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큰 배낭을메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구의 이곳저곳을 탐험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새 종족이 지구를 침범했다. 그 종족의 이름은 바로 백패커(Backpackers). 21세기판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 배낭족이다. 그들은 큰 배낭을메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지구의 이곳저곳을 탐험한다. [글과 사진. 최정윤(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4)]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터키


백패커 종족의 수명은 개인차에 따라 며칠부터 몇 년까지 그 기간이 다양하다. 이들은 홀로 다니기도, 짝을 지어 친구들 혹은 연인끼리 다니기도 한다. 피부색도 다양하며 언어도 수백 가지를 사용한다. 따라서 백패커 종족을 형언할 하나의 단어는 없으며, 구성원도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천차만별이다.

지난겨울 나는 백패커의 주 구성원인 20대 청년이었다. 나의 정복 장소는 유럽 발칸반도 남반에 위치한 그리스와 유럽과 아시아를 사이에 낀 이색적인 나라 터키였다.

백패커가 되기 위해 특별히 요구되는 능력은 없다. 쌓인 일들을 옆으로 잠시 미뤄둘 시간과 최소한의 비용만 있다면 누구나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여기에 열정과 호기심만 있으면 완벽한 백패커 한 명이 탄생한다. 지식과 여행을 계획하는 준비성, 빠른 적응력이나 의사소통 능력은 출발하지 않은 사람의 걱정일 뿐이다. 백패커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싼 비행기 표를 찾는다. 나는 인천에서 모스크바를 경유해 아테네에 도착하는 표를 샀다. 싼 티켓을 구하다 보니 모스크바 공항에서 14시간을 경유해야 했고, 노숙을 했다. 배낭의 모든 고리에는 자물쇠를 채워 발밑에 두고 잠을 청했다. 어렵게 탄 비행기 너머로 펼쳐진 그리스 아테네의 하늘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올 법한 풍경과도 같았다. 파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는 여러 신들이 모여 나의 입국을 환영해 주는 것 같았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여행의 모든 과정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공항에서 아테네 중심지인 신타그마 광장으로 가는 메트로를 탔다. 경치를 구경하는 내게 여행을 같이하는 친구가 “야!”라고 속삭였다. 고개를 돌리자 내 가방을 보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내 가방을 쳐다봤고, 소매치기를 조심하려고 배 앞으로 맸던 가방은 열려 있었다. 내 앞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홱 고개를 돌렸다. 빨간 손톱을 한 그녀가 머리를 쓸어내리며 태연하게 창문을 쳐다봤다. 당황한 나는 소리를 질러야 할지, 여자의 머리카락을 낚아채 싸워야 할지 0.1초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문이 열렸고 여자는 유유히 빠져나갔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팠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만 보면 가방을 움켜잡기에 바빴고, 새로운 도시가 무서웠다. 10분 거리라고 했던 숙소는 길을 헤매 4시간이 걸려 도착했고, 그날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나의 로망이었던 배낭여행의 첫날이 화려하지만 냄새나게 그 막을 내렸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날씨 때문에 행선지를 바꿀 때도 있다. 터키에선 카파도키아에서의 벌룬 투어(열기구) 탑승을 위해 계획했던 세 개의 지역을 취소하고 달려가야만 했다. 아테네에선 날씨가 좋지 않아 항구에서 배가 뜨지 않았고, 산토리니에서 이스탄불로 넘어가야 했던 우리는 30만 원 이상을 손해 보며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를 타야 했다. 불가항력인 날씨에 당할 때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 모두 그 나름의 가치가 있었다.
 
(좌상) 12시간 버스를 타고 달려 간 카파도키아에서 경험한 벌룬투어
(우상) 사프란볼루라는 작은 마을. 고요하고 조용한, 그리고 꽃내음이 잔잔하게 흐르던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좌하) 바위 동굴로 만들어진 생활 공간. 카파도키아의 바위 동굴에서 아늑한 잠을 청한 후, 기쁜 마음에 점프~
(우하) 석양을 등지고 처음으로 여행을 함께한 친구와 함께 찰칵~

20대의 열정과 청춘을 만끽한 시간


‘해냈다’라는 뿌듯함이다. 고생했던 경험은 오래간다. 아테네 전경이 다 보이는 리카비투스 언덕을 올라갔을 때다. 케이블카를 찾지 못해 3시간의 강제 하이킹을 했고, 비와 눈이 섞인 강풍 속을 뚫으며 숙소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과 뛰어올라 갔다. 열악한 날씨 덕분에 언덕 정상엔 아무도 없었고,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야경을 향해 우리는 애국가를 목이 터지도록 열창했다. 당시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손발이 오그라들고 정신 나간 무리에 불과했지만 땀과 비가 섞여 뜨거운 몸을 식히며 우린, 20대의 열정을 그리고 청춘을 만끽했다. 미친 듯이 여행하며 시간의 흔적과 역사적 순간에 현장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은 짜릿할 정도로 흥분됐다.

하지만 항상 놀 수는 없는 법. 여행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터키인들과 웃고 함께 얼굴을 붉혔으며, 밤에는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백패커들과 이상한 노래에 맞춰 이상한 춤을 췄다. 맥주를 마시며 동이 틀 때까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프란볼루 흐드를륵 언덕에선 절벽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적어보곤 했다. 여유로웠다.

한국에서의 여행은 많은 계획과 준비가 요구되는 이벤트적인 개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백패커들의 여행은 다르다. 한 도시에서만 열흘을 머물고 백패커로서의 삶을 끝내거나 언제 끝날지 모를 삶을 살며 이곳저곳에 발걸음을 남기는 백패커도 있다. 여행을 성대하고 원대한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말자. 한 번의 자유여행으로 난 ‘여행쟁이’가 되고 싶다. 백패커로서의 삶에 온전히 충실하진 못하지만 대신 얇고 긴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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