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대 매거진 2020 가을호> 정민 교수의 책과 독서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 세 번째
변화의 시대, 어떤 책을 읽을까?
우리는 그야말로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에는 10년쯤 지나야 변하던 강산도 근래에는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없이 빠르게 변모한다. 새로운 기술과 문화, 지식이 풍랑처럼 몰아치는 시대다. 우리가 ‘독서의 힘으로 현실을 꿰뚫다!’를 연간 테마로 책과 독서의 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이렇게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지식과 더불어 혜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닐세
오나라 손권(孫權)이 여몽(呂蒙)에게 군대 일을 맡긴 뒤 책을 읽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몽이 대답했다. “군대에 처리할 일이 너무 많아 도무지 책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손권이 말했다. “누가 그대더러 경전을 연구해서 박사가 되라고 했는가? 공부를 해야 지난 일을 알 수가 있다네. 일이 많다고 했나? 자네가 나보다 일이 더 많은가? 나도 늘 독서를 하고 있네. 해보니 크게 유익한 점이 있더군.”
군주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여몽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노숙(魯肅)이 그에게 들렀다가 대화를 나누고는 크게 놀라 말했다. “지금 자네의 재주와 학문이 예전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닐세.” 그러자 여몽이 대답했다. “선비는 사흘만 헤어져도 눈을 비비면서 서로를 대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괄목상대(刮目相對)란 고사가 나왔다. 독서는 사람을 이렇듯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독서 한 이후의 여몽은 더 이상 예전의 여몽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새로 보았다.
그전까지 그는 군대 일에 특화된 전문가였을 뿐인데, 책을 읽은 뒤의 그는 경륜과 식견을 두루 갖춘 우뚝한 인물이 되었다. 세상에 전문가는 많다. 하지만 균형 잡힌 사고, 통찰력과 안목을 갖춘 지성은 그리 흔치가 않다. 독서의 효용이 이럴진대, 어찌 책을 멀리하겠는가?
날마다 책이 쏟아져 나온다. 뒤섞여 어지럽게 쏟아지니 옥석을 가리기가 점점 더 어렵다. 겉은 말끔한데 속은 그렇지가 않고, 포장만 요란하지 알맹이가 없다. 게다가 정보의 수명은 갈수록 짧아진다. 어제 있던 직업이 오늘 사라지고, 이제껏 관심을 끌던 주제를 내일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대중의 기호는 널을 뛰고, 미래의 전망은 좀체 그려지지 않는다. 방향을 어떻게 잡을지, 무엇에 중심 가치를 두어야 할지 가늠이 잘 안 된다. 그럴수록 엉덩이를 무겁게 가라앉혀 독서에 침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좋은 책을 잘 읽으면 된다. 하지만 좋다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원하는 것도 때에 따라 바뀌니 일괄해서 말하기가 어렵다. 잘 읽는 것도 저마다 기준이 달라 한 가지로 말할 수가 없다. 책을 읽어 잃어버린 삶의 방향도 되찾고, 가치의 중심도 잡고 싶은데 그게 쉽지가 않다.
정보가 아닌 통찰력을 길러라
정보의 수명이 짧아질수록 정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통찰력이 중요해진다. 정보를 알려주는 책 말고, 통찰력을 길러주는 책을 읽어야 한다. 생각의 결과를 보여주기보다, 생각의 경로를 일깨워주는 책이 더 요긴하다. 정보는 유튜브로 알고, 지식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남이 떠먹여주는 것이다. 과정 없이 결과만 얻어 버릇해서는 내 것이 될 수가 없다.
독서는 인내를 요구한다. 하나하나 벽돌 쌓듯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진득한게 싫고 집중이 어렵다 보니, 사람들은 갈수록 책을 멀리한다. 세상엔 비슷한 가짜들 투성이다. 엇비슷한 가짜 말고, 앵무새 흉내 말고 진짜를 찾아내는 안목이야말로 가장 힘센 경쟁력이다. 이 안목은 책 읽기를 통해서만 갖춰지니, 일단은 좋은 책을 찾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 덮어놓고 읽지 말고 따져가며 읽고, 되는대로 읽지 말고 계획을 세워서 읽어야 독서의 보람이 있다.
책도 두고두고 읽을 책과 필요에 따라 읽어치워야 할 책을 구분하는 것이 옳다. 가볍게 읽을 책과 큰 마음먹고 읽을 책을 나눠야 한다. 큰 마음먹고 읽어야 할 책을 가볍게 읽으면 읽으나 마나고, 가볍게 읽어야 할 책을 무겁게 읽으면 시간이 아깝다. 사람은 평생을 두고 가까이 읽어야 할 책 몇 권쯤은 갖는 것이 좋다.
질문을 바꿔라
독서에도 차례가 있다. 다산은 선경후사(先經後史)를 말했다. 경전을 먼저 읽고 나서 그 다음에 역사를 읽으라는 뜻이다. 추사 김정희는 경경위사(經經緯史)라고 썼다. 경전을 날줄로 걸고, 역사를 씨줄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니, 앞선 다산의 말과 뜻이 같다. 경전은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고전을 말한다. 본질을 다루고 바탕을 다지는 공부다. 이 공부가 자리를 잡은 뒤에 역사를 배운다. 역사는 현실의 자취다. 여기에는 원칙이 없다. 악인이 이기기도 하고, 정의가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중심을 안 세우고 역사부터 배우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전문 지식만 있고 통찰이 부족하면 잘 나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방향을 놓치고 만다. 열심히 했는데 아무 보람이 없게 된다. 독서로 생각의 줏대를 세우고, 각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다.
그러자면 늘 하던 생각, 늘 보던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질문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질문을 바꾸면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던 대로 하고 가던 길로만 가서는 변화가 없다. 질문을 바꾸고, 새 길을 걸을 때 삶은 늘 경이로 가득 찬다. 책은 나를 경이의 세계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여행은 길 위의 독서이고, 독서는 방 안의 여행이다. 여행은 풍경과 문화라는 책을 읽는 것이고, 독서는 나를 열고 개방시키는 여정이다.
세상에는 가짜 책들이 너무 많다. 남의 콘텐츠를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재편집한 책들이 넘쳐난다. 이런 책에 현혹되어 쫓아다니다 보면 껍데기와 겉멋만 남는다. 요령만 알려주는 자기개발서로는 자신을 개발할 수가 없다. 자기가 한 생각, 자기가 시간을 들여서 한 것 속에만 의미가 담겨있다. 고전은 그런 점에서 흔들리는 중심을 딱 잡아주는 책이다. 편식은 건강을 다치게 만든다. 무엇보다 폭넓게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호기심은 우리를 살아나게 하는 마법을 부린다. 학자가 호기심을 잃으면 학자의 생명이 끝난다. 학생이 호기심을 잃으면 눈빛이 흐려진다. 그다음부터는 시간 죽이기만 남는다. 짜릿한 흥분도 좋지만 차분히 가라앉히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 자극적인 음식은 어쩌다 먹는 것이지, 일상의 건강은 밥과 기본 반찬에서 나온다. 날마다 자극적인 음식만 찾으면 잠깐만에 건강을 잃고 만다.
글의 힘은 생각의 힘에서 나온다. 힘이 센 생각이 담겨야 좋은 책이다. 생각의 힘은 사유의 힘이다. 오래 우러난 진국 같아야 힘이 있지, 살짝 끓인 것에서는 깊은 맛이 안 나온다. 이런저런 재료들이 합쳐져서 오래 곰삭아야 깊은 맛을 낸다. 그래서 의문을 품고 의심을 만드는 독서가 필요하다. 좋은 책은 나를 살아나게 만든다.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다.
당나라 때 한유(韓愈)는 「진학해(進學解)」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느라 “등불을 밝혀가며 낮을 이었고, 언제나 오두마니 앉아 해를 보냈다.(焚膏油以繼晷, 恒兀兀以窮年.)”고 썼다. 그런 온축의 시간 끝에 나를 만날 때 그 나가 진짜 나다.

정민 교수는?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다산 정약용 연구의 권위자이자 새로운 시각으로 고전 속의 지혜를 전하는 지식인이다. 혜안을 넓히는 독서와 글쓰기에 관한 강연과 저서 활동도 펼치고 있다.
글 정민 교수(국어국문학과)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가을호(통권 제255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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