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가는 믿음으로 패션 시장을 넘나들다

‘로메오 산타마리아’라는 브랜드를 아는지. 1947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명품 가죽 브랜드다. 영국 다이애나 전 황태자비나 할리우드 배우 샤론 스톤과 톰 크루즈가 브랜드의 단골손님이다. 이 회사의 주인이 지난해 7월 바뀌었다. 베스띠벨리 BESTIBELLI, 씨 SI, 비키 VIKI, 지이크 SIEG로 유명한 토종 한국 기업, 신원의 박성철 회장이다.

 

한양대 행정학과를 졸업한 박성철(73) 회장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언론계였다. 그는 산업경제신문사 現 <헤럴드 경제>) 섬유 담당 기자로 일하며 섬유업에 눈을 떴다. 그 경험을 토대로 1971년 의류 공장을 차려 하청을 받아 물량을 납품했다. 이후 1973년 무역업에 등록한 것이 ‘신원’의 출발이었다. 사업은 그야말로 험난한 여정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에는 미국, 유럽의 거대 시장에 수출량을 제한하는 쿼터(할당)제가 있었다. 실적이 없어 쿼트를 받지 못했고, 결국 쿼터제가 없는 면이나 마같은 자연산 섬유로 눈을 돌려 미국에서 30만 장이라는 물량을 따냈다. 당시 국내 자연산 원단이 없어 일본에서 마 51퍼센트, 아크릴 49퍼센트 조건으로 원단을 주문 수입해 30만 장을 생산했다. 그러나 검품 과정에서 원단이 마 49퍼센트, 아크릴 51퍼센트라는 점이 드러나 미국에서 퇴짜를 맞게된 것. 회사가 파산할 지경에 이르러 일본 바이어를 찾아갔지만 “물건을 확인하지 않은 신원의 책임” 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박 회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일본 전역을 두 바퀴나 돌아 물건을 거의 팔았다. 이때부터 그는 ‘사업은 생명’이라는 생각으로 임했고, 양심에 반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빈손으로 시작한 사업, 큰 반향을 일으키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스웨터를 판 일은 전설 같은 일화다. 앞서 언급했듯 쿼터제에 판로가 막히자 그는 중동을 노렸다. 중동에 대해서는 사막 국가, 찌는 더위만 연상하지만 실상 밤에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지역도 많다. 박 회장은 사우디 왕실을 설득해 군용 스웨터를 판매했다. 빈손으로 시작해 한걸음 한걸음 시장을 개척하다 보니 60개국에 거래처가 생겼다. 유명 브랜드 업체에 납품하면서 자연스레 패션 사업을 배웠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개척한 것은 1990년. 바로 여성복 브랜드 ‘베스띠벨리’와 ‘씨’가 첫 작품이다. 이탈리아어로 ‘가장 아름답다’는 뜻의 베스띠벨리는 당시 여성의사회 진출과 함께 ‘커리어 우먼이 입는 옷’이란 인식을 심어주며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이탈리아어로 ‘yes’라는 뜻의 씨는 대학생과 젊은 여성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성복이 인기를 끈 이후에는 ‘지이크’라는 브랜드로 남성복에 도전했다. 지금은 대세가 됐지만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남성 정장은 연예인이나 소화할 수 있는 옷이라는 생각에 선뜻 사지 못했다. 그러나 박회장은 시장의 트렌드를 앞서 선점했고 이 브랜드는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는 효자 브랜드로 성장했다.

 

   
▲ 신원 그룹 박성철 회장(행정학과·73)

 
또 한 번의 위기, 초심으로 돌아가다

 

사업이 한창 잘되던 1990년대 후반 또 한 번의 위기를 맞는다. 패션이라는 주력 사업과 관계없는 전기·전자 사업에 뛰어든 탓이다. 한때 신원은 계열사만 17개, 연 매출 2조 원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외화 차입이 많았던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서 신원은 워크아웃 처지에 놓였다. 그는 섬유와 패션을 제외한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독하게 체질을 개선해 2003년 위기를 탈출했다. 대기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떵떵거리기도 했고, 망할 뻔도 해봤던 박 회장은 창업 40주년을 맞아 초심을 떠올렸다. 첫째, 사명인 신원信元의 정신을 되새겼다. 신원의 뜻은 으뜸가는 믿음, 즉 최고의 믿음이다. 고객과 사회에 믿음을 심어주는 청지기가 되겠다는 사명이었다. 개성공단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신원은 개성공단에서 가장 큰 공장을 운영한다. 총 18개 라인으로 북측 근로자 1400명이 하루 평균 5000벌, 월평균 10만 벌의 의류를 생산한다. 그는 개성공단의 직원과 사내 직원에게 신뢰를 주는 경영을 하겠다는 뜻을 펼치고자 한다. 다른 하나의 초심은 패션이라는 전문 분야에만 몰입해 세계 시장에서 이름을 날리는 것이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를 인수한 것도 그 같은 전략에서다. 지난해 말 <매경이코노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재정 위기를 맞는 유럽에서는 명품 브랜드 매물이 많습니다. 도시형 아웃도어, 스포츠웨어, 폴로같은 트래디셔널 캐주얼은 신원이 보강해 키워야 합니다. 또 남들은 중국 경기가 침체된다고 하지만 패션은 더 클 것이라고 봐요. 올해 중국에 1000개 이상의 매장을 열고 1조 원 매출을 달성하겠습니다”라며 국내 패션을 뛰어넘어 세계 패션 시장에까지 진출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꼭 40년이 되는 신원의 오늘, ‘미래 40년’이 더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신원 그룹 박성철 회장

 

1940 전남 신안
1962 목포고 졸업
1964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1970 산업경제신문사(現<헤럴드경제>) 기자
1973 신원통상 창업
1981 한국무역협회 이사
2012 現 명품창출포럼 회장 / 現 신원 회장

 

 

글 명순영(<매경이코노미> 기자)|에디터 양효선|일러스트레이터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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