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인의 여름 이야기(下)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기에 후회는 없어"
막바지에 이른 여름방학. 재충전의 기회지만, 방학임에도 밀린 학업이나 영어공부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는 청춘들이 많다. 이 시간 동안 용기 내 남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방학을 보낸 이들이 있다. 한양인의 여름 이야기 그 두 번째, 방학을 인턴과 대외활동으로 알차게 채웠던 지난 기사(관련기사 보기)에 이어 이번엔 여름방학을 반납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을 감행한 이들을 만났다.
꿈을 좇아 직접 발로 뛴 김용표(사회대∙미컴 3) 씨
스포츠산업학과를 복수전공하는 김 씨는 스포츠 마니아다. 고등학교 시절엔 축구부에서 활동하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키웠고, 축구관련 칼럼을 통해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입학했을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지금은 야구에 푹 빠져있다는 그는 '메이저리그 투어'로 이번 여름방학을 보냈다.
시작은 우연한 계기였다. 두산베어스 마케팅 부서에서 인턴을 했던 당시 친하게 지냈던 선배에게 메이저리그 선수 2명과의 인터뷰를 부탁 받아 미국 행을 결정했다. 처음엔 지원받은 150만원으로 3일간 의 인터뷰 일정이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우연히 저가항공을 발견해 경비를 줄일 수 있게 되자 자비를 보태 투어를 결심하게 됐다고. 1학기를 마치자마자 준비해 6월20일부터 7월28일까지 약 5주 가량 미국의 20개 주에 들러 총 18번의 경기를 관람하고 왔다. 그는 투어를 통해 경기의 '재미'뿐 아니라 새로 접한 사실도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메이저리그 경기장엔 프로모션 행사들도 다양하고 경기장 자체를 박물관처럼 꾸며놓아 볼거리들이 굉장히 많아요. 일찍 가면 선수들을 만나 사인 받을 기회도 있고, 유니폼, 기념품 등을 살 수 있는 팀 스토어를 백화점처럼 꾸며놓아 관광객들에게도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 있죠. 그리고 미국에는 한국처럼 응원단장이나 치어리더가 없더라 구요. 그래서 어떻게 응원을 할지 궁금했었는데, 한 열성 팬이 파도타기 응원을 주도해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팔에 힘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응원을 했죠.(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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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메이저리그 투어가 단순히 먹고 즐기는 여행은 아니었다. 여행 중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맛있는 음식과 여행지 사진들을 보고 친구들은 '부럽다'고들 했지만 사실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여행 중 지치고 힘들어서 후회했던 적도 있어요. 특히 총격전이 비일비재한 미국 땅에서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었죠." 실제 그가 인터뷰 차 메이저리그 선수 집에 있던 중 집 밖에서 총격전이 발생해 9명의 사상자가 생겼다고 했다. "첫 여행지가 가장 위험하다는 텍사스, 마이애미였어요. 여행 초반에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나중엔 알아서 대처하게 될 정도였죠." 또한 그는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이용하면서 많은 불편을 겪었다고 했다. "미국에는 그레이하운드, 메가버스, 볼트버스 이렇게 세 종류의 버스가 있는데, 현지 사람들은 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아요. 특히 역에 정차하는 그레이하운드버스를 자주 이용했는데, 이 버스는 빈민계층이나 밀입국한 사람들이 많이 타서 버스 안이 굉장히 지저분하고 냄새가 지독했어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코를 막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가야 했어요."
훗날 야구계나 스포츠 계에 종사하고 싶다는 그는 투어를 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찍은 만 장이 넘는 사진, 동영상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인터뷰를 했던 자료들을 바탕으로 전자책(e-book)을 만들 계획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혼자서 이런 여행을 기획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도움을 주고자 고안하게 됐어요. 그곳에서 저는 외국인이었지만, 현지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같은 팀을 응원하면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고 혼자 있으니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가 더 용이했죠. 저처럼 혼자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이번 메이저리그 투어는 그에게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여행'이었단다. 혼자 힘으로 먼 타국에서 고생하며 여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그는 다신 경험하고 싶지 않은 여행이자 다신 경험하지 못할 값진 여행이었다고. "그 동안 미국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직접 피부로 체험해보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을 접할 수 있었어요. 거리에 집 없는 사람들이 즐비하다든지, 치안이 나쁘다는 것, 이슈화 되지 않는 사건∙사고도 많죠. 그땐 힘들었지만 최소비용으로 고생하며 다닌 것이 오히려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요인이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법도 익혔고, 제가 좋아하는 야구를 그 사람들은 왜 좋아하는지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잊지 못할 여행이었죠.(웃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 배민호(사범대∙응용미술교육 2)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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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씨는 굉장히 정신 없는 한 학기를 보냈다고 했다. "제대 후 첫 학기라 그런지 적응이 잘 안돼서 친한 친구들과 수업을 듣기 보단 그림을 그리며 한 학기를 보냈어요." 순수미술(순수미의 구현을 위한 예술적 동기에 의하여 창조된 미술을 의미한다. 자율성과 독립성을 주장하며, 미술 자체 실재를 추구하고 목적하는 미술 지상주의적인 개념)에 관심이 많은 그는 늘 손에 노트와 연필이 준비돼 있다. 그는 같은 과 친구 2명과 습작을 하며 서로의 그림을 보다가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이 비슷한 걸 알게 돼 팀을 꾸렸다. 팀 명은 AIM(Art is mine). "저희 과의 분야가 다양해 마음 맞는 사람 찾기가 어려운데, 셋 다 순수미술을 바탕으로 융합된 작품을 그리고자 하는 방향이 같아 우연한 계기로 팀을 구성하게 됐어요."
그가 속한 AIM팀은 현재 홍대의 '나무네요' 카페에서 전시회를 개최 중이다. 플라워리스트인 카페사장의 호감을 반영해 플라워 패턴과 오렌지 색을 사용한 콘셉트를 바탕으로 카페 내부에 개인당 3~4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기간은 29일 까지. 카페 대여는 무료로 이뤄졌지만, 전시회 홍보겸 각자 모은 50만원으로 직접 그린 삽화를 넣은 스티커, 폰 케이스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방학에 뭔가 남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졸업 후에 팀 활동을 하기엔 여건이 좋지 않을 것 같아 학생일 때 이런 활동을 통해 도전적인 마음가짐도 키우고, 저희 이름을 좀 더 알리고 싶어서 기획하게 됐습니다." 전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전시작품을 그리는 등 밤낮을 바꿔가며 준비했다. "일을 하며 전시를 준비한 터라 작업에 아쉬움이 많이 남아요. 늦으면 새벽 5시까지도 그림을 그리긴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작품크기도 작고, 개수를 더 늘리지 못한 게 안타깝죠." 전시 2주째에 접어든 지금, 그는 첫날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각자 페이스북을 통해 지인들에게 홍보했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와줘서 뿌듯했어요. 부모님이 오셔서 응원을 해주시거나 몇 년 만에 보는 동창들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줘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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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에 찬 자신감으로 전시회를 기획했을 터. 하지만 그에게도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미래가 불확실하기도 하고 주변 시선이 좋지 않을 까봐 두렵기도 하죠. 그래도 팀원들끼리 '그냥 즐기자'라는 생각으로 전시에 임했어요. 언젠가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면 지금 한 활동들이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진로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했다는 그는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제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열고 싶어요."
극한 속에서 강인함을 키우는 한겨레(경영대∙파이낸스경영 1)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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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씨는 코오롱스포츠와 대한산악연맹이 주최하는 '한국청소년오지탐사대'에 선발돼 7월18일부터 8월9일까지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산맥(Karakoram; 대 히말라야 산맥의 일부분으로 파키스탄과 인도, 중국 국경지대의 고산 지대를 통칭)과 발토로 빙하(Baltoro Glacier; 인도와 파키스탄 북부, 카라코람 산계의 주맥에 있는 빙하)를 탐사하고 왔다. 1600명이 지원해 고등학생 10명과 대학생 40명을 선발하는 이 탐사대를 위해 3년간 준비했다는 한씨. 고등학교 시절에도 산을 타거나 절벽 오르는 것을 즐겼다는 그는 '한국청소년오지탐사대'에서 전액지원으로 해외에서 산행할 수 있다는 것에 끌려 도전했다고. "조건은 정말 좋지만 자격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평균 3년 정도 준비기간이 필요해요. 1학년 때부터 계획을 해서 체력준비를 할 겸 특공부대에 자원 입대했어요." 올해 4월 제대하자마자 1차 자기소개서 준비와 함께 2차 체력시험, 면접을 거쳐 마지막 관문인 2박 3일 간의 산악테스트를 모두 통과해 청소년오지탐사대에 합류했다. "체력시험은 체대입시만큼 까다로워요. 달리기 1600m를 5분40초 이내에 뛰어야 하고, 윗몸 일으키기는 1분에 73개 이상을 해야 하죠. 특전사, 해병대 출신들도 많이 지원하지만 체력테스트에서 떨어져 재수, 삼수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눈으로 덮인 드넓은 산맥, 거대한 빙하를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 그러나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그에게도 오지탐사는 그를 힘들게 하는 거대한 장애물임에 틀림없었다. "고산지대이다 보니 지독하게 추워요. 옷 6겹을 껴입어도 빙하 위에서 자기 때문에 몸을 덜덜 떨면서 자야 했고, 산소도 부족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어 전대원이 설사병에 걸리기도 했죠." 또한 산행 일정 동안 먹고 자는 것을 모두 텐트에서 해결하며 총 인원이 700~800킬로그램 남짓한 식량을 나눠지고 산행해야 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산행을 하다 보면 크레바스(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에 빠질 위험이 있는데, 이 때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교묘하게 눈으로 살짝 덮여 있어서 그냥 지나가다간 아래로 추락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산행 12일 차에 다른 대원이 빠졌었어요. 대원들 모두 줄 하나로 몸을 묶어 함께 산행을 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빠져도 모두 긴장하고 몸을 엎드려 고정시켜야 합니다. 이때 정말 '살아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무사히 살아 돌아온(?) 그는 여행 후 귀국하자마자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고 했다. "산행을 하는 동안 현지식사를 해요. 그곳에서의 식사는 거의 사냥의 개념이죠. 염소나 양을 잡아서 먹는데, 아무래도 산 속이다 보니 조리기구도 부족하고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음식을 먹은 게 화근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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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오지라고 해도 그에게만큼은 매력적인 장소임에 틀림 없다. 정말 위험했던 순간도, 죽음을 목격할 뻔한 순간도 겪었지만 그는 어느 분야든 기회가 된다면 모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산이 아닌 바다에 관심이 생겨 프로 요트선수를 꿈꾸고 있다고. "이번 산행을 통해 세상에 경험할 것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이 체험해보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어요."
후회는 없다, 그저 즐길 뿐
누군가에겐 후회가 남기도, 뿌듯함이 남기도 하는 방학기간. 어떻게 보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흔히 대학생의 방학이라고 하면 영어공부, 취업준비 하느라 바쁜 것이 다반사. 꼭 남들 다 하는 것을 똑같이 해야 방학을 '잘' 보낸 것일까. 대부분의 주변 친구들이 공부를 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김씨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위기감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걸 가지자'는 주의이기 때문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더 발전시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도움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3개의 전시가 더 남아있어 남은 방학을 작품에 몰두하기로 했다는 배씨는 불안한 생각은 들지만 절대 후회는 없다고 했다. "예전처럼 단순히 낙서를 하듯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고 작품에 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번 전시를 통해 그림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뿌듯했고, 제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인지 '나'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돼서 그걸로 만족합니다."
한씨 역시 오지탐사대를 준비하며 진로를 결정하게 된 케이스다. 그저 관심사였던 활동을 직접 경험하고 느껴보니 그에게 확신을 안겨줬다. "남들 신경은 안 써요. 각자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르니까 각자 가고 싶은 길을 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전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준비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부담을 느끼거나 후회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여름방학은 단순한 방학이 아닌 자신의 꿈을 위해 투자한 멋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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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화 학생기자 evol4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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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
권요진 사진기자 loadingma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