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국제 산업계는 표준화 전쟁 중이다. 몇 년 전 한국의 DMB, 와이브로 기술이 국제표준으로 채택되었을 때 떠들썩했던 뉴스를 기억하는가. 특히 통신기술의 국제표준채택은 수천억 원의 경제효과를 유발하는 중요한 사안이다. 국제전기표준위원회(IEC)는 국제표준화 활동에 기여도가 큰 국제표준 전문가에게 'IEC 1906 어워드‘를 수여한다. 우리대학의 홍승호 교수(공학대학∙전자시스템공학과)는 지난 7월19일 이 상을 수상했다.
산업자동화용 통신기술. 자동차생산, 반도체개발, 원자력발전 등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분야의 산업에 이 기술의 사용은 필수적이다. 산업자동화용 통신기술 란 무엇인가.
“기계와 기계 사이에 통신을 조정해주는 역할을 하는 산업자동화 시스템입니다. 대체로 공장자동화 시스템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때 필요한 통신망이죠. 일반적으로 통신이라고 하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스마트폰, 인터넷 등을 많이 떠올리게 되는데요. 산업자동화 분야의 통신기술은 예를 들어 자동차 공장에서 기계들 간의 통신망을 조절한다거나 반도체, LED 제품 생산 시 설비 간 통신 조정 등에 사용되는 기술입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자동차 운전 시 작동하는 센서와 네트워크, 비행기 내에서의 통신기술, 빌딩 자동화시스템 등에서도 산업자동화 통신기술이 사용됩니다. 종합해보면 자동화가 필요한 모든 분야의 기능을 담당하는 장비들 간 통신을 담당해주는 것이 산업자동화 통신기술입니다.”
이번 산업자동화용 통신기술의 경우 우리 산업계에서 독자개발된 것이고 이러한 기술의 국제표준 반영은 글로벌시장에서 우리 제품이 생존할 수 있게 하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지식경제부와 기술표준원의 평가가 있었다. 이처럼 독자개발한 산업자동화용 통신기술의 관련 규격이 국제 표준으로 인정되면 우리나라 산업제품에 어떤 긍정적 영향이 있을까.
“이러한 통신기술은 함께 일한 LS산전에서 이 통신망을 개발하기 전에 이미 전 세계적으로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에서 개발하여 상용화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에 해당하는 독자기술이 없어서 값 비싼 로열티를 주고 이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내 제품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외국제품을 수입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제표준으로 채택된 기술이 많지 않는 우리나라이기에 채택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어떤 제품을 개발한다 해도 외국에서는 그 제품의 성능을 쉽게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인된 국제표준이 중요한 것이고, 또한 그래서 국제표준 채택 과정은 굉장히 어려운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국제표준으로 채택됐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회의를 거쳐 이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죠.”
그동안 미국, 일본 등 산업자동통신망 강국들에 의해 국내 산업자동통신망 시장은 잠식되어 왔다. 실제로 이러한 현실이 우리 산업계에 어떤 영향을 끼쳐 왔을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대자동차, 포항제철, 현대중공업 등 기업에서 사용되는 네트워크 시스템의 경우 자동차 설비. 조선 설비. 반도체 설비 등을 운영하고 설비간 통신망을 조율하기 위해 외국제품을 들여와야 했습니다. 한번 설치하면 그 규모가 대단히 크고 장기간 사용해야 하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합니다. 때문에 자동차 한 대 팔아서 100원 벌었다 치면 실질적으로 2,30원은 외국에 다시 주는 셈이었죠.”
독일의 지멘스, 일본의 미쓰비시 등이 대표적인 산업자동화 시스템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에 의해 우리나라 시장이 잠식됐었는데 우리기술의 국제표준 제정을 계기로 지식경제부는 1500억 원 이상의 수입대체 효과를 예상한다고 밝혔다.
“산업통신망 제품은 일반통신망에 비해 전문적이고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제품가격이 상당히 높습니다. 이런 시설을 공장 내에 만들려면 엄청나게 많은 자본이 투자되어야 하죠. 구체적인 경제효과는 이러한 산업통신망을 이제 수입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산출 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산업자동화 분야의 경우 국제표준을 얻지 않고는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통신시스템은 기계간 통신을 담당하는 통신망입니다. 하나의 망이기 때문에 연결고리가 많고 그에 따라 표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쉬운 예를 들자면 옛날에 핸드폰 충전규격이 서로 달라 불편했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죠. 모든 산업통신망에서는 표준에 채택되지 않으면 상품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는 국제기구에서 표준에 채택되고 표준으로 등록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등록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죠.”
지식경제부는 홍 교수가 이번 채택에 ‘크게 기여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표준채택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은 한 졸업생의 기술 소개로 이루어 졌습니다. 우리 학부졸업생이 나를 찾아와 자신이 속해있는 LS산전에서 산업자동화 통신기술 개발했으니 봐달라고 하더군요. 내용을 들어보고 자세히 알아보니 아주 좋은 기술이었습니다. 제가 그 전에는 산업통신망의 국제표준에 관한 활동을 15년 정도 했었습니다. 그동안은 외국기술들을 한국시장에 접목하는 일들을 했었는데요.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보고나서 이걸 외국에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LS산전 연구소장과도 원래 알던 사이라 연구소장에게 기술이 좋으니 국제표준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기술이 국제표준으로 된 사례가 사실 거의 없었습니다. 때문에 연구소장 역시 이게 국제표준이 되겠느냐며 반신반의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15년 동안 국제표준 활동을 해왔는데 이 기술을 보니 독일, 미국, 일본에 뒤질 것 없다면서 설득을 했습니다.”
산업통신망 기술에서는 첫 표준채택 과정이었고 우리는 후발주자였기에 외국의 견제도 있었을 것이다.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이러한 기술을 만들어서 가니 미국에서는 ‘한국에서 만들었으면 얼마나 만들었겠어’라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중간 중간 너무나 당연한 부분을 꼬투리 잡아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표준 1종을 만들었는데 첫 물꼬를 트고 나니 2개, 4개 만드는 건 더 쉬운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1종 만들기는 어려운데 그 이후에는 일이 더 잘 풀려서 5종을 만들었고 현재 새로운 3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외국 표준의 한국화와 관련해서 일했다면, 홍 교수는 이제는 한국기술의 국제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그전에는 다른 나라 기술을 한국시장에 적용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재미가 좀 없었죠(웃음).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기술을 국제표준화 하는 것이니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주 재밌게 일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대되는 분야입니다.”
- 김현수 학생기자
- eg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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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및 약력
홍승호 교수 (공학대학∙전자시스템공학과)는 현재 우리대학 대학원 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홍 교수는 연세대학교 공학대학을 1982년에 졸업하고 1985년에 텍사스 주립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1989년에 펜실바니아 주립 대학교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학술 활동으로는 주요 국내외 학술지에 50여 편의 논문을 게재 하였고, 80여편의 논문을 국제 학술대회에 발표한바 있다. 주요 연구 활동으로는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 필드버스 및 산업 통신 네트워크, 빌딩 & 홈 네트워크 시스템, 네트워크를 이용한 자동화 제어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산업 무선 네트워크 및 무선 센서 네트워크 기반의 AMI/DR 스마트 그리드 기술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홍 교수는 국제 표준화 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현재 IEC TC65 및 ISO TC 184 대한민국 분과 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