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네소타 법정에는 건축 자재 중 하나인 대리석 여러 개가 나란히 벽면에 붙어있다. 이 대리석은 장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햇빛을 투과하기 위한 것. 위화감과 어두움을 줄 수 있는 법정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고 싶었던 건축가 팀의 바람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 건축가 팀의 리더는 바로 PDI 디자인그룹 최고 경영자 허승회 동문(건축.64). 그는‘사람이 사는 곳은 항상 따뜻해야 한다’는 스승의 말에 따라 건축에 따뜻한 인간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네소타 법정을 비롯해 미네소타 주에 위치한 여러 공공건물, 칠레 미국 대사관, 부산 벡스코 등을 설계한 허 동문의 건축 인생 41년의 발자취를 인터넷한양이 따라가봤다.
미국에서 건축의 꿈을 펼치다

허 동문은 우리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건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1년에 2번 정도 열리는 건축학과 내 세미나에 참여하며 점점 건축에 흥미를 느꼈다. 허 동문은 학창시절을 "당시 건축학과 세미나를 통해 다른 대학에서 상상도 못했던 활동들을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활동들을 통해 실무에 가까운 일들을 미리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대학 건축학과는 다른 대학에 비해 건축 설계에서는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죠"라고 회상했다. 허 동문의 중·고등학생 시절 문예부에서 글을 썼던 경험들도 건축에 흥미를 느끼는 데 도움이 됐다. 건축과 작문. 모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고심하고, 완성한 후 창조의 기쁨을 느끼는 과정이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허 동문은 졸업 후 문교부(교육과학기술부 전신)에 잠시 몸담은 뒤 건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네소타대학 건축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된 허 동문은 당시 세계적인 건축가 파커 교수의 강의를 통해 그와 연을 맺었다. 이후 허 동문은 대학원 지도 교수였던 파커 교수의 회사인 ‘PDI(Parker Durrant International)’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는 넓은 곳에서 건축에 대해 더욱 깊이 배워야겠다는 판단에 미국에 남았다.
허 동문은 PDI에서 인턴으로 일했을 때가 가장 치열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PDI에서 미네소타 주 내 미네아 폴리스 예술단지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문 디테일 도안을 그려오라는 업무를 받고는 조금 황당했어요. 작은 일이라 생각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더니 칭찬을 해주시더라고요. 그 후 평면도 업무를 맡게 됐어요. 졸업한지 5-6년 정도 지난 사람들에게도 힘든 업무였는데 저에겐 큰 기회였던 거죠. 우리대학과 문교부에서의 경험들이 인턴 생활하는 모든 과정에 도움이 됐어요. 실무에 대한 경험을 미리 쌓아놨던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죠.”
“미국 회사 업무는 한국 회사 업무와 차이가 있어요. 그들은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일만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했던 저는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었어요. 2년 후 한국으로 귀국해야 했기 때문이었죠. 맡은 업무들을 정확하게 해내고 다른 팀들의 일까지 스스로 도맡아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죠. 처음에는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문제없이 해내는 제 모습을 보고 점점 저에게 더 많은 일을 맡겼어요. ‘급한 일이 있으면 미스터 허에게 맡겨라’라는 소문이 돌면서 ‘소방수(fireman)’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별명이었죠(웃음).”
허 동문의 건축 디자인 철학
건축에 대한 열정적인 그의 모습은 평사원에서 회장까지 가는 길을 단숨에 단축시켰다. 1972년 입사해 6년만에 준파트너, 8년만에 정파트너, 그리고 25년만인 1997년 회사 CEO가 됐다.2004년에는 미국의 듀란트사와 합병해 PDI 회장까지 올랐다. 당시 PDI는 ‘Parker Durrant International’의 줄임말로, 파커 교수의 회사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름이었다. 2006년 듀란트사와 분리를 통해 현재의 PDI 월드그룹을 설립했다. 2012년 ‘PDI’라는 회사명칭은 그대로 두되,‘Planners Designers Innovators’라는 새로운 뜻을 담았다.
“건축이란 ‘고객의 꿈을 현실화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건물일 경우, 건축주가 지낼 곳이기 때문에 건축주의 요구가 가장 중요해요. 그러나 공공 건물일 경우, 건축주의 바람 외에 사용자의 요구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용자를 염두에 두지 않는 설계는 있을 수가 없어요. 특히 사용자가 거주하는 주변 환경과 부합하는 건축을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허 동문은 처음 건축을 시작할 때부터 항상 주변 환경을 염두에 뒀다. 그의 스승이었던 파커교수가 '사람이 사는 곳은 친근하고 따뜻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그에게 전했기 때문.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건축을 짓겠다’는 허 동문의 생각은 다양한 건축물에 한 가지 공통점으로 나타났다. 친환경적으로 건물 내부에 최대한 햇빛이 많이 들어오도록 설계하고 통풍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허 동문은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그 중 허 동문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미네소타 고등법원과 대법원이다. 미네소타 주 도시 계획 전반에 그의 손길이 닿아있지만 그 중 유독 신경을 많이 쓴 작품이 바로 그곳이다.
“80년대에는 콘크리트로 건물을 짓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저도 계속해서 그런 건물만 지어왔고요. 그러다 미네소타 대법원 설계를 맡게 됐을 때 법정 특유의 위화감과 어두운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세부적인 부분까지 신경쓰고 싶었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조명과 실내 자재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법정 뒷면에는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대리석 장치를 설치했고, 안전을 위한 장치까지 마련해놨죠. 그 덕택에 클래식한 느낌의 법정이 만들어졌어요. 기존에 지었던 건물과는 다른 느낌의 건물이라 더욱 애착이 갑니다.”
좋은 건축가는 훌륭한 연출가
허 동문은 회사의 최고경영자이지만, 경영과 설계를 구분 짓지 않는다. 그의 정확한 직책은 ‘디자인 디렉터(Design Director)’. 허 동문은 건축물 설계에 있어서 전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렉터가 건축에 대한 정확한 방향을 잡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 회사경영과 설계 모두 전체를 바라보고 정확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일이다. 그에게 회사 경영과 설계가 다르지 않은 이유다.
건축가로서 허 동문의 미래 목표 중 첫 번째는 한국인으로서 초고층 건물 설계 책임자가 되는 것, 두 번째는 건축을 통한 사회 공헌이다. “아직까지 초고층 건물 설계 책임자 중 한국인은 없어요. 그 전에도 지을 수 있는 기회는 많았으나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초고층 건물에도 충분히 친환경적 요소를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많은 도시들이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됐어요. 기계에 지배당했던 건축을 벗어나, 인간이 중심인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그 일환으로 개발도상국에 저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허 동문은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건축협회 명예원로 회원(FAIA)으로 추대된 이후 건축가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한국 건축가들이 재능도 많고, 세계 건축 흐름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감각 또한 지니고 있는데 아직 세계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에 가장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건축가를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든든한 지원과 건축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건축가를 꿈꾸는 한양인들에게 "건축이 세계화되고 있다는 걸 잊으면 안됩니다. 건축 환경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달라진 만큼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 합니다. 미국에서 경제 불황으로 건축 회사들이 하나 둘씩 무너질 때 저는 과감히 세계로 눈을 돌렸어요. 덕택에 PDI를 세계적인 건축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도 세계를 무대로 삼아 꿈을 꾸세요.”라는 진심어린 당부의 말을 남겼다.
학력 및 약력
허승회 동문은 1964년 우리대학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문교부(교육과학기술부 전신)에서 세계은행교육차관 사업에 3년간 참여했다. 197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네소타 대학 건축대학원에 진학했다. 당시 지도 교수이자 PDI 최고 경영자였던 파커 교수를 만나 PDI로 입사했다. 초고속 승진을 거쳐 현재 PDI 디자인그룹 최고 경영자로 활동중이다. 미네소타의 대법원과 고등법원 건물, 미네소타 법대 휴거 험프리 기념관, 미니애폴리스컨벤션 센터, 워싱턴의 농공업청, 칠레 미대사관 등 모두 허 동문의 손을 거쳐갔다. 허 동문은 PDI 그룹을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이민자 및 후손이 미국에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엘리스 아일랜드 상'을 받았다. 또한 아시아인 최초로 미국 건축협회 명예원로 회원으로 추대되기도 했다.현재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충징, 아제르바이젠, 콩고 등의 도시 계획 설계를 진행중이다.
- 김은강 학생기자
- keriver@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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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lkmnplkm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