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진짜 '멋쟁이'를 찾아라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선수들은 한일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두 겹으로 된 유니폼을 입었다. 나이키가 제작한 이 유니폼은 1998년 프랑스대회 때의 한 겹 유니폼(240그램)보다 40-50그램이나 가벼운 것이었다. 헐렁한 겉감은 선수들이 격렬하게 뛰는 동작에 따라 펄럭이며 안감과 피부 위로 풀무처럼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면 안감에 배어 있는 땀은 겉감이 잔뜩 불어넣은 공기를 타고 목과 겨드랑이 쪽으로 빠져나갔다. 안감은 머리카락 굵기의 50분의 1에 불과한 극세사로 제작된 것이었다. 그들의 유니폼은 기능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대 의류과학의 결정체였다.

 

 옷은 날개 아닌 '제2의 피부'

 

   
 

 "옷이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날개'와도 같다는 통념은 이미 오래된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옷의 기능성에 관한 겁니다. 특정의 업무와 활동을 위해서 별도로 고안되는 특수 작업복에 관한 거지요. 거기에는 패턴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모두 유기적으로 포함됩니다. 최근에는 특히 소재에 관한 관심이 더욱 중요해졌어요. 멋도 좋고, 모양도 좋아야겠지만 무엇보다 옷은 입어서 편안해야 한다는 거죠."

 

 서울캠퍼스 생활과학부 서미아 교수는 의복구성학과 서양복식사를 전공한 의류학자다. 의류학하면 대개가 '앙드레 김'을 떠올리며 디자이너를 생각하기 쉽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 의복에 대한 수요와 요구를 디자이너가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장 노동자의 작업복에서부터 스포츠 선수들의 유니폼에 이르기까지 의복은 이제 단순한 '가리기'와 보여주기'를 뛰어넘어 극도의 '효율성'을 요구받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됐다. 옷은 '제2의 피부와도 같은 것'이라 단언하는 서 교수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옷이 아무리 멋있다 해도 편안하지 않으면 잘 입지 않습니다. 내가 '없어서 못 입는게 아니라 편해서 이것을 입는다'하는 거죠. 물론 소비자가 옷을 처음 봤을 때 무엇이 제일 끌리는가 하면 색깔입니다. 그리고 디자인이죠. 그러나 결정적으로 소비자들은 옷을 입어보고 자신의 몸에 딱 맞아야 구매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체형이나 지수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까닭이죠."

 

   
 

 서 교수의 말처럼 그녀가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소비자의 체형과 특수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을 위한 기능성 의복에 관한 연구다. 현대 의류산업이 맞춤복보다는 기성복의 대량 생산 추세로 나아감에 따라 대중의 '사이즈'를 파악하는 것은 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필수 요건이 되었고,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이제 아무 옷이나 입고 근무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의류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재고 문제입니다. 정상적으로 팔리는 것이 그 시즌에 생산된 물량의 30퍼센트에 지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의복의 판매가가 원가의 4배에 달하는 이유도 바로 재고에 대한 보상을 사전에 계산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재고의 원인 중의 하나가 본인의 체형과 안 맞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리고 산업현장에서의 기능복에 대한 연구도 상당 수준 진전이 있지만 문제는 경영자의 판단입니다. 실용화에 있어서 소위 '코스트'가 안 맞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굶고 살래? 벗고 살래?'

 

 현재 서울캠퍼스 생활과학부는 의류학과 식품영양학 그리고 실내환경디자인 등 3가지의 세부 전공으로 나뉜다. 최근 인테리어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면서 실내환경디자인을 택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증가했지만, 지금도 의류학 전공은 이른바 사람이 '없어서' 취업을 못 시키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 교수가 소개하는 생활과학부에 전해오는 오래된 농담 하나. "식품영양학 전공자들이 '안 먹고 살 수 있냐'고 우길 때마다 이쪽에서는 '발가벗고 살래?'라고 응수하지요. 모두 실용적인 학문으로 사회적 수요가 넉넉한, 즐거운 농담입니다."

 

 현재 의류학 전공의 정원은 40명. 과거 30명에서 10명이 늘어난 규모다. 지금은 다중전공자도 많고 남학생들도 적지 않아 그 인기를 쉽게 짐작케 한다. 특히 졸업을 앞둔 의류학 전공자들이 가을마다 선보이는 '졸업작품전'은 이미 캠퍼스의 유명한 '볼거리'로 명성이 나 있다. 유명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무대와 행사의 규모, 모델, 그리고 작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한양의 졸업작품전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결코 아마추어답지 않다는 평가다.

 

   
 

 "학교에서 주로 가르치는 것은 기성복 생산을 위한 것들이지만 학부 강의 중에 '창작 의상'이 있어요. 졸업작품을 하기 위한 기초 디자인을 하는 과정인데 학생들이 상상 속에서 그렸던 옷들을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그림으로 구현하고, 다시 패턴을 뜨고 해서 실제 제작을 하게 됩니다. 옷을 실제로 제작해보지 않으면 그림하고 옷이 동떨어져요. 옛날에는 디자이너를 뽑을 때 미대생들을 많이 뽑기도 했어요. 색감이 좋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옷의 정식 제작 과정을 다 아는 사람을 뽑지요. 졸업작품전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쯤 되면 업계에서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한양의 의류학도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사실 국내 최초로 의류학과를 설립하며 의류업계를 주도해 나갔던 것은 E대학을 비롯한 몇몇 학교였지만, 현재 국내 업계의 지형도는 새롭게 쓰여지는 형국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여성만 있는 교육 환경에서 배출된 인력들은 나름의 섬세함이 있지만, 반대로 거칠고 힘든 현장의 업무에 소극적일 때가 많아 어려움이 없지 않다고 토로한다. 의류회사 역시 여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거칠고 힘든 현장의 '밑바닥'부터 경험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섬세한 인력들은 이러한 직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할 때가 간혹 있다는 것. 따라서 쉽고 어려움을 가리지 않는 본교 학생들의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2의 아르마니, 제3의 고티에를 기른다

 

 서 교수는 현재 한국복식문화학회 회장직을 맡아 우리 복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창립으로부터 10여년의 역사를 지닌 복식문화학회는 우리 의복문화의 세계화와 함께 국내 의류 산업의 진흥을 위한 광범위한 연구와 기획들을 진행 중이다. 사실, 해외에 알려진 우리 복식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 전시된 한국의 복식 전통은 의외로 고증을 전혀 거치지 않은 상태일 때가 많고, 어떤 경로로 그 곳에 전시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해외 박물관들을 둘러보면 우리의 복식 전시가 전혀 고증이 되지 않은 채로, 매우 초라한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소재도 고증이 되어 있지 않고, 장신구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학회는 올바른 고증을 통한 우리 복식의 기증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도 하와이 이민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현지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지요. 또 현지 박물관에는 우리나라의 남녀 혼례복과 함께 과거 영부인이 입던 한복을 기증하기도 했어요. 올해 안에 뉴욕에서 '한국의 미'를 주제로 국제의상전시회를 다시 개최할 예정에 있기도 해요."

 

 서 교수는 복식문화학회가 우리의 전통 의상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넓히는 사업뿐만 아니라 현대 의류산업의 선두주자로서 한국 의류학의 수준을 다시금 끌어올리는 역할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라 당부한다. 특히 저임금을 무기로 단가를 낮춰 중국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녀가 말하는 현대 의류산업의 키워드는 바로 '브랜드'. 유명 디자이너를 육성해서 브랜드 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의 여부가 향후 의류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

 

 "유명 디자이너를 육성해서 브랜드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길 밖에 없어요. 그래서 교수들은 학생들이 지닌 소질과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격려해야 합니다. 2학년 지도교수를 맡고 있을 때, 한 학생이 휴학을 해야겠다고 상담을 해 온 적이 있어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보니 자신은 애초부터 소질이 없다는 거에요. 앞으로 1년만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다시 얘기하자 하면서 다독거려 보냈죠. 나중에 졸업할 때, 그 학생이 총장상을 받았어요. 제2의 아르마니, 제3의 고티에가 이곳에서 나올 수 있어요."

 

 학력 및 약력

   
 
 한국생활과학연구소장 서미아 교수는 1970년 이화여대에서 이학사를, 1973년 동대학원에서 이학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1988년 중앙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복구성학과 서양복식사를 주 연구분야로 두고 있는 서 교수는 한국의류학회 및 복식학회 편집위원, 이사, 부회장을 거쳐 지난 4월부터 복식문화학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내 50여편, 국외 3편의 논문이 있으며 대한가정학회, 아시아 복식학회 회원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저작권자 © 뉴스H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