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후천성 뇌손상 환자의 선택적 지각 능력을 검증하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J. S. Bach)의 작곡 기법 중 하나인 푸가(fugue)는 하나의 주제를 여러 성부가 돌아가며 모방하는 다성음악이다. 기존의 성부에 다른 성부들이 더해질 때마다 각 성부를 듣기 위해 뇌에서는 선택적 지각(知覺)이 일어난다. 정은주 교수(산업융합학부)는 ‘음악에 대한 산소 대사 반응과 후천성 뇌 손상 환자의 선택적 지각의 관계’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발표했다.


음악으로 선택적 지각을 검증하다
 
정은주 교수(산업융합학부)는 정상 성인과 후천성 뇌 손상 환자가 음악을 듣는 동안 발생하는 대뇌 혈류 내 옥시헤모글로빈(HbO₂)과 디옥시헤모글로빈(HHb)의 변화를 측정해 선택적 지각 능력을 검증했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바이올린, 피아노, 플루트 등의 악기 중 하나의 선율만으로 구성된 연주와 두 개의 선율로 이루어진 이중주를 듣고 선율이 흐르는 방향을 맞춘다. 음악에 집중하게 되면서 뇌에 흐르는 혈액 속 산소를 품은 ‘옥시헤모글로빈’은 세포에 산소를 전달하고 ‘디옥시헤모글로빈’으로 변한다.
 
▲ 정은주 교수(산업융합학부)는 정상 성인과 후천성 뇌 손상 환자가 선택적 지각을 수행할 때 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연구했다.

이번 연구는 음악에 대한 대뇌 반응을 사용해 인간의 인지기능 이상을 측정하는 ‘바이오마커(Bio-marker)’를 발굴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바이오마커는 단백질, DNA, 대사 물질 등을 이용해 체내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다. 정 교수는 음악에 대한 대뇌 산소 대사 반응 또한 인간의 운동, 인지, 정서 등을 진단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과학과 공학이 만나다
 
후천성 뇌 손상 환자들이 두 개의 선율 중 특정 악기의 음색을 변별하자 왼쪽 배측면 전전두엽 피질(left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의 산소 대사가 정상 성인에 비해 유의하게 증가했다. 이곳은 청각 정보를 처리하는 일에 관여한다. 정 교수는 “주의집중력, 기억력 등 후천성 뇌 손상 환자의 다양한 인지기능 저하가 선택적 지각 기능 이상에서 비롯됐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음악에 대한 산소 대사 반응이 인지 기능을 진단할 뿐 아니라 훈련과 재활 경과를 관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왼쪽은 정상 성인, 오른쪽은 뇌손상 환자 뇌 모습이다. 두 개의 선율 음악을 들었을 때 뇌손상 환자의 뇌에서 산소 대사량이 평소보다 높게 측정됐다. (정은주 교수 제공)

정 교수는 참가자들의 혈액 속 산소 대사를 관찰하기 위해 기능적 근적외선 분광기법(fNIRS)을 사용했다. 비슷한 용도인 자기공명영상(fMRI)보다 휴대가 쉽고, 이동이 간편하며, 저렴하지만 아직 분석 방법론이 충분히 개발되지 않았다. 정교한 분석의 필요성을 느낀 정 교수는 공학 분야의 ‘Vector-Based Phase Analysis’을 차용했다. “새로운 분석 방법을 발굴하고 임상 적용의 근거를 확립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체계적이고 융합적인 접근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무대 삼은 피아니스트
 
환자에게는 치료도 고통의 연속이다. 검사와 재활 훈련은 아픈 부위를 끊임없이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음악 감상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고, 자발적인 참여까지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학부 시절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음악은 예술 작품으로서 심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삶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며 “소수의 한정된 사람들과 음악을 공유하는 것이 아쉬워 무대에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 정은주 교수(산업융합학부)의 최종 연구 목표는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음악을 사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국립재활원에서 가상현실(VR)에 기반한 음악 치료 콘텐츠를 제공해 뇌졸중 환자들을 돕고 있다. 또 치유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대에 발맞춰 일반 환경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청각과 진동을 활용한 ‘다중 감각 힐링 스페이스 구축 연구’도 진행 중이다. 정 교수는 “그동안 연주를 하며 경험했던 아름다움을 이제 연구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글/ 유승현 기자         dbtmdgus954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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