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한양 운동본부' 엄정식·이권우·표정훈 교수 인터뷰

문학 소설이나 시를 읽어도 시점과 시대적 배경부터 외우는 수험생용 글 읽기에 익숙한 학생들. 대학에 와서는 치열한 취업 경쟁과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 책을 접하는 횟수가 더욱 줄고 있다. 이들이 다시 책과 친해지는 데 필요한 건, 책에서 찾는 즐거움. 이를 찾게 도와줄 ‘책 읽는 한양 운동본부’의 주축, 엄정식· 이권우· 표정훈 교수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과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왼쪽부터 표정훈·엄정식·이권우 교수

 

세 분 모두 지난 7월에 임용되셨죠. 오시자마자 중차대한 임무를 맡아 부담이 적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한양대에서 보낸 두 달은 어떠셨나요?

엄정식 교수(이하 ‘엄’) : 사실 처음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연한 감도 없지 않았죠. 교무처, 의사소통 클리닉 등 관계부처를 만나 토론하고, ‘책 읽는 한양 운동본부’를 발족하면서 ‘책 읽는 한양’을 만들어가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그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차근차근 해 나가야죠.
이권우 교수(이하 ‘이’) : 지속적인 독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부담도 됐죠.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요즘의 청년 세대들이 책을 잘 읽지 않기 때문에, 이 친구들의 관심을 어떻게 하면 다시 책으로 돌릴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아요. 다행히 지난 두 달간 다양한 한양 구성원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굉장히 협조적이라는 겁니다. 책과 멀어진 세대에 대한 문제의식도 뚜렷하고요.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표정훈 교수(이하 ‘표’) : 첫 술에 배 불리겠다고 욕심내기보다는 아직은 워밍업 단계라고 보고, ‘책 읽는 한양’ 운동에 필요한 기존 자원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한양인 독서대축제’ 등 기존 자원을 바탕으로 우리의 아이디어가 잘 녹아들게 해야죠. 어쩌면 이게 가장 큰 미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책 읽는 한양’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가장 기초적인 질문인데요, 여기서 ‘책’은 어떤 책을 말하는 건가요?
: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좋은 책이죠.
: 범위를 좁혀 말하면 교과과정에서 함께 읽는 고전, 인문지식을 키워주는 교양서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이미 우리 대학에는 지난 2009년 개교 70주년을 맞아 선정한 권장도서 목록이 있어요. 올해는 73주년에 맞춰 73권의 권장도서가 리스트업 되어있죠. 막연히 목록만 알려 주고 읽어라, 강요할 게 아니라 어떻게 자발적으로 읽게 하는가가 우리의 할 일입니다.

교과과정에서는 고전을 읽는다고 하셨는데요, 수많은 양서 중 고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고전은 살아남은 책입니다. 인류의 변화와 발전 과정에서 오랜 세월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저력과 생명력이 있어요. 어떤 고전은 통시대적인 깊은 사상을 담고 있죠. 이는 분명히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 고전은 ‘오래된 미래’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고전 저자에게 선지자적 능력이 있어서 오늘날에도 통용되는 해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에요. 고전은 옛 지식인들이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지적인 노력의 결과물로, 그 치열한 탐구의 흔적이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거죠.
: 여기에 첨언을 하자면, 고전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에요. 어떤 고전을 보면 오늘날의 우리와 똑같은 걸 고민해요. 21세기 첨단사회에서도 답을 찾지 못한, 역사 내내 반복되는 질문이죠. 그들이 던졌던 질문을 되새기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할 수 있어요. 이런 탐구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도 있고요.


하지만 고전은 어렵고,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는 부담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독서가 습관화되지 못한 학생들은 독서 강좌를 또 하나의 과제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 고전 읽기를 ‘아, 또 숙제구나’하고 받아들이는 학생들도 있겠죠. 하지만 앞서 설명한 고전 읽기의 취지를 이해한다면 부담을 덜 수 있을 겁니다. 고전 원서를 독해하거나 중·고교 국어 시간에 하던 것처럼 저작 배경과 행간의 숨겨진 의미를 찾아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강사와 학생이 함께 읽는 시간이거든요. 학생들은 고루할 줄 알았던 고전을 읽어보니 의외로 지금 내 삶과 관련 있구나, 이런 걸 느끼기만 하면 그다음에는 고전을 활용할 힘을 기를 수 있어요. 물론 교수나 강사에 따라 수업 방식에 약간씩 차이는 있을 겁니다.
: 고전독서 강좌는 선택 과목으로, 강제성을 띠지 않아요. 경희대나 숙명여대 에서도 비슷한 강좌를 필수 과목으로 개설했는데, 이런 수업 방식에 동의하지 않은 학생들이 수업을 억지로 듣다 보니 부작용이 있었어요. 그런 사례를 참고해 우리 대학은 선택 과목으로 개설했습니다. 고전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고전독서 강좌는 언제부터 개설되나요?

: 이번 2학기부터 우선 세 과목을 시범 운영합니다. 운영과정에서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는 작업을 거쳐, 2013년 1학기부터 강좌 수를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단과대학별 전공분야와 융합할 수 있는 고전도 이미 선택해 놨고요. 벌써 예정된 강좌가 15개가 넘습니다.

그렇다면 고전독서 강좌를 수강하지 않는 학생들은 어떻게 독서 문화에 동참시킬 수 있을까요?

: 좀 전에 문화로서의 독서를 언급했는데요, 이는 우리 대학이 이미 장려해 왔던 부분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한양인 독서대축제’를 꼽을 수 있지요. 앞으로 이러한 독서 문화의 범위를 더욱 넓혀 갈 계획입니다. 우선 고려하고 있는 것이 ‘독서 인증제’입니다. 인증제는 간단히 말해 고전독서 강좌를 수강하지 않는 학생들도 지속해서 책 읽는 습관을 들이고 그 습관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입니다. 1차원적인 혜택은 마일리지입니다. 예를 들면 고전독서 강좌를 수강하거나 저자 초청 특강을 비롯한 교내 독서 관련 행사에 참여하면 마일리지가 쌓이는데, 이렇게 쌓은 마일리지를 교내에서 현금처럼 쓰는 거죠. 마일리지를 어떻게 쓸 것인지는 아직 논의 중입니다. 고차원적인 혜택은 독서관련 활동을 통해 인문과 고전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축적했는가를 객관적으로 증명해주는 거죠.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사회로 나갈 때 외부에서도 인정하는 포트폴리오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객관성과 입증력을 더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이미 독서 인증제에 준하는 제도를 시행하는 몇몇 학교가 있어요. 운영이 잘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어쩌면 후발주자의 이점이라 할 수 있는데요, 타 대학의 사례를 연구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가능한 한 줄여보려고 합니다.
: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되 강제성을 띠지 않고,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독서 문화에 녹아들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루 제공해 학생들이 책을 즐길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마케팅 용어 중에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라는 게 있어요. 밴드왜건은 행진할 때 대열의 선두에 선 악대차를 말하는데 이게 요란하게 쿵쾅거리고 쇼도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요. 우리 정서로 바꿔 말하면 약장수죠. 이 볼거리를 놓치면 유행에 뒤처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걸 밴드왜건 효과라 합니다. 저는 이런 효과를 노리고 있어요. 딱, 무게 잡고 ‘이제 책을 읽어봅시다’하며 기다리는 대신, 책으로 시선을 끌어 읽게끔 하는 즐거운 독서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요.

 

   
 ▲ '책 읽는 한양 운동본부'는 7월 4일 세미나를 열어 활동 방향을 점검하고 타 대학의 사례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의실 안에서부터 캠퍼스 구석구석까지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려면 관계부처의 협조가 절실할 것 같습니다.

: ‘책 읽는 한양’ 운동은 우리가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한양 구성원들의 중지(衆智)를 모아야 해요. 현재 분위기가 굉장히 우호적이고 학교 차원의 협조도 잘되고 있어요. 각 단과대학의 교수님들도 적극적입니다. 앞서 내년 고전독서 강좌에 대해 언급했는데, 저희가 처음에는 최대 15강좌를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벌써 20여 개 강좌가 논의되고 있어요. 많은 교수의 참여 덕분이죠.

이미 학교와 교수진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남은 건 학생들이겠군요. ‘책 읽는 한양’의 주체인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을 전해주세요.


: 책을 읽는다는 건 고양된 인간관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난 누구인가’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게 책이에요. ‘이걸 읽으면 인정받는다’, ‘점수가 잘 나온다’ 이런 접근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가까이했으면 합니다.
: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자신의 지적 결핍에 정직하라는 겁니다. 지적 결핍을 느끼면 책을 읽게 되어 있어요. 문제는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죠.
: 아니면 느낄 여유가 없거나.
: 사람은 누구나 지적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적 빈곤을 디지털 매체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죠. 모르는 게 있으면 남이 정리해놓은 자료를 금세 찾을 수 있는 환경 속에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만든 게 아니잖아요. 책을 읽고 생각하면 그것을 나만의 지적 자산으로 만들 수 있어요.
: 비유적으로 말하면, 배가 고픈데 당장 근처에 있는 건 과자봉지에요. 봉지를 ‘슥’ 뜯어서 일단 허기를 달래는 거죠. 밥을 먹어야 하는데.

 

      
 

   
 
   
 

 

 

 

 

 

 

 

 

 

 

: 그렇게 치면 책은 현미밥이죠(웃음). 인스턴트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따끈따끈한 쌀밥 먹이는 게 바로 독서 인증제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좀 더 나아가서 현미밥 퍼주는 게 고전독서 강좌고.

: 이 교수 말에 첨언을 하자면, 지적 결핍을 느끼는 것, 정말 중요해요.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면 배움의 동기가 안 생겨요. 지식인으로서의 자세가 아니죠. 우리는 적어도 뭘 모르는지 알게 해주고 싶어요. 소크라테스식으로 말하면 ‘무지의 지(소크라테스가 그의 문답법에서 쓴 말. 그에 의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아는 것 자체가 진실한 앎을 얻는 근원이다)’라는 거죠. 많은 젊은이가 찰나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니 거기에 매몰되어서 자기의 지적 결핍을 염두에 둘 겨를이 없어져요. 거기서부터 헤어나게 하는 게 우리 운동의 핵심일 수도 있어요.
: 이렇게 인터뷰할 때마다 무서워요. 말해놓고 잘 해야 하는데(웃음)…. 저는 일단 학생들이 부담을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고전에 대해 강의한다고 해서, 강사가 고전에 대한 깊고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전달, 주입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함께 배운다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해 주세요.
엄, 이 : 그런데 부담을 너무 안 가져도. 또….(웃음)
: 실은 이렇게 말해놓고 강의 시작되면 강의실 문 잠그고, 스파르타식으로 공부시키는 거죠. 농담이고요. 결론은 책의 재미를 같이 찾아내고 싶어요. 우리를 포함한 교수진들도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부담은 줄이고 관심은 키워 책에 집중하게 할까 연구하고 고민하고 있으니까, 우리와 뜻을 같이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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