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33

 첨단 수요에 부응하는 실용학풍론

 "누가 공학의 위기를 말합니까?"


 임승순 교수 (공대 응용화학공학부)

 

 철이 지닌 질량의 중압감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것은 하나의 당구공이었다. 19세기 중반, 한 제조업자가 상아를 대체할 수 있는 당구공의 소재를 발명하는 사람에게 1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한다. 여러 사람들이 그 일에 매달렸고, 결국 나타난 행운의 주인공은 미국의 J.W 하이엇. 그는 질산 셀룰로스에 장뇌와 알코올을 섞어 셀룰로이드라는 새로운 당구공을 만들어냈다. 최초의 플라스틱이었다.

 

 새롭게 탄생한 고분자 화합물의 장점은 철만큼 튼튼하면서도 가볍고, 성형이 용이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기쁘게 한 것은 신소재는 녹이 슬지도 않고, 쉽게 변질되지도 않아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인간에게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물질의 '영구성'이 갖는 고통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질의 '사용가치', 그 이후를 탐구한다

 

   
 

 공대 응용화학공학부 임승순 교수는 섬유재료 연구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전문가다. 여기서 섬유란 비단, 의식주의 일부를 구성하는 피복의 소재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술용 봉합실에서부터 반도체를 구성하는 첨단 섬유, 인공피부 조직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은 가히 무한하다. 뿐만 아니라 현대 섬유공학의 관심은 섬유가 지닌 현재의 사용가치보다 사용가치가 소멸한 '이후'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임 교수가 이른바 '썩는 플라스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하루의 일상에서 우리가 접하는 물질의 80% 이상이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플라스틱이죠. 옛날에는 강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내구성을 지닌 소재와 물건이 환영받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죠. 도무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수요를 낳은 것입니다. 소재의 '영구성'에 대한 인식이 바뀐 지 오래입니다."

 

 현재 상품화되어 있는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버려질 경우, 분해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남아 있어 환경오염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사용시의 편리성 및 내구성만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합성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고, 사용 후에는 붕괴 또는 분해되어 자연의 순환사이클로 흡수됨으로써 환경오염을 예방할 수 있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급격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지난 1999년, 임 교수가 분해성 비닐을 획기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관련 업계와 학계를 충분히 긴장시킬만한 것이었다. 기존에 개발된 분해성 수지의 원료가 값비싼 부틸렌석시네이트인 점에 착안, 원료를 값싼 벤젠으로 대체함으로써 생산원가의 30% 이상을 낮출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된 상품이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데 대해 임 교수는 불만이 많다. 누구나 환경문제를 이야기하고 모두가 그 심각성에 동의하지만 실제로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분해성 비닐은 이미 사회에서 일부 실용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대중화되지 못한 까닭은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배경도 그렇지만 자연과 환경은 우리만 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라는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법규로 지정하고 강제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과 기업의 의식수준, 그리고 생활수준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지요."

 

 플라스틱,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인다'

 

 '분해성 고분자'외에도 임 교수가 완료했거나 현재에도 연구가 진행 중인 주요 관심은 '전도성 고분자'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고분자가 지닌 기능성 확대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전도성 고분자'란 말 그대로 전류가 통할 수 있는 고분자 화합물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은 절연의 속성을 지녔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전도성 고분자는 경량성, 유연성, 신축성 등 플라스틱이 지닌 기존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금속을 대체하여 전도체 영역에서의 활용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대안 소재입니다. 이미 10년 이상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노기술과 연계하여 전도성 고분자가 개발되면 분해성 고분자와 함께 로봇에 사용될 인공근육 등, 첨단의 수요를 현실화할 수 있겠지요."

 

 썩는 플라스틱과 전도성 플라스틱 개발 등에서 드러나듯이 사회적 요구를 학문의 출발로 생각하는 임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 있어 실용적 관점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른바 '공학 위기론'이 대두되는 현실에서 학문에 대한 그의 입장은 매우 명쾌하다. 세상에는 '쓰임 있는 학문'과 '쓰임 없는 학문'만이 있다. 그리고 응용학문이란 것이 마땅히 현실적 쓰임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진대,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즐기며 진리 탐구 그 자체에서 멋을 부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 이공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이는 사회적 경향 속에 발생한 일시적인 정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위기가 금융에 대한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일깨워 주었고 정부는 IT산업을 위기 극복의 복음처럼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언론이 이러한 경향을 반복해서 조명하면서 상대적으로 공학이 소외된 것입니다. 제 전공이 섬유공학입니다. 사람들이 섬유산업은 이제 사양산업이다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옷을 입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사회적 요구가 소멸되지 않는 한 응용공학은 절대로 쇠퇴하지 않습니다."

 

 편의주의는 학문의 가장 큰 적

 

   
 

 공학 위기론에 대한 임 교수의 비판은 해당 학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부로 이어진다. 특히 섬유공학처럼 본교가 연구의 수준과 성과에 있어 명실공히 국내 유일무이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분야들은 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개 섬유공학과에 120명에 달하는 교수진을 갖춘 일본의 대학을 예로 들며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응용학문과 자본간의 관계다. 유목적적 학문은 '투자'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학문의 목적과 함께 임승순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학문의 자세'에 관한 것이다. 1992년 한국섬유공학회 학술상, 1993년 백남학술상, 1994년 한국고분자학회학술상, 1996년 국제과학학술지 논문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대변하듯이 매년 평균 7편 이상의 논문을 집필하는 임 교수의 연구력은 이미 사회적으로 검증된바 있다. 그는 정작 논문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 단언하지만 학문에 있어 성실함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을 신뢰합니다. 요즘 학생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학문의 자세에 있습니다. 애써 노력해서 최고 교육기관에 들어온 가장 큰 목적은 '학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강의실 안팎에서 학습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 가는 노력도 부족하지만 학점을 어떻게든 쉽게 받으려는 일련의 생각들이 팽배해 있습니다. 까다로운 강의, 어려운 과목은 무조건 피하려하고 적게 생각하고 많이 얻으려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편의주의는 학문의 가장 큰 적입니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약력 및 경력

 

 임승순 교수는 1972년 본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도쿄공대에서 유기재료공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한국과학재단 과학기술처 IR52 장영실상을 받은 것을 비롯 한국섬유공학회 학술상(1992), 백남학술상(자연과학부문. 1993), 한국 고분자학회 학술상(1994), 국제 과학학술지 논문상(1996)을 수상했다. 한국섬유공학회 평의원, 환경친화성 고분자연구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 한국 고분자학회 이사, 미화학회(ACS) 회원, 일본 고분자·섬유학회 회원을 역임하거나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H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