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시대 연구의 대가 사학과 임계순 교수

 대륙이 부상하고 있다. 지난 달 28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0조 위앤(약 1조 2천억 달러)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세계적 생산기지로서의 위상이 날로 상승되면서 이제 중국은 세계 제 6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지난 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투자 대상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연일 다국적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에서도 자본과 경제발전 경험을 받아들이기에 열중하던 중국이 이제는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경쟁을 추구하고 있다. 기회의 땅이 되리라 꿈꿔오던 중국이 어쩌면 가장 두려운 경쟁국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이러한 대륙을 이기는 가장 최선의 길은 '그들을 먼저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학과 임계순 교수의 말이다.

 

 대륙을 알아야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용이 비상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상하는 용의 생명선을 알아내서 그 생명선을 부여잡고 함께 비상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만약 잘못 알고 용의 꼬리를 잡는다면 우리는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전부터 많은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에게 중국의 급성장을 예고하고 우리의 대처방안을 부르짖던 이가 있다.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앞선 예견은 경제학자도, 정치학자도 아닌 사학자의 입에서 나왔다. 그가 바로 임계순 교수다. 평생을 중국 역사 연구에 받쳐 온 임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고의 '중국통'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중국 역사 연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본 임 교수는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라는 역사의 교훈을 온 몸으로 증명한 셈이다. 그가 바라본 중국 급성장 배경은 18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의 발전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중국은 1860년 이후 꾸준히 근대화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당시 중국 연안지역은 서구열강에 의해 개발되고 있었고 특히 상해는 그러한 힘에 의해 1930년대에 이미 세계 제7위의 대도시로 발달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1949년부터 1978년까지의 공산혁명을 거친 전 국민들이 가난에 지쳐버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인들은 '먼저 잘살고 보자'라는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천안문 사태를 거치면서도 민주화는 차치하고 경제에만 매달리게 된 것이죠."

 

 대중국 교육부 파견 '1호' 교수

 

 임 교수는 최근 중국과 미국간에 조성되는 우호적인 국제관계가 조만간 새로운 세계경제의 틀을 형성할 것이라 말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서 미국의 생산기지가 될 때 현재 대미수출 의존도가 심각한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이라는 추측 역시 매우 설득력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도약하는 중국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해서 임 교수는 중국의 '생명줄'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해낼 수 없는 분야,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그런 분야의 사업과 서비스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을 극복하고 대륙을 제대로 이해하는 작업이라고.


 "중국에는 우리나라 인구 규모에 달하는 상류층이 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인식으로 그들을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많은 중국인을 만나면서 제가 느낀 점은 그들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보다 더욱 현대화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보면 겉모습만 보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다릅니다. 늘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 대해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또 권위주의가 팽배한 우리사회와 달리 평등에 대한 인식이 공산화 혁명을 통해 사회전체에 만연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매사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아직 중국과 우리나라간에 정식수교가 없었던 1991년, 임 교수는 교육부 제 1호 파견교수로 북경대학에 진출한다. 그녀는 1991년 당시 수교가 없던 중국에서 한국인으로 지내야 했던 일상이 경계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것이었노라 고백한다. '한국인은 모두 부유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던 중국인들에게 몇몇 한국인들이 '변'을 당하는 사례를 직접 목격하면서 임 교수가 택한 생존전략은 '동질감 형성'이었다. 그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이 말하고, 생각하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에 중국인들은 결국 마음을 열었다. 그녀에게는 중국인 양부모도 생겼다. 중국 공략을 꿈꾸는 많은 기업들에게 임 교수는 제안하는 첫 번째 노하우 역시 '그들의 마인드로 사고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중국에 가서 사업을 하려면 먼저 중국인이 되야 합니다. 물론 중국에 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관련 연구들이 많이 진척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 중국의 표피적 모습만을 알고 있습니다. 광활한 대륙 중국은 지역마다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또 다양한 역사적 사건에 의해 세대마다 가치관도 매우 다릅니다. 이 차이들을 알기 위해서 중국 역사를 공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역사 연구를 통해 '대륙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파악한다면 사업적 성공도 보장될 것입니다."

 

   
 

 청시대 연구의 바이블 '청사(淸史)'


 임 교수는 중국역사 중에서도 청대사(淸代史) 부문의 손꼽히는 권위자다. 그녀가 저술한 '청조팔기주방흥쇠사'는 세계의 저명한 역사학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호평을 받았다. 이 책은 중국에서 재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저서로 인해 삼련서적의 편집인은 그 해 '우수편집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중국에 대한 임 교수의 연구는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지난 1994년 출판한 『한국인의 짝사랑, 중국』은 당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대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잘 대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2000년에 처음 출판된 '청사'는 청나라 흥기에서부터 청나라 몰락까지를 한 권에 담고 있어요. 중국사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이 대개 아편전쟁 이후의 중국 근·현대 연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혹 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청나라의 부분 부분에 치중한 역사를 연구하죠. 개인적으로 박사논문으로 청의 '팔기주방'을 쓰면서 청의 전기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 과정에서 청나라 전체의 역사를 써보자는 자신감이 생겼죠."

 

 중국 청시대 전체를 균형있게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청조의 변방정책 및 개혁 등 심도깊게 추적한 '청사(淸史)'는 200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현재 북경대학에 의해 중국어로 번역중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제가 중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우리 문화의 대부분이 대륙에서 건너왔습니다. 그렇다고 볼 때 그 대륙으로부터 어떤 문화가 우리에게 와서 그것이 어떻게 소화되고 어떤 형태로 변화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과정을 통해서만 대륙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점 속에는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문화의 독특한 정체성이 발견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점차 획일화되어 가는 세계에서 우리의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다. 승리를 위해서는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는 이 말은 어쩐지 임 교수의 학문적 신념과 많이 닮아있는 듯 하다. 그녀는 우리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만을 강조하는 '우물안 개구리'식의 역사 연구는 지양해야 하며, 대륙진출을 위해서는 그들의 시장만을 살펴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시간이 흘러 정년 퇴직을 하고 나면 우리나라의 역사와 중국의 역사를 연결해 새로운 역사서를 쓰고 싶다는 그녀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연구와 해야할 공부가 남아있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노 교수 앞에서 문득 나태한 젊음이 부끄러워졌다.

 

 학력 및 약력

   
 
 임 교수는 1967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사 문학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1981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기 전인 1991년부터 1992년까지 북경대학 역사학과에서 한국 교육부의 파견교수로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하남성 낙양대학에 출강한 경력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경제연구원장을 역임했고 저소득층 맹인을 위한 사회사업가로도 많은 활동을 했다. 대표 저서로 『청조팔기주방흥쇠사』, 『한국인의 짝사랑, 중국』, 『중국의 여의주, 홍콩』, 『淸史, 만주족이 통치한 중국』, 『중국인이 바라본 韓國』등이 있고 역서로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등이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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