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58
참된 디지털리스트 양성의 요람
컴퓨터교육과 안미리 교수
1931년부터 1934년까지 동아일보는 4년에 걸친 대대적인 문맹퇴치 운동을 전개한다. 이것이 후에 보다 넓은 의미의 계몽운동으로 확산된 브나로드 운동이다. 이 계몽운동을 시작으로 1960년대 새마을 운동에 이르기까지 문맹퇴치는 '근대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기준과도 같은 것이었다. 브나로드 운동이 발생한지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제2의 브나로드 운동이 한창이다. 이른바 '컴맹' 퇴치를 위한 디지털 계몽운동. 소설 '상록수'의 채영신은 이제 노트북과 PDA로 무장한 채 강단에 서서 디지털 마인드를 외치고 있다.
컴퓨터와 교사, 두 마리의 토끼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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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리 교수가 몸담고 있는 컴퓨터교육과는 이제 막 2회의 졸업생을 배출해낸 신생학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교육과의 취업률은 100퍼센트. 작년에 치러진 임용고사에서는 컴퓨터교육 분야 전체 21명의 합격자 중 7명이 본교 출신으로 수석과 차석을 모두 차지하기도 했다. 국가가 인정한 최고의 디지털 '계몽지도자'는 한양이 배출한 셈이다.
"컴퓨터교육과는 컴퓨터 내용에 대한 교육과 교사 양성을 위한 교육학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특히 본교 컴퓨터교육과의 특징은 컴퓨터 내용과 교육학에 대한 교육 뿐 아니라 컴퓨터와 교육학을 연결시키는 교육공학적인 측면이 강조된다는 점입니다. 학생의 약 50퍼센트가 IT 산업체 분야에 취업하고 있지만 학과의 일차적 목적은 정보교사 양성입니다. 따라서 정보공학에 대한 지식습득을 우선으로 하면서도 진정한 교사가 되기 위한 자질을 기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년간 국가 주도의 교육정보화 정책이 범사회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컴퓨터 교사의 수요 역시 급증하면서 각 대학은 사범계열에 컴퓨터교육과를 경쟁적으로 신설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7차 교육과정 개편에 따라 초등학교에서도 3학년 이후부터 선택적으로 컴퓨터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컴퓨터 교사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 실업 계열에서만 실시되던 컴퓨터 교육이 이제는 일반 고등학교에서도 필수적인 커리큘럼으로 다루어지면서 '디지털리스트'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컴퓨터 교육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는 '목적' 아닌, 학습 위한 '인지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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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는 컴퓨터 교육을 위한 국내 인프라는 세계적인 수준임에도 정작, 교육 이후 야기될 효과나 결과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하고 정책화시키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컴퓨터 교육의 대다수가 활용 교육에만 치중되어 있는데, 이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주먹구구식의 한계를 안고 있다고 부연한다.
"외국의 컴퓨터 교육을 보면 우리나라처럼 활용만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활용교육과 동시에 컴퓨터 기기에서부터 다양한 종류의 IT기기들에 대한 교육, 즉 하드웨어에 관련한 교육들을 합니다. 그리고 컴퓨터 내용에 관한 소프트웨어 교육들을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로고'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치는 등 활용 이전에 컴퓨터 자체를 이해하고 다스릴 수 있는 기술들을 교육합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교육은 급진적인 컴퓨터 산업 발전에 빨리 적응하려는 방향으로만 주도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컴퓨터 교육이 지난 10년 동안 급진적으로 활성화된 부분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체계적인 계획 없이 눈앞의 변화에 적응하기에만 급급했다는 것이 안 교수의 지적이다. 이러한 '사상누각'의 컴퓨터 교육에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활용 중심의 교육 방법은 컴퓨터라는 매체를 보다 나은 교육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안 교수의 설명이다. 아울러 안 교수는 현재의 활용 중심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컴퓨터 교사의 자질이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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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컴퓨터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사의 자질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현재와 같이 일차적인 단계에서 계속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교육방식을 보다 고차원적으로 끌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는 단순한 기기가 아닌 '인지도구'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활용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활용을 넘어서 창조적 사고와 분석적 사고 그리고 복합적 사고의 훈련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사의 몫이죠."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자
인터뷰 도중 계속 눈에 띄는 것은 안 교수의 책상 한 가득 펼쳐져 있는 찰흙 점토들이었다. 초등학교 졸업 이후 근 15년 만에 처음 보는 점토 작품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컴퓨터교육과 학생들에게 자신이 바라는 교사상을 점토로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많은 작품이 나왔다는 안 교수의 설명에 엷은 미소가 묻어난다. 안 교수가 책상 아래로 몸을 굽혀 또 다른 점토 하나를 책상 위로 올려놓는다. 최고의 작품이라 소개하는 그것은 한 입 베어 문 흔적까지 묘사된 '점토 햄버거'였다.
"햄버거 안에는 고기, 양상추, 양파, 토마토, 소스 등 다양한 재료들이 들어 있지요. 그 다양한 재료들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두 개의 빵이 감싸고 있습니다. 이 학생은 '교육은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은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다'라며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답니다. 만약 제가 점토 작품을 만든다면 저는 우선 작은 사람을 하나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아래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을 만들어 아래의 사람 위에 세우겠습니다. 위에 있는 큰 사람이 바로 학생이고, 아래 있는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 되자'라는 것입니다. 제가 가진 교육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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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지닌 교육철학처럼 다른 이를 세우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과 긍정적인 사고가 필수적이라 덧붙이는 안 교수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하루의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는 안 교수는 바쁜 업무로 인해 연구시간이 모자란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라 토로한다. 한 달에 2, 3번 학교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교수로서, 집에서는 이제 초등학교 일 학년인 아들의 숙제를 살펴줘야 하는 자상한 어머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삶을 함께 살아가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21세기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사람을 일깨우고 세우는 '계몽운동가'로서의 삶은 소설 '상록수'의 채영신이 느꼈을 시대적 우울함과는 또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범대를 걸어나오는 동안 안 교수의 마지막 말이 계속 뇌리를 맴돈다.
"혹시 나에게 실패가 있더라도 그것으로 절대 좌절하면 안됩니다. 백 번 찍어서 안 넘어지는 나무는 없습니다. 만약 백 번의 방법이 아니라면 또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그것을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실패란 나를 좌절시키기 위함이 아닌 나의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는 동기입니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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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및 경력
안미리 교수는 1957년생으로 1981년 보스턴대에서 정치외교학 학사학위를, 이후 퍼듀대에서 컴퓨터교육학과 교육공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컴퓨터교육, 멀티미디어개발, 웹기반학습 등이 그의 주요 전공 분야다. 논문으로 국내 20여편 국외 10여편이 있으며 현재 한국교육공학회, 한국컴퓨터교육학회, AERA, AECT, 한국정보처리학회, 한국교육정보방송학회 등에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