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문화대 일본언어문학과 윤상인 교수
일본문학 비평의 선구자, 윤상인(국제문화대·일본언어문화) 교수
"일본문화, 경계 아닌 우리 문화를 살찌우는 대상"
서울에서 동경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하지만 일본은 지구를 거꾸로 돌아서 가야할 만큼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의미에서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도 표현한다. 일제 강점기 36년이라는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지만 현재는 동반자적 관계를 모색하고 있기에 일본은 긍정과 부정의 이중적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유독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 복잡한 관점을 가진 우리. 이런 우리들의 모습이 변화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바로 국제문화대 윤상인(일본언어문화) 교수다. 일본문학을 전공한 윤 교수는 일본을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어찌됐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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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통해 바라본다
“이웃도 좋은 이웃과 나쁜 이웃이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이웃과 나쁜 이웃이 존재하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관계는 변하는 것이니까요”
사실 앞으로 일본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모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교류가 활발해 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 소설 ‘노르웨이 숲’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에서도 스타작가가 된지 오래이고, 일본 환타지 만화에 대해서는 애, 어른 가릴 것 없이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반대로 배용준과 보아(Boa)는 일본 가정의 문지방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작게는 일본 문학을 넓게는 일본 문화를 연구하는 윤 교수는 일본을 알려면 일본 문학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라고 충고한다. 당대 일본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일본 사회의 지향점이 어디인지는 문학을 통해 짐작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윤 교수의 주 연구대상은 근대 일본, 즉 명치유신 이후부터 1945년까지다.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두뇌한국21’ 연구 사업에서도 이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대 일본문학에 대한 비평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비교문학을 전공한 그에게 일본의 근대와 현대를 비교하는 일은 익숙해져 버린 일인 것이다. 그런 윤 교수는 근대 일본과 현대 일본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적 조류가 이미 주류가 되어버린 지금의 일본과 과거 군국주의의 일본과는 판이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근대 일본에는 민주적 요소가 도입이 됐지만 천황이 절대적 정치권력을 소유하고 있었기에 그리 자유롭진 못했습니다. 일정한 표현의 제약이 있었다는 뜻이죠. 문학에도 왜곡은 있었습니다. 근대 군국주의 체제 속의 시대상을 들여다보면 내셔널리즘적인 성격의 문학이 유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일본 문학은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오히려 내셔널리즘적인 틀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이후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무라카미 하루키,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사람들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보편성을 지향하는 문학, 탈일본적인 성향의 문학적 성격을 뜁니다. 북경에서, 함부르크에서, 뉴욕에서, 서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읽혀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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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 사회적 분위기는 다르다”
윤 교수는 이러한 일본 문학의 다양화와 보편화를 근거로 최근 전문가들이 염려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사회적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 한다. 윤 교수는 일본 문학의 주류로 포스트모던 요소를 충실히 반영한 주제의 다양성과 개인적인 성향을 꼽는다. 문학이 사회를 반영한다고 재차 강조한 윤 교수는 일본 사회도 그와 같이 다양하고 개인적이라는 것. 때문에 윤 교수는 현대 일본문학을 한마디로 ‘뷔페’라고 칭한다. 다원화된 일본 사회에서 이젠 문학도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서 먹는 형식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일정한 공통점을 찾아보기도 힘들지만 그러한 불분명함이 일본인들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그는 말한다.
“현대 일본 문학작품의 주제는 개인에 한정된 경우가 많습니다. 집단적인 가치보다는 개인적인 가치를 우선하는 성향의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죠. 예외도 있지만 큰 흐름을 놓고 본다면 개인의 삶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단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보더라도 옆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는 관심이 없습니다.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만 오로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거대 담론에 비해서 일본의 작가들은 좀 더 좁은 개인의 삶에 가치를 둔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일본도 한때는 거대 담론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근대 문학작품들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안정화의 길로 접어들며 공동체 삶이 아닌 개인적 삶에 가치를 두고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한편 윤 교수는 한국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이며 90년대 이후 안정적인 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도 탈정치적, 미시적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현 시기를 거대담론과 포스트모던이 공존하는 시기라고 말한 윤 교수는 일정부분 일본을 닮아가고 있기에 일본의 선례를 살펴보는 일은 한국사회와 문학에 있어 중요한 검증 작업이라고 말한다.
일본문화, 경계대상 아닌 자양분
문화 교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윤 교수는 일본문화 개방에 대해 “Don't worry"라고 강조한다. 사실 일본문화 개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거셀 때도 그만은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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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는 풍토가 다른 한국문화에 진입하는 데 일정 부분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대등한 관계로의 인식 전환을 의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문화를 경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보단 우리문화를 살찌우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입니다”
윤 교수는 자신을 일본과 한국 사이의 ‘문화 메신저’라고 일컬었다. 10여 편이 넘는 일본 문학 작품의 번역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을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고 있기 때문. 얼마 전, 일본에서 발간한 김광규 시인의 시집은 일본 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거대담론적 성격의 김지하, 황석영 씨 작품만이 소개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개인적 성향이 짙은 김광규 시집을 들고 일본열도를 건너한 윤 교수. 그의 이런 행동 밑바탕에는 한국의 다양성을 일본에 제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었다.
인터뷰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즈음, 그는 한국이 문화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지만 현 젊은 세대에게서 실망을 금치 못한다는 이야길 꺼낸다. 최근 십여 년 동안 회자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가 10여년 후에는 한국 사회에서 철학의 부재를 불러올까 염려스러워서다. 타국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와 내적 발전, 나아가 문화 선진국도 따져보면 인문학적 소양 즉, 철학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주장하는 윤상인 교수. 그런 그이기에, 철학을 가진 제자 한 명을 길러내기 위한 그의 노력은 '종료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학력 및 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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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