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37
세계적 권위 IEEE Senior Member 선정
"공대 발전 위해 우수 교수 초빙 필요"
어영선 교수 (공학대 전자컴퓨터공학부)
지난 1/4분기에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영업 실적은 곧바로 종합주가지수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수출규모는 우리나라 수출의 20%에 달할 정도라고 하니 그 비중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다. 반도체, 정보통신, 디지털가전, 컴퓨터 등 전자산업은 비록 서구 선진국에 비해 출발은 늦었으나 불과 2, 30년만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 급성장한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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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산업이 이렇듯 급성장한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인적자원이 풍부하는 것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D램 개발 경쟁에서 미국과 일본 등 경쟁사들을 한발 앞설 수 있었던 것도 다름아닌 뛰어난 재능과 넘치는 열정을 지닌 젊고 유능한 공학인, 엔지니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반도체와 정보통신분야에서 이룬 성과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만큼 이 분야의 기술개발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다. 반도체와 정보통신분야의 가장 기초가 되는 고성능 고집적 칩을 개발하는 어영선(공학대·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역시 누구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 겨를이 없다.
IEEE Senior Member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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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 산업의 중추가 되는 고성능 고주파 혼합시스템의 시스템 레벨 통합 설계와 응용기술개발을 목표로 수많은 밤을 불면으로 지샌 어 교수에게 최근 그간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단박에 씻겨주는 소식이 찾아 들었다. 전기전자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에서 어 교수를 Senior Member로 회원 자격을 격상시켰다는 통보가 그것.
IEEE는 전세계 150여개국에 377,000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회원들은 student member, member, senior member, fellow로 나뉘어 지는데 이중 세계적 석학인 fellow를 제외한 senior member는 7% 미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도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과거에는 fellow나 senior member를 정치적인 이유나 지역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선정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그러한 예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순전히 학문적인 성과와 연구업적을 토대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고 들었습니다. senior member가 되었다고 해서 특별히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학자의 '자존심'이라는 점에서 제겐 의미가 있습니다."
2명의 교수가 운영하는 독특한 연구실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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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교수는 현재 'Giga Electronic System Lab'(이하 Giga Lab)을 이끌고 있다. '고속회로연구실'을 전신으로 하는 Giga Lab은 국내 공학계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체제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2명의 교수가 공동으로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 교수의 동료는 심종인 교수. '동거'를 시작한지 벌써 3년째다. '같은 형제라도 동업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해관계가 걸린 분야에서 같이 일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수 억원짜리 프로젝트가 왔다갔다하고, 연구성과를 공유한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은 공학분야에서 두 젊은 교수가 '동업'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우리는 훌륭한 인프라와 뛰어난 학생을 보유하고 있는 KAIST와 서울대, 포항공대와 경쟁해야합니다. 이들 대학들은 보통 교수 1명에 박사 10명, 석사 10명이 기본입니다. 석박사 합쳐봐야 너댓명에 불과한 우리가 이들과 경쟁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리한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교수 2명이 힘을 합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차피 연구를 끌고 나가는 것은 교수이기 때문에 심 교수와 제가 수적으로 불리한 부분을 커버하는 거지요. 마침 심 교수가 부품(component)쪽이고, 제가 시스템쪽이라서 상호보완의 장점도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연구실을 합치니까 2대이던 복사기를 1대로 줄이고, 팩스를 1대 들여놓는 식이다. 공간도 넓어지고 학생들의 연구환경도 그만큼 나아졌다. 말 그대로 '시너지 효과'인 셈이다. 학번도 같고, 성장배경도 비슷해 쉽게 의기투합했다는 두 교수에 대해 주위의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6개월도 힘들 것이라던 Giga Lab이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별탈없이 3년째 순항해온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마음을 비우고 오로지 학문적 성취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년간 고속 고주파 시스템 설계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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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외도 한번 하지 않고 '한 우물'만 팠다는 두 교수의 열정과 노력은 Giga Lab이 '국가지정연구실'(NRL)에 선정되는 성과로 이어졌다. 국가지정연구실로서 Giga Lab이 수행하고 있는 과제는 '고속 MCM 시스템 설계 기술 개발'이다. 2004년까지 총 5년에 걸쳐 진행되는 이 과제는 여러 개의 칩을 하나로 집적한 MCM(Multi-Chip-Module) 시스템을 보다 고속화, 고성능화하는 설계 기술을 개발해 이를 시스템 레벨에서 통합·응용 설계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두 남녀가 만나서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서는 성격도 파악하고, 양가의 부모님과도 만나야합니다. 종합적 환경이 충족되어야만 서로 결합할 수 있는 것처럼 MCM 시스템도 각각의 특성을 파악하여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상호관계속에서 충돌은 없는지 등을 치밀하게 고려해서 설계해야합니다. 인텔(Intel)사의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설계하는데만도 수백명의 연구원들이 투입되는 것도 바로 고성능 칩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특성 때문이지요."
"공대 발전 위해 우수 교수 확보 필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닌 어 교수는 당시 대학의 연구시설과 환경도 요즘과 비교할 때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었다고 회고한다. 실험실습 기자재는 물론 교재도 변변치 않았던 당시에 비하면 지금의 교육환경은 '눈을 비비고 쳐다봐야 할'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 성장과 발전이 곧 대학의 경쟁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어 교수의 생각이다. 어 교수는 60년이 넘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국 공학분야에서 최상위 수준을 자랑하던 우리 대학 공대가 지금 '위기'에 처해있으며 획기적인 의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대교협 등 각종 학문평가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가 안고 있는 '함정'에 빠져 현실에 안주하거나, 자만하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과거의 명성에 기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입니다. 지금도 객관적으로 볼 때 KAIST, 포항공대, 서울대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고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과도 절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지 않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한마디로 '풍요속의 빈곤'입니다."
교수이기 이전에 동문 선배로서 어 교수는 자신의 제자들이 대학원을 진학하려할 때 굳이 우리 대학에 남으라고 권유하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과연 '국내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더 많은 학문적 성취를 담보해줄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안식년 제도나 SCI급 논문게재 장려금제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어 교수의 표정에서는 어떤 절박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대학의 경쟁력은 곧 교수의 경쟁력'이라고 믿고 있는 어 교수는 지금이라도 우리 대학이 우수한 교수를 더 많은 연봉을 줘서라도 데려와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에 안주하려는 순간 바로 경쟁에서 도태되어 2류로 전락한다'는 전자산업의 불문율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미적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졸업시키는 현재의 공학교육은 또다른 의미에서 '문맹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며 씁쓸해하는 어 교수는 설혹 학점이 '짠' 자신의 수업이 폐강된다고 할지라도 원칙을 꺾지는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프로젝트 등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한 우물을 파 회로설계분야에서 학계와 업계 모두의 인정을 받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라는 어 교수는 senior member 승격의 기쁨도 잠시 이제 member가 아닌 senior member로 기재될 논문을 쓰기 위해 늦은 밤까지 연구실을 밝혀야할지도 모른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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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선 교수 약력 및 경력
어영선 교수는 1983년 우리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85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93년 University of Florid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통신 R&D 센터(86-88), Applied Micro Circuits Corporation(93-94), LSI Logic R&D Center(94-95)에서 근무한바 있으며 95년부터 안산캠퍼스 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IEEE 학회지 등 국외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국내 30여편의 논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