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자퇴 후 프로게이머로 활약하다 다시 학문의 길로
전파-인공지능 개념 적용해 고효율 단초점 메타렌즈 세계 최초 구현
MIT 및 예일대 연구진과 전파-인공지능 관련 공동연구 진행 계획
지난달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새로 임용 예정인 한 교수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LCK(롤챔스) 시즌1 본선 출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시즌1 탑 20, LoL 시즌4 챌린저, 예일대 응용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MIT 기계공학과 박사후연구원’ 등 프로게이머와 세계 최고 명문대 연구원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화제가 됐다. 이 흥미로운 이력의 주인공은 이번 2학기부터 서울캠퍼스에서 강의를 시작한 정해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다.
정 교수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프로게이머의 길로 들어섰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성적이 좋지 않아 진로를 고민하던 중 본인의 내신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으니 자퇴하고 수능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설득에 성공한 그는 큰 해방감을 느끼며 온 종일 게임에 몰두했다. 프로팀의 제안을 받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게이머로서의 화려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이유만으로 정 교수를 문제아라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이로 인해 대인기피증과 수면장애를 겪었고 신경정신과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 정 교수는 “가족과 의사 선생님, 친구들의 배려와 관심이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 시기의 피나는 노력이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그 이후의 일들은 그때 겪었던 일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날아오르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추락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정 교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한양대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에 입학했다. 그 후 퍼듀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뒤 예일대 응용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MIT 기계공학과 박사후연구원까지 마쳤다. 잘 나가던 게이머를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간 이유는 우연히 나간 동창회 때문이었다. “하루에 16시간씩 게임을 하다가 우연히 중학교 동창회에 나가게 됐습니다. 동창들은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었는데 저만 중졸이었죠. 대학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교에 임용돼 뿌듯하다는 정 교수는 “학문에 정진하고 학생들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모교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걱정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교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정 교수가 담당하는 과목은 '일반전자물리'와 '전자기학/전자장'이다. 그는 수업 목표에 대해 “입시 교육 때문에 학생들은 물리현상에 대한 이해보다 물리 문제를 빨리 푸는 것에만 집중해왔다”며 “물리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용적인 문제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연구 활동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그의 핵심 연구 주제는 ‘전파-인공지능’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딥러닝의 Error Backpropagation(오차 역전파) 개념을 전자기학의 맥스웰 방정식(전자기학의 기초가 되는 방정식)으로 구현한 것으로써 전자파, 광학, 물리학 등 빛을 응용하는 여러 학문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알고리즘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일대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이 핵심 알고리즘 개발에 매진했고 현재는 전파-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정 교수가 ‘옵틱스 익스프레스(Optics Express)’에 게재한 논문 ‘전파-인공지능을 통한 단초점 메타렌즈 개발(High-NA achromatic metalens by inverse design)’은 피인용 132회를 기록하며 2020년 이후 게재된 논문 약 6000편 중 피인용 수 1위를 차지했다. 메타렌즈는 스마트폰 카메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구현에 핵심적인 기술이다. 정 교수는 기존의 밀리미터 크기인 스마트폰 카메라의 두께를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로 감소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했으며, 전파-인공지능 개념을 메타렌즈 설계에 적용해 고효율 단초점 메타렌즈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정 교수의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행복하게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연구실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한양대와 퍼듀대에서의 연구 경험들이 역량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며 “학생들의 역량 강화와 진학에 도움을 주는 연구실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한 전파-인공지능 알고리즘 고도화를 위해 MIT 및 예일대 연구진과 협업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실제로 정 교수는 지난 2년간 총 7명의 대학원생을 MIT와 예일대에 파견해 공동 연구를 해왔다. 그는 “비정기적인 파견에 그치지 않고 한양대와 MIT, 예일대 간의 공식 공동연구 채널로 확장해 한양대 학생들의 진로를 넓힐 예정이다”고 계획을 밝혔다.
남들과 다른 길을 치열한 노력으로 개척해 온 정 교수의 이력은 한양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정 교수는 진로와 커리어로 고민하는 한양인들에게 당부와 조언의 말을 전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반드시 찾으세요.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깁니다. 여러분의 역량은 전 세계 인재들과 경쟁해도 지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고, 넓은 시각으로 진로를 탐구하시길 바랍니다. 건국 이래 가장 좋은 스펙을 가지고도 가장 어려운 취업 상황을 겪고 있는 한양인들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