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36

 화학물질 이용한 최첨단 정보소재 개발

 "화학은 NT 비롯한 차세대 첨담기술의 기반"


화학과 김낙중 교수

 

 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가 가득한 실험실에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여러 명 서있다. 커다란 실험용 테이블 위에는 여러 가지 색깔의 액체와 가루들이 들어있는 비커와 시험관들이 가득히 놓여 있고, 연구원들의 손에는 깨알같은 크기로 각종 기호와 공식 그리고 숫자가 잔득 적혀있는 보고서가 들려져 있다.

 

 '화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위의 장면과 비슷하게 답할 것이다. 화학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있어 화학은 위의 실험실 모습처럼 막연한 이미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현실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화학이란 학문에 대해 일반인들은 외워야 할 기호와 공식이 많아서 어렵고, 복잡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정보산업의 기본인 유기광전자재료 연구

 

   
 

 자연대 화학과의 김낙중 교수는 이러한 '전통적인' 개념의 화학과는 상당히 다른 '유기광전자재료'라는 '최첨단' 화학 분야를 연구하는 화학자이다. 새로운 개념의 분야인 만큼 김 교수의 실험실은 앞에서 설명한 모습의 '전통적인' 모습의 실험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김 교수의 실험실의 주인공은 비커와 시험관이 아닌, 정보처리 및 정보전송에 쓰이는 각종 소재와 이것의 처리 형태와 속도를 알아보는 데 필요한 실험기구들이다. 실험실의 모습만을 생각한다면 김 교수의 실험실은 화학보다는 물리학이나 전자공학 혹은 재료공학 쪽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유기광전자재료는 정보산업의 기본이 되는 정보소재들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연구를 하는 분야이다. 구체적으로는 화학물질을 이용해 정보처리 양, 속도, 정확성 등이 뛰어난 소재들을 개발해 정보처리 방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분야이다.

 

 "일반적인 화학 분야들과는 상당히 다른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이론적립과 현상규명에서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 낸다는 데 특징이 있는 분야가 유기광전자재료 분야입니다. 아시다시피 정보화 사회의 발전에 있어 핵심 중 하나는 얼마나 우수한 정보처리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유기광전자재료는 바로 이러한 정보처리 기술의 진보를 선도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20세기의 정보화는 반도체 물질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지만, 21세기의 정보화는 유기화학 물질을 중심으로 정보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전자를 이용한 정보처리량과 정보처리 속도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유기화학, 구체적으로는 빛과 같은 것을 이용해서 정보처리량이나 정보처리 속도를 개선하려고 하는 연구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 역시 과학기술부가 주관하고 있는 국책과제인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을 통해 이와 관련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미래 첨단 과학기술의 기반이 될 '화학'

 

   
 

 김 교수는 화학을 자연과학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다. 다시 말해, 화학은 모든 자연과학 및 공학의 기반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평소 지론이다.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학문이 바로 화학이며 화학을 이해하면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학은 기초와 응용 둘 모두를 넘나들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조만간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김 교수는 확신감에 찬 어조로 설명했다.

 

 현재의 과학기술 경향을 볼 때 김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왜냐하면 차세대 첨단 과학기술 산업이 화학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의 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NT(Nano Technology)의 경우도 그 기초는 화학에 있다. 또한 NT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첨단 기술이지만, IT, BT, ET 등과 같은 다른 첨단 기술의 기반이 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 중 화학을 배제하고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화학을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학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물론 오래된 학문이고 워낙 넓은 영역을 갖춘 학문이다 보니 공부할 게 엄청나게 많죠. 하지만, 중심이 되는 학문의 위상에 걸맞게 매력도 있고, 자신이 개척할 수 있는 부분도 많은 분야가 바로 화학입니다. 좋은 면을 봐야 합니다."

 

 "연구하는 것만큼 가르치는 게 좋다"

 

   
 

 김 교수는 2000년 3월 본교 교수로 임용되기 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책 과학기술 연구기관인 KIST에서 활동했다. KIST는 그 명성에 걸맞게 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수준의 연구여건을 갖추고 있는 기관 중 하나로 꼽힌다. 따라서 최첨단 분야와 관련된 연구에 전념하고 있는 김 교수에게 KIST만큼 이상적인 곳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김 교수가 KIST 생활을 포기하고 본교로 자리를 옮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육에 대한 열정 때문입니다. 연구에서도 큰 기쁨과 보람을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지만 제가 아는 것을 후학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서 더 큰 보람과 기쁨을 얻고 있습니다. 학자에게는 자신의 지식을 후학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연구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정도의 차별화는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교수마다 연구와 교육 중 중심분야를 선정해 하나에 보다 주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외국 대학의 교수들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은 강의와 연구 모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분산시켜야 하는 경향이 많다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김 교수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각 대학별 SCI 논문 게재수 같은 것을 토대로 연구력을 측정하고, 자율적인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은 방안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단순한 총 게재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각 세부 분야별로 얼마나 많은 논문들이 발표됐으며 인용됐는지를 알아보는 게 가장 바람직한 연구력 증진 방법이라고 덧붙혔다.

 

 "하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한다"

 

   
 

 김 교수가 화학, 더 나아가서는 과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믿음 중 하나는 '좋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무슨 무슨 기술을 개발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가진 사람과 연구 그 자체에서 흥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이런 김 교수가 바라는 것 중 하나는 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큰 어려움 없이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사회환경이다. 그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우수 인력들이 기쁜 마음으로 연구에 임할 수 있고,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 바로 김 교수가 그리는 이상적인, 그러나 꼭 현실로 우리에게 다가와야 할 세상이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김낙중 교수는 누구?

 

   
 

 김낙중 교수는 1973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83년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2000년까지 KIST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2000년 3월부터 본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대한화학회 상임편집위원, 한국고분자학회 분자전자부문위원회 회장, 한일공동포럼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내 17편, 국외 54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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