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그나이트 한양(Ignite Hanyang)을 엿보다

'강연자와 청중의 경계가 사라지는 소통의 장'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힘은 표현력이며, 현대의 경영이나 관리는 커뮤니케이션에 좌우된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지식경영'을 강조했던 피터 드러커(Drucker)의 명언이다. 최근 강연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강연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TED'나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등 강연 프로그램도 나날이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대학에서도 강연 프로그램이 열렸다. '이그나이트 한양(Ignite Hanyang)'. 그 현장을 찾았다.

 

Idiot? Idea! 내 인생의 가장 바보 같은 이야기

 

   


지난 28일, ERICA캠퍼스에서 '제1회 이그나이트 한양'이 열렸다. '이그나이트'는 06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해 현재 전 세계에서 열리는 행사다. 강연자는 20장의 슬라이드(PPT)를 15초의 간격으로 자동으로 넘어가도록 설정해 300초, 즉 5분동안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유명인, 성공한 사업가 등이 주를 이루는 'TED'와 달리 이그나이트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경험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한다. 강연자가 청중들에게 지식을 제공하는 기존의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강연자와 청중의 구분이 사라진다. 객석에 앉아 강연을 듣던 청중이 연사가 될 수 있다. 한 페이지 당 15초, 총 '5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만큼 스피치가 탄력 있어 청중의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도 이그나이트만의 장점이다.

 

행사가 열린 ERICA캠퍼스 학연산클러스터 4층 놀리지팩토리(Knowledge Factory)에는 연사와 청중으로 구성된 70여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채웠다. 소규모 파티형식으로 열린 이번 행사는 드레스코드를 '레드 포인트'로 지정했다. 학생들은 저마다 넥타이, 카디건, 모자 등으로 드레스코드를 표현했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내가 저질렀던 가장 Idiot한 일들, 그리고 가치 있는 Idea'. 자기 인생에서 가장 바보같다고 느꼈던 실수나 사건들이 자신에게 성장의 발판이 된 경험을 나누자는 의미에서다.

 

   


행사에서는 ERICA캠퍼스에 재학 중인 11명의 학생이 강연자로 나섰다. 첫 번째 강연자는 '성공은 실패다'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융희(국문대·한국언어문학 4) 씨다. 이 씨는 '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소설 창작이 꿈이었다는 그는 20살 무렵 8권의 책을 출판하며 꿈을 이뤘다. 돈과 명예를 얻었다. 모든 것에는 기회비용이 있듯 이 씨에게는 '대학 생활'이 없었다. 결국 평점 0.125, '올F'를 기록하며 아버지로부터 자퇴를 권유 받았다. "방황하는 시간 동안 대학생 타이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씨는 다시 수능에 응해 25살에 또 한 번 신입생이 됐다. 이 씨는 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게 같이 어우러져야 진정한 '삶'이라고 말했다. 이 씨의 가장 'Idiot'한 실수는 꿈만 보고 달렸다는 것. 학창시절을 글 쓰는 데에만 몰두하고, 성공했을 때 나머지 삶을 포기했다. "단순히 꿈만 이루는 것은 좋은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루고 싶은 일을 이루면서, 내가 잘 살아가는 것. 그게 삶이 아닐까요."

 

이후 나머지 10명의 발표가 이어졌다. 슬라이드마다 15초로 시간이 한정돼있기 때문에 종종 일어나는 실수도 이그나이트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풍경이다. 무대공포증이 있었다는 발표자 강우인(국문대·문화콘텐츠 1) 씨는 발표 도중 "그, 어머, 아!"를 연발해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강 씨는 고교시절 한 선생님으로부터 트라우마가 생겨 이를 이겨낸 이야기를 풀어냈다. "바보같이 트라우마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어요. 그냥 인정하면 되는데 말이죠. 2년의 시간을 견디니 상처를 흉터로 만드는 법과 흉터에 새살을 돋우는 법을 알게 됐어요."

 

발표자들은 저마다의 바보 같았던 경험에서 깨달은 가치를 공유했다. 같은 과 친구의 발표를 들으러 왔다는 차지현(국문대·일본언어문화 1) 씨는 "대학 생활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험을 공유한다는 용기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았던 정윤화(국문대·영미언어문화 1) 씨는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을 들을 수 있어 재미있었다"며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고, 소규모의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 돼 강연자와 청중의 거리가 좁아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학생들이 만든 소통의 장


이번 행사는 학생이 주축이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제1회 이그나이트 한양'을 기획한 학생들을 만났다. 허동준(언정대·홍보 2) 씨, 김소희(언정대·광고홍보 1) 씨, 이찬영(국문대·문화콘텐츠 3) 씨, 정예슬(국문대·일본언어문화 3) 씨, 박성균(국문대·일본언어문화 1) 씨다. 이들이 말하는 '이그나이트'에 대해 들어봤다.

 

   


'이그나이트'라는 강연 방식이 독특하다.


찬영: 5분, 짧잖아요. 짧으니 발표가 쉽고, 청중이 집중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발표라는 게 원래 정말 어렵잖아요. 발표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메시지를 정확히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했어요. 연사들도 청중으로 앉아 있다가 본인 순서가 되면 나와서 발표해요. 보통 강연은 일방적인 느낌인데, 이그나이트는 이렇게 서로 소통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죠.

 

성균: 저는 이 발표방식을 행사를 기획하면서 처음 접했어요. 15초마다 슬라이드가 자동으로 넘어가는게 신선하더라고요. 18분 동안 진행되는 테드(TED)보다 간단명료한 게 매력이죠.

 

예슬: 다른 분들은 긍정적인 반응이었는데, 전 오히려 걱정이 앞섰어요. 이그나이트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우리의 정확한 의도를 알고 참가하게 될까. 기존과 다른 형식의 강연인데 청중들도 연사의 메시지를 잘 전달받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이런 생각의 차이가 있어서 기획할 때는 오히려 더 좋았어요.

 

재미있는 스토리가 많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연사가 있나.

 

   


찬영: 초등학생 때 시를 적어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했다는 염철웅 씨가 귀여웠어요. 새내기라 정말 풋풋한데, 발표 내내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 느껴졌어요. 진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새내기라 발표를 잘 못한다는 건 편견인 것 같아요. 그 분처럼 진심을 담으면 사람들이 공감하고 웃어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균: 강연자가 꿈이라는 한영환 씨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꿈을 가진 후 첫 걸음이 우리 이그나이트였다는 게 굉장히 뜻 깊어요.

 

첫 회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예슬: 행사가 끝날 때쯤 설문조사를 했는데, 강연자나 청중이나 만족도가 높았어요. 첫 회 목표은 다음 회를 위한 자리를 탄탄히 잡는 것이었어요. 2회 때 오고 싶은 행사를 만들면 좋겠다고. 그 목표는 달성한 것 같아요.

 

성균: 기획도 중요하지만 '사후 관리'랄까요. 다음 회를 타깃으로 기존 참가자들 관리에 집중 할 생각이에요. 당분간은 촬영한 사진과 영상으로 홍보자료 제작에 몰입할 예정이에요. 연사들에게 '이그나이트 한양' ID카드도 발급하려고요. 일종의 멤버십이죠. 멤버십이 생기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금전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프라이드나 성과가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 생각해요. 발표 영상을 포트폴리오로 활용할 수 있게 도와드리려고요.

 

찬영: 행사 진행을 매뉴얼화(化)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기획부터 행사 당일 진행까지 매뉴얼을 만들어 놓으면 구성원이 바뀌더라도 잘 진행할 수 있잖아요. 이번에 기획한 저희 모두 언젠가는 졸업하잖아요. 누군가는 입대할 수도 있고요. 첫 기획단이 학교를 떠나도 이그나이트는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그나이트 한양'이라는 하나의 문화로 굳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조지윤 학생기자 ashleigh@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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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사진팀장 ssamstar@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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