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57

 "나는 기쁘게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행복' 전도사


국제관광대학원장 손대현 교수

 

 '논다'라는 말은 어느새 사전적 정의가 말하지 못하는 '냄새'나는 단어가 됐다. 이 말에는 '단어가 함축하는 주체적 의미보다 '일하지 않는다'라는 상대적 뜻이 더욱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익에 반하는 일종의 죄악처럼 부끄럽고, 숨겨야 할 개인 현실로 치부된다. 무엇을 나누기 보다 함께 먹을 '빵'을 불리는 데 급급했던 산업 근대화 시기를 거치면서 근면과 성실, 극도의 자기 절제와 검약 등 청교도적 가치가 시대의 불문율로 깊이 자리했던 탓이다. 회갑이 지나서야 '나는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져보았다는 한 대기업 회장의 우울한 고백은 '성장제일주의'의 그늘에서 잊혀진 개인의 가치와 존재의 문제를 다시금 회고하게 만든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살아가는 이유가 뭡니까?' 관광학과 손대현 교수가 '근면한' 세상에 던진 '불온한' 질문은 그래서 더욱 철학적이다.

 

 21세기 산업의 화두, 엔터테인먼트

 

 손대현 교수를 국내 관광학계에 있어 대표적 인물로 거론하는데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1968년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뒤, 1972년 마드리드국립관광대학에서 '관광학'으로 학위를 취득하고 다시 1984년 고려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근대화를 기치로 개발독재의 단면적 사고가 지배하던 국내 상황에서 '잘 놀기 위한' 학문을 위해 유학을 간 사람은 본인이 최초라는 손 교수의 소개가 범상치 않다. 관광학을 단순히 유락단지 개발과 외식산업에 관련된 것쯤으로 생각하는 대중적 인식에 손 교수가 발끈하는 것은 '논다'는 말의 철학적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관광학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우리말인 '여가'의 개념을 살펴야 합니다. '여가'란 영어로 곧 '레저'로 번역됩니다. 레저는 생계를 위한 필요성이나 의무 없이 스스로 만족을 얻기 위한 자유로운 활동으로서 활동을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수면과 식사 등에 소요되는 생리적 필수시간과 노동시간을 사회적 구속시간이라 할 때, 나머지 시간이 자유시간 즉 여가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철학적인 개념입니다."

 

 지난해 손 교수가 주도하여 개설된 국제관광대학원의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은 여가에 대한 그의 철학적 고민을 잘 반영한 산물이다. 여기서 '엔터테인먼트'란 통념적으로 이해되는 '연예' 혹은 '오락'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엔터테인먼트는 보다 광의적인 개념에서 '즐거움' 혹은 '즐겁고 기쁘게 만드는 요소'로 인식할 수 있다. 이를 전제로 할 때, 이제 모든 기업의 상품은 이른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포함하지 않고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손 교수의 주장은 시장의 새로운 질서와도 맞닿아 있다.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은 2001년 9월에 개설되어 현재 3기를 모집하고 있는데 세간의 비상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현재 3기를 모집하고 있는데 한국 굴지의 기업체 사장과 임원 등을 포함해 약 50여명이 현재 과정에 있습니다. 최고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은 앞으로는 모든 기업의 상품이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갖추지 않고서는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당할 것이다 라는 매우 광의적인 고민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있어 행복의 가장 큰 알맹이가 무엇인가를 탐구했을 때 그것은 단연 '펀(fun)'이라든가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라는 것입니다."

 

 '나는 기쁘게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한편 손 교수는 그가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을 기획한 데에는 지난 35년에 걸친 그의 고민과 학문적 성찰이 실천적으로 반영된 것이라 부연한다. 인간이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까닭이 결국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그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알맹이가 과연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규명하고 밝히고 싶었다는 것이다.

 

 "제가 지난 1998년에 '재미론'이라는 책을 쓰면서 펀십(funship)이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규정했는데 이것이 엔터테인먼트의 기초 이론이 됩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 제가 관광학에 입문한 이후 35년에 걸쳐 연구했던 내용을 압축한 것이 98년, 이 책에서 이론으로 정리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것으로 엔터테인먼트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단지 아카데믹하게 이론적인 논의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 엔터테인먼트를 어떻게 심을 것이냐 하는 것을 기업체 사람들과 함께 배우고, 연구하고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그가 35년의 연구사를 집대성했다는 '재미론'은 관광학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행복'과 '재미'에 관한 미학원리, 그 본질적인 사색을 기록한 책이다. 손 교수는 자신의 저서 '재미론'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하는 방식에 관한 일종의 철학적 질문임을 강조하면서 삶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가치가 즐거움, 곧 쾌락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살아가는 주요한 과제 중 하나는 생을 '즐기기 위함'이라 역설한다. '기쁘지 않고서야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모토는 이 모든 내용을 잘 함축한 말이다.

 

 "나는 기쁘게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말이 제가 만든 모토입니다. 우리 사회가 점차 초고도 산업화가 되면 될수록 그 속에서 기쁨은 점차 사라지고 일부에서는 자본주의의 첨예화가 인간성의 말살을 초래한다는 심각한 우려도 낳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일종의 '정락(情樂)산업'입니다. 현대 사회가 정이 고갈되고 삭막해지는 현실에서 이런 것을 회복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적 운동과 산업적 경향쯤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지요. 사람이 기쁘고 싶다는데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디지털 시대의 '행복론'

 

 한 사회의 경제적 건강을 확인하는 지표로 GNP가 있다. 반면 비전공자에게 다소 생소하지만 사회의 행복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GHP라는 것이 있다. 사회의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이 측정지표는 경제적 풍요도인 GNP와 굳이 비례의 함수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는 과연 얼마나 될까?

 

   
 

 "불행하게도 저는 우리 사회의 행복도에 대해 다소 비관적입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 빈곤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질적 풍요는 많은 부분 성취했지만 정신적 양식이 매우 열악합니다. 인간관계라든가 전통문화라든가 많은 무형의 가치들이 사실 많이 파괴됐고, 그 겉모습은 마치 화장을 하듯 포장되어 있지만 내면에 있는 정신 자산과 인간 관계의 온기는 상당 부분 훼손되어 있다고 봅니다."

 

 선진사회를 판단하는 기준을 물질적 풍요가 아닌 정신적 양식과 행복에서 찾아야 한다는 손 교수의 주장은 관광학에 대한 대중적 오해와 마찬가지로 행복에 대한 그릇된 기준과 인식을 갖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빈곤과 저개발에 고통을 겪는 방글라데시가 GHP가 가장 높은 도시로 빈번히 나타나는 까닭도 그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따뜻한 인간 관계를 가지고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 기본적인 상식과 덕목을 잃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고 그 위에 경제적 풍요를 향유해야 한다는 것은 손 교수가 내리는 '행복'의 정의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경력

 

 손대현 교수는 1968년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마드리드국립관광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4년 고려대에서 경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레저와 관광이론, 관광마케팅론, 문화관광론이 그의 주요 전공분야다. 한국관광학회장, 관광연구소장, 서울시 관광진흥자문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국제관광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지난 1998년 출간한 '재미론'을 비롯해 14권의 저서가 있고 국내 60여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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