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수 교수(체대 체육과)

 

 노는 것은 즐겁다. 그래서 나는 아들놈에게 항상 말한다. 많이 놀아라. 나는 학생들에게도 늘 강조한다. 신(神)나게 놀아라! 몰두(沒頭)하라!

 

   
 

 몰두란 형이상(形而上)적인 관념이 아니다. 머리를 물 속에 담근 모습이다. 머리를 물 속에 담그면 숨을 쉴 수가 없다. 물 속에 머리를 담근 시간이 길면 길수록 숨이 가쁘다. 더 참으면 죽을 것 같다. 더 참다가 더 참으면 아주 죽을 수도 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은 숨을 쉬는 것이다. 숨을 쉬고 싶어 죽겠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절박한 것 한 가지, 이것을 몸으로 아는 것, 이것이 바로 몰두이다.

 

 학생들이여 몰두하라! 아니 내가 아무리 몰두하라고 강조해도 깨닫지 못하겠거든 바로 오늘이라도 물 속에 머리를 박고 실제로 몰두를 체험하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하고 고민하는 학생이라면 지금 당장 머리를 물 속에 박는 몰두를 행하라!

 

 그러나 신나게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몰두를 행해도 그 일체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한국 민중문화의 특성을 '신들림'으로 파악한 사람은 우리 한양대에서 나와 한솥밥을 먹는 조흥윤 교수이다. 내가〈한국체육사상사〉를 쓰는 데에 조 교수의〈巫와 민족문화〉는 큰 참고가 되었다. 옛날에 촌사람들이 석전(石戰)을 하는 과정에서 돌에 맞아 골이 깨어져 나오면서도 '괜찮다, 괜찮아' 라고 했다던 이유를 여기에서 확신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깨어져 골이 밖으로 흘러나온 사람은 십중팔구 죽을 것인데도 죽는 것보다 더 신나는 일이 돌 던지며 노는 일이었던 것이다. 신이 오른 무당은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 위에서 춤을 추어도 발가락이 잘리지 않는다.

 

 신나게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신(神)이 될 수 없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신은 God가 아니다. 이 신은 정신(精神)의 신이다. 정신은 창조적인 능력, 생산해 내는 에너지를 말한다. 정신은 허 준의〈동의보감>에 보이는 '정기신론'(精氣神論)의 정신이다. 정은 남성의 정액을 가르킨다. 남성에게 정액이 가득해야 원기(元氣)가 왕성해지고 창조력이 배가된다는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정액이 가득한 남자는 눈이 반짝이고 행동이 민첩하며 여자를 보면 친절하게 접근한다. 피로하지 않으며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운동을 해 땀을 흘린다. 정액을 낭비하는 사람은 쉽게 피로하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게 된다. 이런 사람에게 나는 '정신 차려'라고 외친다.

 

 신(神)은 신(腎)과 음이 같다. 腎은 콩팥을 이름이나 사실은 사람의 성기(性器)를 의미하기도 한다. 외신(外腎)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절정체험(peak experience) 가운데에 성교행위가 포함되는 것은 인간의 섹스를 놀이의 한 가지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기사 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에서 행해지는 섹스야말로 인간이 인간을 창조하는 거룩한 일을 성사시킨다. 정액을 아끼는 것을 허 준은 '보정'(寶精)이라 하였다.

 

 앞에서 나는 원기에 관해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사람 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에도 물에도 있고 국가에도 이것은 있다. 지나친 자연훼손은 자연의 원기를 없애는 것이 된다. 국가의 원기를 사기(士氣)라고 한다. 국가의 정치를 담당하는 위정자, 고급관리가 썩으면 낭비가 많아져 그 국가의 위력은 사라지고 만다. 신선하여 썩지 않은 정치인을 뽑는 것은 우리들의 큰 일이다. 이것은 놀이가 아니다. 그러나 놀아보지 못한 사람은 안목이 없어 사이비 정치인에게 손쉽게 넘어간다. 사람으로 하여금 놀게 하고, 그 노는 모습을 보아 그 사람의 선악을 판단하여 인재를 등용한 것이 신라의 화랑제도였다.

 

 신나게 놀아 본 사람은 사람을 안다. 놀이에 몰두해 본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사람을 판단함에 착오가 적다. 사람의 수명을 80세로 본다면 대략 70만 시간이 조금 넘는다. 이중에서 35만 시간은 잠자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30년 일한다고 계산하면 고작 7만 시간 정도이다. 일생의 십분의 일이란 짧은 시간을 위해 우리들은 밤잠을 설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꼴인 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28만 시간은 무슨 시간일까? 노는 시간이다. 낮잠을 자건, 농구를 하건,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든 외국으로 유학을 가든 이 모든 것이 모두 노는 시간이다. 나는 7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22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2년, 다시 외국의 대학원에서 5년 이렇게 도합 21년을 공부하였는데 이 시간도 물론 28만 시간 안에 들어간다.

 

 공부와 노는 것과는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쉽다. 그러나 남들이 본 나의 공부는 나에게는 놀이였다. 나는 지금도 나의 연구실에서 정통도장(正統道藏)을 가지고 논다. 내가 가지고 노는 이것은 화투패도 컴퓨터게임도 아니다. 정통도장은 중국에서 간행된 도교 경전의 집대성이다. 나는 이 책들 속에 머리를 푹 쳐 박고 몰두하고 있다. 남들은 내가 연구실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다고 말하곤 훌륭한 교수라고 칭찬한다. 그러나 진실은 내가 연구실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지금도 놀고 있다. 내가 이렇게 놀고 있으니 다른 이에게도 놀라고 권할 수가 있는 것이다. '놀고먹는 사람이 상팔자'란 말이 맞는다면 나야말로 팔자가 트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놀아라! 네가 좋아하는 세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서 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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