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인연’을 주제로 펼쳐진 예술적 교감의 장
세대를 잇는 작품들, 전시를 통해 되살아난 청춘과 추억
“서예는 생각과 감정을 붓끝에 담아내는 치유의 예술”
한양서예회와 묵향회의 100회 기념 합동 전시회가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한양대 동문회관 4층 로비에서 열렸다.
한양서예회는 서예, 캘리그래피, 동양화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중앙동아리로, 1972년에 창설됐다. 한양서예회의 졸업생들로 구성된 단체 '묵향회'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학번까지 약 180여 명의 동문들이 가입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전공과 세대를 초월한 예술적 교류
'시간과 인연'을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한양서예회의 작품 22점, 묵향회의 작품 46점, 찬조작품 7점이 전시되며 예술적 울림을 전했다.
전시 참가자에는 80학번부터 25학번까지 다양한 세대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포함됐다. 인문계열은 물론, 데이터사이언스학부, 신소재공학과, 기계공학부 등 이공계열 전공자들도 함께해 전공의 경계를 넘는 참여가 돋보였다. 졸업생들은 재학 시절 완성했거나 과거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다시 꺼내들며, 당시의 열정과 추억을 되새겼다.
한양서예회 회장 김로아(국제학부 4) 씨는 "광주, 핀란드, 미국 시애틀 등 먼 지역에서도 작품을 보내주신 선배님들이 계셨다"며 "활동이 종료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작품을 통해 마음을 전해주시는 선배님들의 열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묵향회 회장 이지영(식품영양학과 89) 씨는 "합동 전시회를 준비하며 약 30, 40년 전 쏟았던 열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며 "요즘 젊은 학생들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을 선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분하게 붓을 들고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한양서예회 학생들을 보며 진한 감동을 느꼈다"고 전했다.
작품 속에 담긴 청춘의 흔적
이 씨는 정지용 시인의 시 <별똥>을 서예로 표현했다. 그는 "당시에는 작품의 주제를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한 획 한 획에 집중하며 서예를 완성하는 데 의미를 뒀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한 작품은 젊은 날의 열정과 마음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미(美)의 영원불멸'을 주제로 한 <찬미(讚美)>라는 모던 커시브(Modern Cursive) 작품을 선보였다. 모던 커시브는 '현대적 흘림체'를 뜻하며, 전통적인 고딕체나 정형화된 캘리그래피보다 자유롭고 부드럽게 글자가 이어지는 손글씨 방식이다. 그는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이전 선배님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며 "그런 마음들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 깊어 해당 작품을 작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작품의 중앙에는 플라톤의 <향연>과 호메로스의 아프로디테 찬가에서 발췌한 문구가 담겼고, 테두리에는 김 씨에게 영감을 주는 다양한 공예품들과 꽃이 펜화로 정성스럽게 그려져 있다. 김 씨는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아온 우리가 예술을 통해 한자리에 모인 지금, 이 전시가 또 하나의 특별한 인연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기억을 엮은 '하얀 발자국'과 추억의 사진전
특별 부대 전시로는 추억의 사진전과 더불어 한양서예회의 상징적인 기록물인 '하얀 발자국' 원본 전시가 함께 마련됐다.
'하얀 발자국'은 휴대폰이나 SNS가 없던 시절, 동아리원들이 동아리방에 비치된 공책에 그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기록하던 일종의 날적이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한양서예회만의 독특한 문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십 년간 축적된 글귀들을 제본해 공개했으며, 전시장을 찾은 동문들은 대학 시절 자신이 썼던 손글씨와 문장을 다시 마주하며 추억을 회상했다.
함께 전시된 사진들은 과거 동아리 활동의 현장감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며, 많은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디지털 시대 속, 서예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김 씨는 매 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서예가 주는 '고요함'과 '집중'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자극적인 콘텐츠와 도파민을 유발하는 요소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붓과 먹에만 집중하는 서예는 일종의 명상이자 치유의 시간이다"며 서예가 현대인에게 '테라피'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양서예회는 동양화와 캘리그래피처럼 현대적인 표현 방식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김 씨는 "정진수 선생님의 지도 아래 서예의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활용함으로써 현대 세대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한다"며 "이런 시도 속에서도 서예의 정통성과 깊이를 지켜나가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서예의 다른 매력으로 '정화'의 경험을 들었다. 그는 "서예는 불필요한 생각과 걱정거리를 끌어내 붓끝에서 떨궈내는 예술이다"며 "몸과 마음을 비워냄으로써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의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붓으로 맺어진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처럼 앞으로도 재학생들이 역사와 전통의 끈을 놓지 않고, 한양서예회의 명맥을 계속 이어나가기를 바란다"고 마지막 바람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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