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4일 자 「“‘신원’ 이름처럼 ‘믿음 경영’ 했더니… 하나님이 우뚝 세워주셨죠”」기사
12월 14일 자 <국민일보>는 신원 회장 박성철 동문(행정학과)과 반세기 동안 기업을 이끌어온 소회와 하나님을 향한 굳건한 믿음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신원(信元)은 1973년 의류 수출을 중심으로 시작해 90년 국내시장에 진출, 유행에 민감한 젊은층을 사로잡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박 동문은 반세기 동안 기업을 이끌어온 소회를 “오직 하나님께 감사할 일밖에는 없다”며 “50년이라고 하는데 사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고 밝혔다. 그는 “만약 다시 5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겠냐고 한다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며 “그래도 실 하나하나가 엮어져서 예쁜 옷이 만들어지듯이 모든 직원들과 협력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박 동문은 그의 자수성가형 삶에 대해 “전남 신안군 작은 섬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동냥을 시작하며 집을 나왔다”며 “고아원에서도 생활했었는데 공부를 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중앙국립감화원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소년원 같은 곳으로 갈 곳 없는 부랑아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그곳 선생님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고 정규 학업을 거쳐 한양대에 입학했다”며 “학비 마련을 위해 교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기자가 됐고 이후 눈여겨보던 섬유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박 동문은 해외에서 점차 법인 공장을 늘려가던 중에 공장마다 교회를 세운 것에 대해 “일만 하는 다른 회사보다 생산량이 더 늘었다”며 “예배를 드리면서 직원들이 내가 다니는 회사에 대한 애사심도 더 생기고 하나님 앞에 양심적으로 일을 하니까 훨씬 효율이 좋다”고 했다. 그는 “사회주의 국가나 이슬람 국가, 특히 북한 개성공단에 교회를 세웠을 때도 핍박과 반대가 있었다”며 “하지만 결국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대사회적 섬김을 열심히 한 덕에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박 동문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어떤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드렸다”며 “2001년부터 이익이 나기 시작하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간 지 5년 만인 2003년에 워크아웃 조기 졸업이라는 쾌거를 거뒀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박 동문은 100년을 향한 신원의 청사진과 크리스천으로서 향후 비전에 대해 “앞으로 한국 섬유업은 기술 디자인 글로벌 파워 마케팅에 주력하면서 아프리카와 러시아 같은 새 시장을 개척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신원은 국내 패션업체 가운데 드물게 수출과 내수를 동시에 가동하고 있고, 앞으로도 두 시장을 상호보완하며 신원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또한 “아프리카 대륙에 하나님을 전하는 일꾼들을 길러내 병마에 시달리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며 “우물을 통해 깨끗하고 시원한 생수를 마시면서 그들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하늘나라의 생수를 깨닫게 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망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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