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펀아티스트 안승준 특임교수(자연대·화학)

선물 받은 스마트폰으로 심심한 병원 생활을 달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어 전자펜으로 간단한 낙서를 덧붙여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에 올렸더니 반응이 좋았다. 몇 십 년 동안 숨겨왔던 그림 실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속 낙서는 어느새 마음이 담긴, 살아있는 그림이 됐다. 그림과 SNS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그림 활동은 병을 낫게 했다. 캔버스, 물감, 붓 등 그 어느 하나 필요 없이 스마트폰 하나면 예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시작됐다. 디지털 기기로 예술을 즐기는 ‘디지펀아트’. 여기에 흠뻑 빠 져있는 안승준 특임교수(자연대·화학)와 함께 디지펀아트 세상으로 들어가보자.
그림으로 치료받은 안 교수, 새로운 그림의 세상을 열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안승준 교수(자연대·화학)에게 은퇴시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은퇴 후 아직 길을 찾지 못하던 그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따라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진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있는 걸 알게 됐지만 동시에 표현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렇게 제 2의 삶을 준비하던 그에게 갑자기 고비가 찾아왔다. 큰 질환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망연자실한 그에게, 후배가 힘 내라며 선물해준 스마트폰’이 투병 생활의 치료제가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병실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 스마트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터라 그릴 때만큼 통증을 잊을 수 있었어요. 하나 둘씩 SNS에 올렸는데 주변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기분이 어떤지, 상태는 어떤 지 읽어내더라고요. 그림에 담긴 제 마음 상태를 읽고 위로와 격려를 해줬습니다.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이 과정이 건강 회복에 큰 도움이 됐어요"
안 교수의 그림을 본 한 친구는 '지금 많이 힘들지?'라는 문자를 보냈다. 일주일 후 똑같은 그림을 다시 그려서 보여줬더니 그 친구는 '지금은 몸이 좀 나아졌나 봐' 라는 문자를 보냈다. 안 교수가 그리는 그림을 보고 주변인들은 그의 마음 상태를 읽어나갔고 점점 더 사람들과의 소통의 폭은 확장됐다.
“처음에는 그림 전체를 전자펜으로만 그렸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그림 작품들에 나만의 색깔을 입혀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쿠사마 야요이나 이중섭 작가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콜라주하면서 저만의 경험과 이야기가 담긴 새로운 그림이 탄생하기도 했어요. 사진을 찍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요. 매번 그림을 그려 SNS에 올릴 때마다 나오는 다양한 반응들을 그림에 재반영하기도 했습니 다. 그림을 통한 소통이 이뤄진 거죠.”
디지펀아트와 호모루덴스
요즘 이런 예술 활동을 통틀어 ‘디지펀아트(DigifunArt)’라고 부른다. 디지털(Digital)과 즐거움(Fun), 그리고 예술(Art)가 합쳐 디지펀아트(DigifunArt)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것.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즐기는 예술활동을 의미한다. 디지펀아트의 주 수단은 스마트폰. 전화기가 일반 통화기기에서 문화 교류의 매개체로 발전한 것이다.
“디지펀아트는 소통을 통해 계속 변화하는 예술입니다. 기존의 아날로그 감성이 짙은 예술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죠. 그 동안의 예술은 고독한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는 디지털 기기를 통해, 예술이 창작자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공유하는 고민으로까지 변화하고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디지털 기기가 예술의 경계를 깨뜨린 거죠. 예술과 IT, 전혀 다른 영역이 합쳐져 새로운 디지털 문화가 탄생했습니다.
안 교수는 어릴 적부터 꿈꿔온 그림의 길이 있었다. 그러나 그림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까지 미술실기 상을 휩쓸던 그는 그림에 대한 꿈을 접고 학업에 집중했다. 그림을 향한 꿈은 평생 가슴 한 켠에 묻었다. 그 후 산업화 세대로, 특별한 즐거움 없이 한평생 일반 직장인으로 살아왔다 . 하지만 투병생활이 오히려 그에게 잊어버렸던 꿈을 되돌려 주었다. 이제 ‘즐거움을 찾는 첫 세대’로 디지펀아트의 문을 연 것이다. 지난 2일부터 15일, 사진작가 이순심 씨의 추천으로 갤러리 나우에서 개인 전시회 ‘호모 루덴스(Homo Ludens)’도 열었다.
“이번 전시회의 이름인 ‘호모루덴스(Homo Ludens)’는 ‘유희하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디지펀아트의 본질은 ‘펀(Fun)’, 즉 즐거움입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는 이제 더 이상 젊은이들 만의 소유물이 아니에요. 중년들도 충분히 디지털 기기로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령,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예술을 즐기자’는 의미에서 ‘호모루덴스’라 지었습니다.”
디지펀아트로 꾸며갈 제 2의 삶

현재 안 교수는 우리대학 자연과학대 화학전공 특임교수로서 화학전공 학생들의 역량 계발에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뿐 아니라 여러 부문에서 소통과 융합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있다. "이공계 학생들은 다른분야와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성공 할 수 있다"며 '아너스 프로그램(Honors Program)’등을 통해 전공공부에만 매달리는 이공계 교육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제 디지펀아트와 함께할 새로운 삶이 안 교수를 기다리고 있다. 추후 전시회 계획에 대해 묻자 안 교수는 “같이 합시다”라고 답했다. “디지펀아트를 하고 싶은 누구나 디지펀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며 “함께 우리들의 이야기, 꿈에 대해 얘기하자”고 말했다.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안 교수의 디지펀아트 전시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디지펀아트 시대의 막이 올랐다. 아날로그적인 삶에서 디지털적인 삶으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디지펀아트가 우리 삶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해본다.
“앞으로의 예술에는 사진, 그림 등 여러 영역의 경계선이 불분명해질 거라고 봐요. 디지털 기기를 통한 새로운 문화가 널리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디지털 강국에서 예술과 IT의 융복 합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이 현상을 우리의 역량으로 확대하고 재생산해 K-디지펀아트 문화 보급에 힘쓰고 싶어요. 새로운 디지털 생태계를 형성해 또 한번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겁니다.”
- 김은강 학생기자
- keriver@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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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중 사진기자
- kimhjh@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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