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자퇴 후 프로게이머로 활약하다 다시 학문의 길로
전파-인공지능 개념 적용해 고효율 단초점 메타렌즈 세계 최초 구현
MIT 및 예일대 연구진과 전파-인공지능 관련 공동연구 진행 계획

지난달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새로 임용 예정인 한 교수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 ‘LCK(롤챔스) 시즌1 본선 출전,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시즌1 탑 20, LoL 시즌4 챌린저, 예일대 응용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MIT 기계공학과 박사후연구원’ 등 프로게이머와 세계 최고 명문대 연구원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화제가 됐다. 이 흥미로운 이력의 주인공은 이번 2학기부터 서울캠퍼스에서 강의를 시작한 정해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다.

 

▲ 정해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 정해준 교수
▲ 정해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 정해준 교수

정 교수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프로게이머의 길로 들어섰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성적이 좋지 않아 진로를 고민하던 중 본인의 내신으로는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으니 자퇴하고 수능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설득에 성공한 그는 큰 해방감을 느끼며 온 종일 게임에 몰두했다. 프로팀의 제안을 받을 정도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게이머로서의 화려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이유만으로 정 교수를 문제아라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이로 인해 대인기피증과 수면장애를 겪었고 신경정신과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 정 교수는 “가족과 의사 선생님, 친구들의 배려와 관심이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 시기의 피나는 노력이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그 이후의 일들은 그때 겪었던 일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날아오르는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 추락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정 교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 한양대 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에 입학했다. 그 후 퍼듀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친 뒤 예일대 응용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MIT 기계공학과 박사후연구원까지 마쳤다. 잘 나가던 게이머를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간 이유는 우연히 나간 동창회 때문이었다. “하루에 16시간씩 게임을 하다가 우연히 중학교 동창회에 나가게 됐습니다. 동창들은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었는데 저만 중졸이었죠. 대학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정 교수는 예일대 및 MIT와 함께 전파-인공지능 관련 공동 연구를 계획 중이다. ⓒ 정해준 교수
▲ 정 교수는 예일대 및 MIT와 함께 전파-인공지능 관련 공동 연구를 계획 중이다. ⓒ 정해준 교수

모교에 임용돼 뿌듯하다는 정 교수는 “학문에 정진하고 학생들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모교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그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걱정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교원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정 교수가 담당하는 과목은 '일반전자물리'와 '전자기학/전자장'이다. 그는 수업 목표에 대해 “입시 교육 때문에 학생들은 물리현상에 대한 이해보다 물리 문제를 빨리 푸는 것에만 집중해왔다”며 “물리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용적인 문제들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표다”고 말했다.

연구 활동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그의 핵심 연구 주제는 ‘전파-인공지능’이다. 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딥러닝의 Error Backpropagation(오차 역전파) 개념을 전자기학의 맥스웰 방정식(전자기학의 기초가 되는 방정식)으로 구현한 것으로써 전자파, 광학, 물리학 등 빛을 응용하는 여러 학문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알고리즘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일대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이 핵심 알고리즘 개발에 매진했고 현재는 전파-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 그림1- (a) 전파-인공지능으로 구현된 메타렌즈의 평면도, (b) 가시광선 영역에서 메타렌즈가 만들어내는 빛의 세기 ⓒ 정해준 교수
▲ 그림1- (a) 전파-인공지능으로 구현된 메타렌즈의 평면도, (b) 가시광선 영역에서 메타렌즈가 만들어내는 빛의 세기 ⓒ 정해준 교수

그 결과 지난해에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정 교수가 ‘옵틱스 익스프레스(Optics Express)’에 게재한 논문 ‘전파-인공지능을 통한 단초점 메타렌즈 개발(High-NA achromatic metalens by inverse design)’은 피인용 132회를 기록하며 2020년 이후 게재된 논문 약 6000편 중 피인용 수 1위를 차지했다. 메타렌즈는 스마트폰 카메라,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구현에 핵심적인 기술이다. 정 교수는 기존의 밀리미터 크기인 스마트폰 카메라의 두께를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로 감소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했으며, 전파-인공지능 개념을 메타렌즈 설계에 적용해 고효율 단초점 메타렌즈를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정 교수의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행복하게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연구실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한양대와 퍼듀대에서의 연구 경험들이 역량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며 “학생들의 역량 강화와 진학에 도움을 주는 연구실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한 전파-인공지능 알고리즘 고도화를 위해 MIT 및 예일대 연구진과 협업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실제로 정 교수는 지난 2년간 총 7명의 대학원생을 MIT와 예일대에 파견해 공동 연구를 해왔다. 그는 “비정기적인 파견에 그치지 않고 한양대와 MIT, 예일대 간의 공식 공동연구 채널로 확장해 한양대 학생들의 진로를 넓힐 예정이다”고 계획을 밝혔다. 

 

▲ 정 교수는 학생들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모교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정해준 교수
▲ 정 교수는 학생들과 활발히 소통하면서 모교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정해준 교수

남들과 다른 길을 치열한 노력으로 개척해 온 정 교수의 이력은 한양인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정 교수는 진로와 커리어로 고민하는 한양인들에게 당부와 조언의 말을 전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반드시 찾으세요.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깁니다. 여러분의 역량은 전 세계 인재들과 경쟁해도 지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고, 넓은 시각으로 진로를 탐구하시길 바랍니다. 건국 이래 가장 좋은 스펙을 가지고도 가장 어려운 취업 상황을 겪고 있는 한양인들에게 힘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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