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원 학생기자
- 입력 2002.08.22 00:00
- 수정 2016.01.17 00:00
- 댓글 0
- HYERICA
"디지털이여, 이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라"
삶의 질 향상, 산업생산 유발 위한 디지털 경영 필요
경영학부 장석권 교수
19세기 중반,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한 목수가 금맥을 발견한 사건이 있었다. 서부 개척 시대였던 당시 이 소문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이른바 '골드러시(gold rush)'를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1백 50년 뒤, 역시 같은 장소인 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러시'가 나타난다. 반도체 생산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의 실리콘 밸리를 이끈 '디지털 러시(digital rush)'가 바로 그것이다. 이 디지털 러시는 매우 짧은 시간에 미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이른바 지구의 온라인화를 촉진시켰다. 새로운 '금맥'을 향한 경쟁적 '질주'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 | ||
장석권(경영대·경영학부) 교수는 이러한 한국의 '디지털 러시'를 이끈 장본인 중 한 명이다. 경영정보시스템(Management Information Technology, MIS)을 주 연구분야로 삼고 있는 장 교수는 20년 전 통신 산업과 관련된 학위논문을 집필한 이래, 현재에도 통신 분야에 있어 유일무이한 전문학자로 꼽힌다. 시외전화번호 광역화, 개인휴대통신 번호부여,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 구축 등은 그가 참여한 대표적인 사업들이다. 또한 통신업계의 구조개편과 관련하여, 각종 공청회 등을 통해 정부에 직·간접적인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세계 1위의 온라인 인프라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에 있어서 세계 1위입니다. 2위인 캐나다보다 보급률에 있어서 2배 이상의 차이가 나죠. 우리의 인프라 구축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외국에서는 '기적'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빠른 속도의 인프라 구축에도 불구하고 현재 통신업계는 이 인프라를 활용하는데 답을 못 찾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답을 찾기 위해선 두 가지 측면의 접근이 필요하죠. 하나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산업생산을 유발하는데 있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라는 겁니다."
![]() | ||
장 교수는 이미 구축된 우수한 인프라를 통해 어떻게 일반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와 그것이 실물 경제에서 생산을 유발하는 쪽으로 얼마나 빨리 개발·보급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유선인프라와 더불어 세계 수준의 무선인프라(이동통신)를 이용,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낸다면 이는 연쇄적으로 관련 산업의 생산 파급효과를 촉발시켜 해외시장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의미에서 장 교수의 IMT2000(광대역 이동통신서비스)에 대한 기대는 크다. 우리보다 앞서 시작했던 유럽은 UMTS라는 개념으로 IMT2000 사업을 시작했으나 과도한 주파수 경매 대금으로 인해 사업의 진척이 막혀버린 상황이고, 미국의 경우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새로운 시장이 개발되는 탓에 아직 부진한 상태인 것. 따라서 2천 7백 만의 무선가입자 기반과 세계 1위의 유선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한국의 지극히 경쟁적이고 변화 지향적인 사업자와 역동적인 소비성향의 소비자들은 빌 게이츠가 국내 통신기업과의 제휴의사를 피력할 만큼 매력적이고 가능성 넘치는 시장 요소라는 것이다.
온·오프라인, '대체' 아닌 '보완' 관계
빠르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요즘 세상에서 경영학 역시 정보기술(IT)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영정보시스템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경영학'에 대해 장 교수는 IT 발전을 통해 마케팅, 인사, 조직 등의 기능적 측면의 변화를 연구·고찰하는 학문이라고 밝힌다. 즉 디지털 경영은 기존의 전통적인 경영생산활동에서 IT 도입으로 인해 달라지는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함으로써 미시적인 변화보다는 구조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춰 경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는 설명이다.
"90년 대 중반에 인터넷 붐이 한창 일어났을 때는 디지털 경영이 모든 전통적인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90년 대 중반에서 2000년대까지 5년 정도의 시간동안 인터넷 거품을 겪으면서 재고됩니다. 결국은 온라인 사회가 전통적인 오프라인 비즈니스 사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보완하는 측면이 많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예를 들면 디지털 도서관이 보급되면서 전통적인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더 강화시키고 편리하게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 | ||
결국 90년대의 시행착오를 통해 온라인에서의 경영활동은 오프라인을 대체하기보다 보완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향후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효과적으로 보완하여 전체적인 생산 프로세스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과 온라인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디지털 경영의 남은 과제라고 역설한다. 인프라의 강점이 신규 서비스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함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에 너그럽고 성공에 자만하지 말라
장 교수는 작년 한해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으로 회고한다. 안식년을 맞아 1년간 스탠포드 대학의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실리콘 밸리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교의 창업보육센터 소장이기도 한 그가 느낀 실리콘 밸리의 벤처 생태계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고 견고한 것이었다. '실패에 너그럽고 성공에 자만하지 않는' 실리콘 밸리만의 특징에는 분명 우리의 벤처기업인들이 배워야할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2000년 4월, 닷컴 기업들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무너지며 연속 5주 동안 주가가 폭락한 후 실리콘 밸리는 심각한 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 사실 국내 벤처기업들의 사이클을 보면 실리콘 밸리보다는 늦게 시작했고, 늦게 꺼졌죠. 뒤늦게 출발했다는 의미는 세상의 변화를 적어도 리드하지는 못했다는 것이고, 늦게 꺼진 것은 정부의 간섭이 있었다는 것이죠. 시장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미국과 정부가 보조하고 지원해주는 한국의 벤처 시스템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벤처 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 자체는 서로 같으므로 실리콘 밸리가 거친 구조조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유효한 학습이 될 것입니다."
![]() | ||
장 교수의 언급대로 미국의 벤처 환경 생태계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벤처 역사가 기껏해야 수년을 넘지 못하는 것에 반해 미국은 40여 년으로 여덟 배나 긴 시간을 가지고 있다. 두 생태계의 차이는 법제적 기반에 있어서 같을 수 없고 경쟁 규칙과 감시 기능, 시장 진입 및 퇴출의 제도적 기반 등에도 차이가 있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법률과 광고 그리고 기술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전문가 수급이 힘든 만큼 제도 인프라가 미약했던 한국은 그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벤처산업이 태동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장 교수는 IMF 이후 그나마 경쟁력 있는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며 성실한 경영인의 자세와 윤리의식을 갖고 시장과 정면 승부할 것을 당부한다. 아울러 이러한 승부에서 성공적인 사례가 나온다면 한국의 벤처 생태계도 올바른 모습으로 자리잡아 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접속=행복', 디지털 강국의 청사진 그린다
'e-코리아'는 본래 전자정부를 추구하는 개념으로서 대 국민 서비스와 행정부처간 업무의 전산화로 추진된 것이지만 장 교수는 그 보다 더 깊고 포괄적인 청사진을 구상 중이다. 오프라인에 '코리아'가 있다면, 온라인에도 '코리아'가 있는 형태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 오프라인의 한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 지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온라인 코리아가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장이나 시너지 효과는 막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를테면 대학로나 '예술의 전당'의 공연이 컨텐츠로 서비스되어 지방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면 그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결국 'e-코리아'의 목표는 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과 새로운 가치 창출을 통한 산업생산 유발입니다. 우리의 사는 모습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죠. 물론 아직은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이고 구체화할 부분도 많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보편적 개념이 되어 있지 않고, 아직까지는 인식도 높진 않지만 기업과 학교,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디지털 강국'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진 않았습니다."
윤석원 학생기자 astros96@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 | ||
학력 및 약력
장석권 교수는 1979년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에서 81년과 84년에 각각 산업공학 석사와 경영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84년부터 본교 경영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90년과 2000년, 미국 반더빌트 대학(Vanderbilt University)과 스탠포드대학(Stanford University)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했다. 한국경영과학회 총무이사, 정보통신부 정보화사업 평가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경영정보학회 부회장, 정보통신정책학회 이사, 본교 창업보육센터 소장, 본교 정보통신원 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90년에는 'Fullbright Senior Research Grant'를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