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엔 커피보다 진한 시집을
예로부터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했던 문인들이 많이 있다. 버려진 땅 남해로 귀양살이를 떠나던 중 꽃피운 위대한 문학들은 후에 유배 문학으로 불리우게 됐다. 김만중 문학상은 한국문학에 큰 족적을 남긴 김만중의 작품을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진 큰 규모의 문학상이다. 이병철(국어국문학과 박사 과정) 씨가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외 6편의 작품들로 7회 김만중 문학상 영예의 금상을 받았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병철 시인을 만나봤다.
외딴 섬에서의 유배 생활 상상력으로 풀어내
김만중 문학상은 조선시대 유명한 소설가이자 문장가인 서포 김만중이 경남 남해에서 오랫동안 비판 정신을 담은 작품을 쓴 것을 기리고자 제정된 상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에서 시를 쓴다는 게 유배를 스스로 자처하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김만중 시인의 유배문학을 조명할 수 있는 상을 받게 돼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2,400여 개의 시와 시조 속에서 당당히 금상을 차지한 이병철 씨는 이번 수상으로 상금 1,500만원을 받게 됐다. “유명 시인들이 많이 수상했던 큰 규모의 문학상에서 이렇게 큰 상을 받아서 기쁩니다. 생활 면에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글 쓰기가 빠듯했던 게 사실인데 상금 규모가 커서 숨 돌릴 수 있겠어요(웃음)."
스무 살 때부터 10여 년간 시를 쓰고 이병철 씨는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매해 5개 남짓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수상작 <막사발 속 섬에 사는 이에게> 외 6편의 시들은 김만중을 비롯한 문학가들의 유배생활을 이병철 씨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당대의 일상을 상상하고 재구성했어요. 예를 들면 개를 얻어와서 키우지 않았을까, 낚시나 소가죽 북을 치면서 넋두리 노래로 무료함을 달래지 않았을까, 저녁에 혼자 술을 마시면서 몸서리 치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을요.”
가치있는 시를 위해 청춘을 바치다
한국에서 문인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등단'이 필수적이다. 출판사의 인정을 받고 단행본을 출판하면 문인이 될 수 있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공신력 있는 매체를 통한 등단 약력이 더 중요하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일간지 신춘문예와 문예지 등단은 지망생들의 꿈이다. 이병철 씨에게 등단 과정을 물었다. “2006년에 지방신문 신춘문예에서 1차적으로 등단했어요. 문단에서는 학벌과 출신 지면이 중요한데, 지방신문 출신이라 주목을 덜 받았죠."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인지도 탓에 작품 활동을 맘껏 할 수 없던 이 씨는 재등단을 결심했다. "2014년 문학수첩에서 주관한 시인수첩신인상을 수상하며 재등단했습니다.” 이후 더 많은 작품을 공개할 수 있게 됐고, 올해 1월부터는 경북매일에 ‘3040 세상돋보기'라는 칼럼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게 됐다.
이병철 씨에게 시문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어렸을 땐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학창시절엔 백일장에서 상을 자주 받았고요.” 자연스럽게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학사과정을 마쳤다. “입학 후 시론수업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 있었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라면 내 젊은 시절을 올인해도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스무 살 때부터 시를 썼으니 10여 년간 썼네요.” 이 씨는 졸업 후에도 더 깊이 있는 공부와 작업활동을 위해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이수하며 문인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커피보다 진한 시를 노래하다
이병철 씨에게 시작은 실패와 좌절의 기록이다. “생각과 결과 사이의 간극에 부딪혀 좌절하게 됩니다. 또 등단에 성공하더라도 독자의 냉담한 반응과 생계를 감내할 각오가 있어야 해요. 시인으로의 길은 각오와 뚝심이 있다면 걸어가도 좋은 일이고 보람차고 기쁜 직업입니다.” 이 씨는 '시인은 눈빛이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시인은 수리공, 의사, 수집가면서 또 어떤 면에서는 상처를 보듬는 치료자, 대신 고통을 느끼는 병자입니다. 세상에 주목받지 못하고 상처받은 것들과 각종 비극적인 연상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자 해요.”
시인의 고충에 대해서도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생계가 가장 어렵죠. 시인이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시만 전업해서 쓰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어지간한 각오로는 시를 쓸 수 없어요.” 최근 영상 문화나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종이와 활자를 외면하는 풍토가 많이 아쉽다는 이병철 씨. 점점 긴 글이 외면당하고 감수성이 결여되는 시대 자체가 안타깝다고 했다. “요즘 카페에 커피 한 잔에 디저트 하나 시키면 시집 값이더라고요. 시집 한 편이 주는 행복은 커피보다 더 진하고 여운이 더 오래 가니까 올 가을 시집 한 편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글/ 추화정 기자 lily1702@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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