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여행은 돈 없이도 간다


‘사람이 돈 없이 살 수 없을까?’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는 세상 속에서 이 질문은 한동안 끊임없이 나를 따라 다녔다. 2005년 여름, 그 답을 찾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이 질문은 그 하나로 내 여행의 충분한 동기가 됐다. 돈에 울고 웃는 세상이지만, 결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직접 확인하고 또 증명하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다.

마음이 맞는 후배 한 명과 함께 엠티 가는 봉고차를 수소문해 얻어 타고 강원도로 향했다. 우리 수중엔 옷가지와 몇몇 필수품을 넣은 배낭 하나와 집으로 돌아올 비상금, 그리고 지도 한 장이 전부였다. 출발하기 전 후배와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첫째는 부산 해운대를 밟을 때까진 집에 돌아가지 않기, 둘째는 먹고 자는 데에는 돈을 쓰지 않기, 셋째는 아무리 힘들어도 불평의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기였다. 이 세 가지 규칙만 가지고 우린 강원도 양양을 출발, 14일 동안 남으로 내달린 끝에 부산 해운대에 무사히 닿을 수 있었다. 2주 동안 우리가 지출한 돈은 박물관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로 쓴 5천원 남짓이 전부였다.

미숫가루로 허기 잊고, 읍사무소에서 새우잠 자던 추억


첫날부터 폭우가 쏟아져 출발이 조금 불안했다. 짐은 다 젖어버리고, 앞으로 이렇게 부산까지 갈일을 생각하니 다짜고짜 떠나온 것이 벌써부터 후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내린 비였다. 다음날부터 우리를 기다린 것은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 찌는 더위 속에 우리는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이어진 7번 국도를 기본으로 잡고 걸었고, 중간에 가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다른 길로 빠지기도 했다. 걷고 또 걷다 지치면 길가 의자에 누워 자기도 하고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기도 했다. 밥은 눈치껏 하루에 보통 한 두 끼는 얻어먹을 수 있었고, 낮에 배가 고프면 물에 미숫가루를 타서 마셨다.

텐트는커녕 이불 한 장도 가져가지 않은 우리는 날마다 잠잘 곳도 구해야 했는데, 저녁이 되면 시골 마을로 들어가 마을회관이나 교회들을 찾아다녔다. 수월한 날엔 한 번에 잘 곳을 구할 수 있었지만, 운이 없는 날은 두세 시간씩 온 동네를 헤집어도 구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하루는 마을 두 곳에서 퇴짜를 맞고 큰 읍까지 나갔다가 결국 읍사무소 소파에서 잠을 자기도 했었다. 그땐 참 피곤하고 힘들다고 느꼈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두 소중한 추억이다. 걷는 중에 등산과 해수욕도 하고 동굴이나 박물관도 찾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봤다. 여행하는 내내 우리나라에도 외국 못지않은 절경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강원도의 굽이진 산자락과 물 속까지 환히 비추는 영덕의 푸른바다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마을 공사 도와 오히려 돈 벌었던, 넘치는 인심에 넉넉했던 여행

‘돈을 쓰지 말자’는 규칙은 처음에 세웠던 몇 가지 규칙 중에 가장 걱정되고 부담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걱정과는 달리 그것은 우리에게 별 다른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 돈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돈을 써야할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한국이 삭막해졌다 하는가? 아직 우리네 인심은 정이 넘친다. 가는 곳마다 푸짐하게 먹을 것을 주시기도 하고, 길을 걷고 있으면 들어와서 밥 먹고 가라고 부를 정도였다. 변두리 시골 마을에선 잠잘 곳도 내어 주셔서 따로 방을 잡을 필요도 없었고, 한사코 받지 않았지만 용돈을 쥐어 주시는 할머니들도 많이 계셨다. 태백의 한 산골 마을을 지날 땐 하루 동안 마을 가로등 설치 공사를 도와서 일당도 받고 보신탕까지 대접 받기도 했다. 여행 중 지출한 돈을 계산해보니 태백시의 동굴 관람료 3500원을 포함해 오대산 입장료, 경주 박물관 입장료까지 총 4600원만을 지출했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일하고 받은 품삯 덕택에, 돌아올 때 쓴 기차 삯을 빼고도 돈이 처음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돈을 벌어온 여행이라니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젊음으로 도전하는 자유가 최고의 스승 되다.


우린 여행 내내 마냥 즐거웠다. 참고 견뎌야 하는 고행의 일정이 될 것이란 우리의 예상은 착각에 불과했다. 찌는 날씨와 밤마다 습격해오는 모기떼들은 우리를 짜증나게 할만도 했지만, 여행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은 그것들을 누를 만큼 훨씬 컸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잘까?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것은 걱정이 아니라 자유가 되었다. 아는 사람을 만날 리도 없으니 아무대서나 자도 좋고, 옷이 땀에 절어도 개의치 않았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진짜 자유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2주 동안 배고프고 피곤한 우릴 지탱해준 것은 결코 돈이 아니었다. 수많은 분들의 따뜻한 정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학생들을 집에 들이며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던 수많은 분들께 너무 감사한다. ‘세상! 까짓것 돈 없이도 살 수 있어!’라는 자신감도 얻었다. 여행은 언제나 나에게 최고의 스승이 되어 줬다. 호화스런 해외여행보다는 조금이라도 젊은 시절에 몇 번쯤 더 이런 값진 여행을 해보고 싶다.

기고 : 이기태(국문대.국어국문 3)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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