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대학 기계정보경영공학부 김정룡 교수
세계적인 인간공학자 W. E. 우드슨은 인간공학에 대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인간의 감각에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인간의 조작을 위한 제어, 인간을 위한 기계의 설계 등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학문'이라 정의한다. 이른바 에르고노믹스(ergonomics)라고도 불리는 인간공학은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를 일체(一體)라고 생각하여 '인간-기계계'라고 하고, 이 계(系) 속에서 인간과 기계와의 조화와 합리성을 발견해 가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인간공학은 '기술중심주의' 또는 '기계만능주의'에 봉사하는 학문으로 종종 오인되기도 한다. '붕어빵이 붕어보다 빵에 가까운 것'처럼 인간공학 역시 인간보다 공학적 사고에 중심을 둔 학문이라는 오해다. 이 같은 인식에 대해 안산캠퍼스 기계정보경영공학부 김정룡 교수의 생각은 단호하다. 인간공학의 무게중심은 단연 '인간'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공학의 무게중심 '인간이냐, 기술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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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산업계의 가장 큰 관심은 효율성에 기반한 생산의 규모 증식에 있었다. 컨베어벨트를 비롯해 생산라인의 기계화를 범세계적으로 확산시킨 포드주의는 인간을, 생산을 위한 기계적 수단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바로 현대 생산의 기계화, 자동화의 물결이 전락시킨 비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었다.
"나는 학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를 마치고 기계와 인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인간공학'이라는 학문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학부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났던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인간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은 단 두 명 밖에 계시지 않았지요. 유학 시절, 나의 주된 관심은 과연 인간을 위한 학문이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작업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인간공학'이 참된 의미를 구현한 학문보다는 상업적인 브랜도로서 보다 넓은 쓰임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휴먼(human)'의 접두어를 붙여 회자되는 수많은 광고 카피나, 기업들의 캐치프레이즈들은 이러한 상황은 잘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상업적 구호가 횡행하는 까닭이 결국 '인간공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인간공학'은 진정한 의미가 홍보되기 전에 이미 상업적인 목적으로 먼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이 지금보다 더욱 향상되어 간다면, 사람들은 진정한 인간공학을 원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인간공학'을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공학자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학문적 쓰임을 찾아내 많은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공학의 첫 걸음 '사이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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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종 언론지상을 통해 우리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체격에 맞지 않는 책상과 걸상에 불편해 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10년 전과 지금의 영양상태가 다르고, 당연히 이에 따른 신체발육 정도가 변화하고 있지만, 제품을 설계하는 과정에는 여전히 오래된 자료들만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고자, 김 교수는 지난 2001년부터 한국인인체치수조사(Size Korea) 사업을 펼쳐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 한국인의 인체치수를 조사하는 사업이 전무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한국인인체치수조사는 이전의 방식과 달리 조사 대상자를 3차원으로 스캐닝 해, 그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합니다. 또한 이번 사업은 이전과는 달리 국제 ISO 기준에 입각해 전개됩니다. 한국인의 인체 치수를 현실에 맞게 표준화하는 이번 사업의 결과는 단지 자료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실제 기업의 생산 현장에서 실용적으로 구현되어 모든 상품의 경쟁력을 새롭게 제고해 나갈 것입니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지원하는 이번 사업은 2001년부터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4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1979년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의 치수를 알기 위한 '국민표준체위조사사업'이 약 5년에 걸쳐 전개된 바 있지만 그 성과가 실제 생산과정에서 구현되는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몸이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지를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자료의 표준화와 구체화가 성공한다면 이제 사람들은 옷을 구입하기 위해 굳이 매장에 나가 옷을 입어봐야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온라인 상에서도 나의 인체에 정확히 들어맞는 표준치수를 주문할 수 있게 되거든요. 이는 산업이 이전의 소량 주문 생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사이즈'를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은 인간공학을 위한 포석과도 같은 작업입니다."
디지털과 인간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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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는 김 교수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대한인간공학회와 국제인간공학회의 주최로 제15차 '2003 세계인간공학총회(IEA 2003 Congress)'가 개최됐다. 이는 3년마다 열리는 인간공학관련 최대 국제학술대회로, 아시아에서는 1982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이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약 1천 2백여 편의 논문이 발표된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공학(Ergonomics in Digital Age)'이었다.
"인간을 시스템으로 나타낸다면 아날로그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우리 생활주변의 많은 것들이 디지털 체계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과 인간의 조화를 위해 인간공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이번 대회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아날로그 인간과 디지털 환경의 조화, 이는 혁신을 거듭하는 기술에 인간을 적응시키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진화가 더딘 인간을 위해 기술이 어떻게 조응해야 하는가를 탐구하는 작업이지요."
해외 60여개국으로부터 약 8백여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 이번 학술대회는 국내에서 열린 학술대회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그러나 이 대회는 단지 학술정보의 교류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행사의 책임을 맡은 김 교수는 많은 외국인들이 운집한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이색 이벤트들을 준비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사물놀이를 비롯해 궁중무와 살풀이, 꽹과리 창작무 등을 선보이며 한국에 대한 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우리의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오프닝 행사에서는 중앙무대에서 매화치는 장면을 중계해 일필휘지(一筆 之)의 신비한 화법을 소개하기도 했죠.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3년 후 개최될 네덜란드 총회의 담당자들이 자신들은 우리만큼의 감동을 유발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한국을 떠났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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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에 있다
대내외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김 교수는 현재 안산캠퍼스 학생생활상담실장을 맡고 있다. 학생생활상담실은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을 청하고 싶은 학생이면 누구라도 교수 또는 상담전문가와의 대화를 위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김 교수는 상담실장으로 부임한 직후, 안산캠퍼스 숨은 가치들을 학생들과 함께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그러나 '인간을 위한 학문'에 천착하는 김 교수가 정작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상담실장 부임 첫 해, '안산캠퍼스의 좋은 점 열 가지 찾기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매우 놀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본관 뒤에는 항상 백로가 있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바다가 보인다', '대운동장의 밤은 늘 별로 가득 차 있다' 등 행사를 통해 '캠퍼스의 재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학생들은 캠퍼스의 숨은 가치들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죠. 그러나 제가 거둔 성과는 캠퍼스에 숨어있던 무수한 인재들의 재발견이었습니다."
학력 및 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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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노시태 사진기자 nst777@i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