야인(野人)이었던 김병연 선생은 시를 쓸 수밖에 없던 운명이었다. 언문시, 국한문 혼용시, 해학시에 이르는 많은 명시를 지었고 특히 자유분방함과 풍부한 유머로 가득 찬 그의 작품은 절세의 것이다. 그는 평민들의 생활상을 시로 읊어 빛나는 서민 문학을 남겼고, 한시의 정통규범을 파괴하는 파격시의 세계를 형상화했다. 김삿갓문학상은 김병연 선생의 문학세계를 계승하고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제정됐다. 지난 01년과 02년에 이어 올해로 세 번째 맞는 상으로, 특히 올해 김병연 선생 탄생 200주년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학교 연구실에서 20년 매일 잡채밥을 시켜 먹는다 지치지도 않으십니까? 빗물 묻은 우비를 걸치고 배달 온 청년이 묻는다 다른 건 잘 못 먹어요 청년이 나가면 연구실 낮은 탁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맛없는 잡채밥을 먹는다 학생들이 연구실에 앉아 잡채밥 먹는 걸 보면 실망할지 몰라 문을 잠그고” (김삿갓문학상 수상 시집 『이것은 시가 아니다』의 ‘잡채밥’ 중)
김삿갓문학상 수상 소감을 듣고 싶다.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가슴 속에 사막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이 사막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풍요로운 시대 속에서도 황폐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사람들을 위로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내가 문학을 하게 된 연유고, 김삿갓이 남긴 작품도 이것이다. 그동안 많은 상을 받았지만, 내게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상이다. 내 문학의 출발은 영월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 년을 그냥 놀았었는데, 그 해 겨울 영월에 가서 일 년 반을 보냈다. 눈만 내리고 아무것도 없는 그 옛날 영월에서 카프카의 ‘성’을 읽으며 느꼈던 측량기사 K와 같은 이미지가 일생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이번에 김삿갓문학상을 받으러 영월에 갔더니, 김삿갓이 ‘승훈아, 다 버려라. K의 이미지마저 다 버려라. 훌훌 털고 더 자유롭게 쓰다가 가라’고 자꾸 얘기하는 것 같다. 김병연 선생이 살던 그 때나 내가 사는 지금이나 시 따로 놀고 인생 따로 노는 위선적인 시인들이 많은 터에, 김삿갓은 시가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내게 가르침을 주는 난고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상을 받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으며, 이번 대한민국 시인대회에 참석한 선후배 시인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이번 책은 14번째 시집이고, 나로서는 파격적인 변화를 한 작품이다. 40년 작품생활 중에 초기는 자아를 찾아서, 억압된 무의식을 터트리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했다. 중기에 들어서는 내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언어의 아름다움만 가지고 시를 썼다. 10여년 전, 우연한 기회에 금강경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내가 찾아온 자아를 버리라는 그 말에, ‘시라는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것이 후기의 내 작품들이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인 ‘이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작품에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제자가 보낸 이 편지는 분명 시가 아니다. 하지만, 시지에 발표했기 때문에 시로 대접받는다. 휴지통에 넣으면 휴지가 되고 편지로 보내면 편지가 되고 일기로 쓰면 일기가 되고 정신과 의사의 노트에 적으면 병력이 된다. 도대체 시는 어디 있는가? 시와 일상의 경계는 무엇인가? 이것이 내 질문이고 내 답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 방향이 있다면?
앞으로 내가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냥 흘러가는 것이지, 내 인생에 프로젝트는 없다. 지금까지 내가 낸 책이 55권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책을 내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외로워서 글을 쓰고, 논문도 쓰다가 모아놓고 보면 책을 낼 만큼의 분량이 나온다. 특히 시나 예술은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내가 어떻게 살지 모르는 것처럼 내 작품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다. 나는 다만 적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욕심이라고 하면 좀 더 대담하게 해체를 시켜보고 싶다. 시, 수필, 일기, 편지, 드라마 같은 모든 장르의 경계를 다 깨서, 시와 시가 아닌 것의 경계를 없애보고 싶다. 시라는 전통적인 장르를 깨고 나면 더욱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 같다.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올해에 하고 있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로, ‘이승훈 시 전집’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내 모든 시를 모두 모아놓은 전집이 아니라 내 작품 중 애착이 가는 작품만을 선별해 새로 엮고 있다. 또한 작가 등단 45년을 맞이해 ‘이승훈의 문학탐색’이란 책을 준비하고 있다. 내 대표적인 시와 작가론, 인터뷰 했던 것들, 자전적 에세이, 평론가들의 평론을 담아 작가 이승훈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책으로 제자들이 도와주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최근 5년 동안 현대시는 이제 끝났다는 주제로 연구하고 발표한 평론, 시론을 엮은 ‘현대시의 종말과 미학’이라는 책이 나올 예정이다.
글·사진 : 전상준 학생기자 ycallme@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