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 논쟁과 대학생의 토론문화
홍용표 교수(사회대 정외과)
지난 한해 우리 사회는 여러 정치.사회적 이슈를 둘러싼 보혁논쟁의 열병을 앓았다. 특히 통일과 북한문제에 관한 논의가 그러했다. 대북지원의 유용성, 주적 개념의 폐지, 한국전쟁에 대한 김정일의 사과, 북한 방문단의 돌출행동,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 등을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세력 사이의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론분열'이니 '위기의 한국사회'니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 | ||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따라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 '갈등', '분열'과 같은 부정적 측면만 강조한다면 자칫 획일성을 강요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밝히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의 다름은 토론을 통해 조율하는 것이 다원화된 민주사회의 올바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사회의 보수-진보세력간 논쟁은 이러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논의의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견해는 무조건 배척하고 심지어 적대적으로 대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상대방을 '수구세력', '반동', '빨갱이', '매국노' 등 감정적 언어로 매도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조차 자기와 입장이 같은 측은 선(善)이요, 다른 측은 악(惡)이라는 독선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국론분열에 대한 걱정도 바로 이와 같은 태도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건전한 토론문화는 요원한 것인가?
다행히 요즘 대학생들의 토론을 지켜보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도 보다 성숙한 토론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필자는 지난해 몇몇 수업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주요 쟁점들(특히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에 대해 학생들에게 토론을 시켜보았다. 이를 통해 느낀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주어진 문제에 대해 각자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런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밝히는 한편, 상대방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를 지녔다는 점이다.
사실 처음 토론을 시작하면서 필자는 "혹시 대부분 의견이 비슷하여(주로 진보 성향으로)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하고 걱정하였다. 이는 필자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열기가 캠퍼스를 휩쓸고 있었으며, 그 외에 다른 목소리는 용납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당시 한 수업의 발표시간에 어떤 학우가 "현정부(제5공화국)가 비록 독재정권이지만 그래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도 있다."라고 '용감하게' 주장하였다가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경험 때문에 획일적인 토론을 우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이미 민주화를 통해 다원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2000년대 대학생들의 사고는 획일성에서 벗어나 있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진보.중도.보수 의견이 분명히 나왔으며, 자신이 '골보수'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견해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피력하였다. 물론 관심 부족, 정보 부족 등으로 논쟁의 핵심을 비켜 가거나 주제와 동떨어진 논지를 펼치는 학생들도 있었으나, 강의와 토론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무엇보다도 대학생들은 일부 기성세대와는 달리 토론에서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는 상대방의 주장도 경청하며, 그 중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성숙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간혹 논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흥분하기도 하고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였으나, 최소한 그들의 토론에서는 기성세대가 보여준 것과 같은 언어의 폭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진지한 토론을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다원화된 교육환경에서 자라났고 또 자신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요즘 신세대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필자가 수업에서 접한 학생들 이외의 다른 학생들도 상당히 성숙한 토론 태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미숙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현재는 올바른 태도를 지니고 있는 학생들도 사회에 진출하면서 기성세대의 그릇된 토론문화에 물들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며 그들이 계속 건전한 토론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는 분명히 개선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 교육자들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