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성악가 고성현 교수(성악과)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시작되고 오페라 극장의 막이 오르면 무대 위의 성악가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존재가 된다. 목소리만으로 수많은 관객과 마주해야 하는 장장 세 시간의 공연. 그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돌리기 위해선 음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그 신념 하나로 세계 무대에 당당히 이름을 알린 바리톤 고성현 교수(성악과)를 지난 18일 만났다. 성악가이자 교수로,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한 사람으로서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음악에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바리톤 고성현 교수(성악과)를 만나 어린 시절
부터 앞으로의 계획까지, 음악과 함께 살아온 이야
기를 들었다.

고성현 교수는 온 세계를 누비며 우리나라 성악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은 인물이다. 23년 전 한양대학교에 임용됐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세계 무대를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베르디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독일 쾰른에서 공연된 오페라 ‘리골레토’에서는 서양 성악가들을 제치고 전체 공연의 주연을 꿰찼다. 셀 수 없이 많은 무대에 올랐지만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서 지난 2003년 공연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그 무대에서 고 교수는 음악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열띤 환호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덟 번의 실내 공연이 끝나고 추가로 진행된 야외 공연에 15만 명에 달하는 관객이 모였던 것.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곡을 불렀을 땐 무대와 관객이 하나되는 것 같았다고. “수많은 관객이 주황색 야광봉을 촛불처럼 들고 있었어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 거죠. 어떤 음악가라도 자신에게 가장 큰 관심과 사랑을 준 무대를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꼽을 거예요.”

 

고 교수가 이 무대를 소중히 생각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영국에서의 출연 요청을 고사하고 올라간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이스라엘에 체류 중이던 당시 ‘런던으로 날아와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공연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급박한 전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고 교수는 예정된 공연을 생각해 이스라엘 텔아비브 극장과의 신의를 지켰다. “성악가의 커리어에서는 어디서 어떤 공연을 했는지가 중요해요. 런던 코벤트 가든은 이스라엘에 비할 수 없는 큰 무대에요. 그런데 런던으로 날아가면 바로 무대에 서야 했어요. 그렇게는 노래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교수의 결정은 이스라엘 안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제가 당연히 런던으로 갈 줄 알았대요. 남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마지막 야외 공연이 이스라엘 전역으로 생중계 됐어요. 신문에서는 ‘한국에서 온 모세’라고 대서특필 됐어요. 외국에서 잘 안되면 귀국해서 제자들하고 노래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인데, 결과적으로는 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셈이 됐죠.”

 

고 교수가 쉽게 타협하지 않은 이유는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하겠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임용된 교수이면서, 오페라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 서는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겠다는 것. “성악가는 고대 로마의 검투사 같은 존재에요. 적게는 2천 명, 많게는 수만 명 앞에서 싸워야 하니까요. 호랑이처럼 포효하는 음악과, 물소 떼처럼 무대로 달려들 것 같은 관객 앞에 서는 제 목소리에 힘이 없다면 저는 부끄러운 존재가 되는 거에요. 해외 무대에서는 더 그렇겠죠.” 고 교수는 늘 자신이 가진 능력의 최선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마지막 결투를 마친 뒤 홀연히 자리를 떠나는 서부 영화 주인공처럼, 어떤 미련과 후회도 남지 않도록 무대에서 온 힘을 다한다.

 

 

더 많은 이들과의 소통을 꿈꾸다

 

고 교수는 오페라 극장 밖에서도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방송 출연은 물론, 작년에는 크로스오버 앨범도 발매했다. 좋은 노래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말하는 고 교수. 순수한 정서가 담긴 노래를 통해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눈높이를 더 높여주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셰프들은 방송에 출연해서 떡볶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음식을 만들면서 인기를 얻고 있잖아요. 제가 크로스오버 앨범을 내고, 많은 사람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이태리어나 독일어로 부르는 것보다는 우리말로 부르면 더 많은 사람이 듣게 될 테니까요.”

 

   
▲ 오페라 <팔리아치>의 아리아를 열창하는 고성현 교수. 이탈리아에서는 성악가 네 명의 목소리를 합친 것과 같다며 '콰트로 바리토니'라는 찬사를 받았다. (출처 : 고성현 교수)

 

클래식이라는 틀 안에만 자신의 음악을 가두어두고 싶지 않다는 고 교수. 대중음악을 부르는 것은 자신을 통해서 더욱 많은 이들이 클래식과 오페라에 가까워지게 하는 동시에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혀가는 한 과정이란다.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가 거의 주식에 가깝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끔 먹는 음식이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진거 같아요. 유럽에서는 오페라가 대중적인 문화예술이지만 여기서는 아니잖아요. 제가 오페라만 혹은 클래식만 고수하면 누구하고도 소통할 수 없을거에요. 음악은 함께 즐겨야 하는 거잖아요.”

 

 

나를 내려놓고 세상을 바라보다

 

고 교수는 이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을 내려놓고 지금보다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의 역할에 온 힘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을 쉽게 부정하지 않는 것이 고 교수가 생각하는 겸손의 의미다. “사람들은 제가 모든 성악가가 꿈꾸는 벨 칸토 창법을 완벽하게 구사한다고 얘기하는데, 저도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저도 소리가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데요. 제가 살아있을 때는 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조금 더 나이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어른들이 젊은 친구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그래서인지 고 교수는 제자들을 대할 때만큼은 자신의 기준을 잠시 뒤로 하고,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 서려고 한다. 제자들의 부족한 점을 더 많이 보게 됐지만, 그것을 다 지적하지는 않는다고. 설령 제자들이 자신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제가 저를 대하는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하면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더 노래해야 자신의 음악을 완성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을 키워주려면 제가 그 눈높이로 내려가야죠.”

 

   
▲ 고성현 교수는 "순수한 정서가 담긴 노래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한다. (영상을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 문화빅뱅 더 콘서트/네이버 TV캐스트)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사람들을 찾아가 음악의 향기를 전하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문화재단을 설립해, 클래식 음악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곳에서 공연을 열고, 그곳에서 노래하겠다는 것. 작은 봉고차에 스피커 하나만 싣고, 시골 마을과 섬마을,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노래하는 것이 고 교수의 꿈이다. “제가 번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는 재능기부의 형태로 노래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거에요. 차나 스피커를 사거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저처럼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기업가들이 기부해줬으면 해요.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일에 힘을 보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거죠.” 고전 음악을 노래하는 성악가이지만, 고 교수의 눈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을 넘어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재능으로 더 밝은 내일을 만들기를 꿈꾸는 고 교수의 노래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려 퍼질 것이다.
 

   
▲ "나이가 들면 사람의 생각은 점점 부정적으로 변해요. 그때가 오기 전에 여러분 안에 있는 긍정의 힘을 잘 다스리시기 바랍니다." 고성현 교수의 목소리에는 내일을 꿈꾸는 긍정의 힘이 담겨 있다.

 

 

글/ 정진훈 기자        cici0961@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이재오 기자      bigpie1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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