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건설 이근포 사장 (건축공학·70)

40년을 건설맨으로 살아온 이근포 사장은 한화건설을 시공능력평가 35위에서 9위로 끌어올린 주역이자, 최근 10조 원 규모에 달하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주목받은 인물이다. 숱한 건설 현장에서 건축물을 경험한 그에게 주거의 정의를 물었다. 간결하지만 농축된 단어 ‘정(情)’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에디터 박선영 | 글 이은아 | 사진 김지훈

 

완숙한 노장, 덕장의 리더십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건설을 거쳐 한화건설로, 40년을 건설사에 몸담 은 이근포 사장. 평생 건설 한길만을 걸어온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변화무쌍한 건설이 매우 매력적인 업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대학 진학 때만 해도 전공에 대한 뚜렷한 비전은 없었습니다. 미술, 특히 서예에 관심이 있었고 나중에 개인 사업을 하기 좋겠다는 판단에 건축공학과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입학해서 공부해보니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더군요. 저는 건축의 매력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집을 짓는 경우는 없잖아요? 설계, 기초공사, 마감, 장식 등 일하는 단계도 여러 가지고요. 하나하나의 과정은 어렵고 힘듭니다. 그러나 점점 형태를 갖춰가는 건물을 보면 누구라도 마음이 뿌듯해질 겁니다.”

 

이근포 사장은 2000년 대우건설에서 한화건설로 영입됐다. 자리를 옮긴 후 ‘꿈에그린’ 브랜드 론칭을 진두지휘했고 부사장과 대표이사에 올랐다. 한화건설은 그가 재직한 15년간 폭풍 성장을 이뤘다. 시공능력평가로 본다면 35위에서 9위로 껑충 뛰었다. 외적 규모도 커졌다. 직원 500명에 매출은 3000억 원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직원 2500명에 매출도 4조 원 가까이 된다. 최근에는 해외 건설 사상 최대 규모라는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 사업을 성공리에 추진 중이다.

 

한화건설의 도약을 이끈 이 사장의 리더십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임직원들에게 풍부한 건설 현장 경험과 전문성, 친화력을 바탕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덕장(德將)’ 리더십의 소유자로 통한다. 이 사장은 복도나 승강기에서 만난 직원들에게 허물없이 먼저 다가서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회사 발전을 위해서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 평소 소신이다. “건설업은 사람이 재산이고 경쟁력입니다. 회사 발전에 인사 관리가 기여하는 공이 큽니다. 신입 사원을 잘 뽑고 관리하는 일은 경력 사원에 비해 몇 배는 중요합니다. 제가 초기에 뽑은 신입 사원들이 현재 차장, 부장이 돼서 자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장은 부서 및 직원 간의 상호 협력, 양보와 배려가 중요하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경영자로서 부득이 직원들의 희생이 필요한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나 만약 리더가 편안히 자리에 앉아서 직원들의 희생만 강요한다면 따라올 조직원들은 없을 것입니다. 맡은 바 자기 임무에 충실하면서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모두에게 일하고 싶은 회사가 될 것입니다. 건설업은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지난 몇 년간 많이 위축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동 땅에서 오일 달러를 벌며 국가 경제의 기반을 건설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도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이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묵묵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선별하고 리더는 강한 자신감으로 이끌고 구성원 역시 자신감을 가지고 따른다면 건설업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건설업의 정상 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랜 꿈, 나를 담은 집

 

   
 

호텔, 아파트, 백화점, 플랜트 등 무수히 많은 국내외 건축물을 지은 이근포 사장에게 주거(住居)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는 ‘정(情)’이라는 간결하고도 힘 있는 한 단어로 집약한다. “사람들은 집이 좋다, 나쁘다, 편안하다, 우리 집이 최고다 등등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집이 정말 어떻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나와 내 가족 구성원이 집을 매 개로 한 관계에서 표출되는 느낌입니다. 사람을 자꾸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잖아요? 마찬가지로 식구끼리 따뜻한 집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모이고 새겨지면 정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됩니다.” 가령 고단한 하루 일과를 끝내고 가족과 저녁을 먹고 음악을 듣고, 화초에 물을 주고, 산책하는 가장의 삶은 집이라는 주거 공간에서 시작되고 조직화돼서 마음속에 아련한 무엇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어떤 집이 좋으냐, 어떤 집에서 살고 싶으냐는 물음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편리하게 잘 꾸민 집을 사람들이 무조건 부러워하진 않습니다. 주거는 취향의 문제니까요. 주거에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공간, 즉 자기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음악을 좋아한다면 음악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공간이,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감상하는 공간이 구비돼 있는지가 중요한 거죠. 집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잘 지었느냐 혹은 비싸냐는 사실 생각만큼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한화건설이 짓는 아파트 브랜드 ‘꿈에그린’에는 이근포 사장의 이런 생각이 녹아 있다. 주부와 아이들이 ‘꿈에도 그리는 내 집’ ‘자연 친화적인 꿈을 가질 수 있는 집’을 만들기 위해 이들의 선호와 생활양식을 세심하게 고심한다. “저는 직원들에게 이게 정말 베스트냐고 자주 물어봅니다. 화장실의 세면대와 양변기를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없는지를 자문해보라고 말합니다. 주방 조명은 어느정도 밝은 게 좋은지, 음악을 들으면서 밥 짓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지, 창문을 바라보며 요리하는 걸 주부들이 선호하는지 등등. 아파트 디자인은 보통 3~4년 주기로 바뀌기 때문에 그때마다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최선입니다.”

 

이근포 사장은 개인적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을 좋아한다. 아직은 가슴에만 품은 상상 속의 집이지만, 그가 그리는 조감도는 이렇다. 바람과 햇볕이 있고, 새소리가 들린다. 나무가 있고 정원도 있다. 그 속에서 그는 편안하게 음악을 듣고 화초를 가꾸고 산책도 한다. 이를 현실화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과 수고가 수반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그가 꿈꾸는 공간은 실현될 것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T.S.엘리엇이 집은 ‘한 사람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이야기했다. 사람의 주거 공간은 그의 삶의 모습을 닮는 그릇이므로.

 

이근포 사장 프로필

1951년 마산 출생
1974년 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
1976년 대우건설 입사
1995년 대우건설 건축본부 이사
2000년 한화건설 건축사업 본부장(상무)
2005년 한화건설 부사장
2006년 한양대 건설관리학 석사
2009년 한화건설 대표이사(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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