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역량있는 신진 감독ㆍ스타 대거 배출
순간의 '인기'보다 '작품성' 고집하는 전통 지킨다
한양에는 이른바 '반짝 스타'가 없다. 조각 같은 외모와 수려한 패션보다 늘 고집스런 '개성'과 '연기'를 중시해 온 탓이다.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배역이 있다'는 말은 배우에게 있어 가장 큰 찬사다. 한양의 스타들이 유독 '장수'를 누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70년대와 80년대, 마치 가까운 이웃의 누구와도 같이 수수한 외모로 안방극장을 점령했던 한양인의 활약상을 지금도 지켜볼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러한 전통이 있다. 신성일이 열연하는 '전원일기'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대중과 함께 울고 웃어온 '국민배우' 최불암과 임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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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서울연영 60) 동문은 방송계에 있어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한양의 '수장급' 배우다. 1967년 한국방송공사에 특채되어 〈수양대군〉으로 데뷔한 이래 30여년이 넘도록 시청자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국민배우이기도 하다. 서라벌예대 연극학과를 졸업한 이후, 영화감독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1960년 본교 영화과에 입학했다. KBS의 〈사화산〉, 〈제3지대〉, 〈한오백년〉을 비롯해서 MBC의 〈강변살자〉, 〈집〉, 〈사슴이 노는 언덕〉, 〈당신〉, 〈아버지〉, 〈그대 그리고 나〉 등 약 1백여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1971년에 시작한 〈수사반장〉과 1980년 첫 방영 후 MBC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1천 회를 훌쩍 넘긴 〈전원일기〉는 그를 국민배우로 각인케 한 대표작이다. 1992년에는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다.
최불암 동문과 함께 영원한 국민배우로 평가받는 임현식(서울연영 63) 동문 역시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는 '개성파' 배우다. 1968년 MBC 탤런트 공채 1기로 방송에 입문, 1978년 드라마 〈당신〉에서 탤런트 김수미와 좌충우돌하는 부부 역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암행어사〉와 〈한 지붕 세 가족〉을 통해 브라운관의 '감초'로 굳건히 자리를 굳혔다. 스스로를 '이도령과(科)'가 아닌 '방자과'라 칭하며 30여년이 넘도록 독특한 개성을 잃지 않고 있다. 드라마 〈허준〉 출연 이후 CF 섭외가 급증할 만큼 인기가 높다는 후문이다. 최불암과 임현식 외에 노주현 동문과 태현실, 이혜숙, 양택조, 서수남, 임하룡 동문 등도 한양 출신의 1세대 방송인으로 꼽힌다.
한양의 전통 잇는 386 방송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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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분주히 오가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유오성, 설경구, 권해효 동문 3인방은 모두 연영과 85학번 동기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 〈꽃잎〉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설경구 동문은 이후 〈러브스토리〉, 〈처녀들의 저녁식사〉, 〈유령〉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99년 박종원 감독의 〈송어〉를 거쳐,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에서 주연을 맡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너무도 평범한 개성을 충무로에서 '독점'한 배우로 평가받는다. 권투선수 출신의 형사 역으로 열연한 〈공공의 적〉을 거쳐 이창동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춘 〈오아시스〉가 오는 15일 개봉 예정에 있다.
〈테러리스트〉, 〈비트〉, 〈간첩 리철진〉, 〈주유소 습격사건〉 등으로 잘 알려진 유오성 동문은 작품의 주·조연에 상관없이 영화 전체를 장악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로 평가받는다. 각종 TV 드라마에서 열연했지만 불멸의 흥행기록을 남겼던 영화 〈친구〉를 통해 다시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고 김득구 선수의 일대기를 담은 곽경택 감독의 영화 〈챔피언〉은 지금도 순조로운 흥행을 계속하고 있다.
TV와 영화, 연극무대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권해효 동문은 설경구나 유오성 동문보다 결코 한가롭지 않을 법하다. '영화는 1컷 찍는데 1시간, 방송은 1컷 찍는데 1분이 소요되고 연극은 두 달 준비해 두 시간 공연한다'는 산술법으로 스스로의 매체관을 피력할 만큼 무대에 애착이 많은 배우다. 수 편의 인권 영화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데 이어, 모 신문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만큼 카메라 밖의 '자기 목소리'도 강한 배우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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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효 동문에 못지 않게 연극을 아끼는 배우이자 방송인으로 박광정 동문(서울연영 87)이 있다.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그가 〈마술가게〉로 92회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 수상하고 〈비언소〉, 〈모스키토〉, 〈저 별이 위험하다〉를 연출해 수많은 관객을 소극장으로 불러모은 중견 연출가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영화 〈넘버3〉와 〈행복한 장의사〉 그리고 드라마 〈학교〉, 〈미스터큐〉 등에도 출연한 바 있다.
비연영과 출신이면서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여인천하〉를 통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도지원 동문(서울무용 87)은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됐다'는 표현이 걸맞는, 본교 출신의 대표적인 여자 연기자다. 국립발레단 출신으로 1990년 드라마 〈서울뚝배기〉를 통해 브라운관에 데뷔했다. 연기 경력이 전무했음에도 일일연속극의 주연급으로 발탁, 단숨에 스타대열에 합류한 케이스. 이후 〈폭풍의 계절〉, 〈호텔〉, 〈목욕탕집 남자들〉, 〈종이학〉, 〈까레이스키〉 등에서 활약하며 자신의 연기력을 증명했다.
이외에 영화 〈인샬라〉, 〈JSA〉, 〈봄날은 간다〉를 거쳐 CF계의 신데렐라로 더 잘 알려진 이영애 동문(안산독문 88)을 비롯해서 박미선(서울연영 85), 정선경(서울무용 89), 이병헌(안산불문 90), 김지영(안산문인 93), 송윤아(안산문인 94) 동문 등이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맹활약 중이다.
'큐하자 대박' 한양인의 '충무로 습격사건'
'스타'는 혼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들의 뒤에는 늘 '스타급' 감독들이 있다. 특히 90년대 이후, 연영과를 중심으로 본교 동문들의 '입봉'이 대거 늘어나면서 '충무로에서 사람 셋을 만나면 두 사람은 본교 출신 감독과 배우이고, 남은 한 사람은 영화를 보러온 한양대생'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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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한양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감독들로 〈신라의 달밤〉의 김상진 동문(서울연영 86),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동문(서울영문 81), 〈하루〉의 한지승 동문(서울연영 85) , 〈텔미썸딩〉의 장윤현 동문(안산전기 86) 등을 꼽는데 아무도 주저하지 않는다. 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를 시작으로 〈깡패수업〉, 〈주유소 습격사건〉 그리고 지난해 여름 개봉했던 〈신라의 달밤〉에 이르기까지 소위 '대박'을 터뜨렸던 김상진 동문은 스스로를 '쌈마이(3류)'라 평하는 타고난 흥행꾼이다. 죽고 싶을 만치 '웃기는 것'은 '철학'과도 통한다는 신념으로 60대쯤에는 코미디물로 깐느에 가고 싶다는 흥행의 보증수표다.
1970년대 후반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영문과에 진학한 뒤, 다시 프랑스 유학길에 올라 파리 제8대학에서 '미소구치 겐지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임순례 동문은 1994년 〈세상 밖으로〉 연출부를 맡으며 충무로에 발을 디뎠다. 같은 해,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우중산책〉으로 대상을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현장에서는 모든 스태프를 진두지휘하는 억척스런 여성이자 작품성과 완성도를 고집하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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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박종원 동문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연출부로 출발한 한지승 동문은 영화사 황기성 사단의 작가로 활동하다가 1996년 동영화사에서 〈고스트 맘마〉로 데뷔했다. 1998년 김혜수와 안재욱이 열연했던 영화 〈찜〉도 그의 작품이다. 임순례 동문과 함께 비연영과 출신으로 영화 〈접속〉과 〈텔미썸딩〉을 연출한 장윤현 동문은 재학시절 교내 영화패 '소나기'에서 '영화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 제작한 8mm영화 〈인재를 위하여〉로 한국 영화계의 '오우삼'으로 평가받기도 했고, 이후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의 일원으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을 만들었다. 1991년 헝가리 국립영화학교에 유학했고 1993년의 귀국과 함께 장산곶매에서 인연을 맺은 이은, 오창환과 '장이오 프로덕션'을 만들기도 했다.
한편 386세대에 앞선 한양의 메가폰들로 故 송영수 감독과 박종원, 김영빈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996년 지병으로 작고한 고 송영수 동문은 77년 〈나비소녀〉로 데뷔한 이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대물〉, 〈선유락〉 등을 연출했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원한 제국〉으로 잘 알려진 박종원 동문(서울연영 79)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지난 99년에는 영화 〈송어〉로 제12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2등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6년, 임권택 감독의 〈티켓〉을 통해 영화계에 입문한 김영빈 동문은 20대 후반에 본교 연영과에 입학한 만학도. 1992년 〈김의 전쟁〉을 시작으로 〈비상구가 없다〉, 〈테러리스트〉, 〈나에게 오라〉, 〈불새〉 등을 연출한 바 있다. 이 외에 영화 〈비천무〉의 김영준, 〈불후의 명작〉을 연출한 심광진, 〈로스트 메모리즈〉의 이시명, 〈선물〉의 오기환, 〈귀천도〉, 〈할렐루야〉 등을 제작한 정초신 프로듀서도 충무로의 대표적인 한양인들이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